사회

예술인 양성소 한예종 '미투'..'성폭행·성희롱' 제보 속속

최동현 기자,이승환 기자 2018. 3. 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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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남자' 김태웅, 성희롱 폭로에 "사과..추행은 안해"
'총장 출신' 황지우, 강의 중 성희롱성 발언 논란
© News1 최진모 디자이너

(서울=뉴스1) 최동현 기자,이승환 기자 = 1000만 관객 이상을 동원한 영화 ‘왕의 남자’ 원작자 김태웅 한국예술종합대학교 연극원 교수가 성희롱을 했다는 폭로가 나왔다.

한예종 총장 출신인 황지우 교수도 강의 중 천식 환자 학생이 수치스러워할 만한 발언을 하거나 여성 연예인 신체 일부를 비속어로 표현하는 등 막말과 성희롱을 했다는 폭로도 이어졌다.

연극원 조교를 역임했던 시인 A씨도 과거 재학생을 상대로 성폭행을 시도했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이들 모두 한예종 연극원 소속이거나 출신이다. 전·현직 교수의 성추문이 잇따른 데다 연극계 거물급 교수까지 논란에 휩싸여 한예종의 내부 혼란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김태웅 교수 "상처받은 학생에 사과…추행은 안 했다"

복수의 한예종 연극원 학생에 따르면 연극원 학생 88명이 공동 계정주로 이름을 올린 트위터 아카이브 계정(연극원 아카이브)에는 김태웅 교수를 비롯한 연극원 교수들의 성폭력·막말 사례들이 익명 제보 형태로 올라왔다. 특히 영화 ‘왕의 남자’ 원작자인 김 교수와 황지우 교수 관련 제보가 많았다는 게 이들 계정주의 전언이다.

김 교수와 관련해선, 한 학생은 "휴학 승인을 받기 위해 김 교수 사무실을 찾았는데, 김 교수가 나의 몸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과에 이런 여자가 있었어?'라고 말했다"며 "노래 한 곡 하면 휴학 승인을 해주겠다고 하더라"고 아카이브에 폭로했다.

연극원 졸업생이라고 밝힌 다른 여학생은 "김 교수는 수업하지 않고 술을 마시는 날이 잦았다"며 "옷차림을 훑으며 '너는 왜 내 수업을 들을 때 예쁘게 꾸미지 않으면서 다른 교수 수업에는 예쁘게 입고 가느냐고 다그쳤다"고 털어놨다.

또 "연기과 여학생들을 수업 중에 부르고선 자기 옆자리에 앉혀 '예쁜 애들이 내 옆에 앉아야지. 쟤넨(연극원) 재미가 없어'라고 하거나 여학생들의 외모나 노래 실력에 순번을 매기는 일도 있었다"고도 했다.

이와 관련 김 교수는 <뉴스1>과의 전화 통화에서 "예술학교여서 노래를 하는 분위기인 데다 제가 노래를 좋아해 학생에게 노래를 시켰던 일은 있지만 신체접촉을 하거나 추행을 한 사실은 절대 없다"면서도 "내 의도와 달리 학생이 상처를 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아카이브 제보 중에서) 틀린 내용도 있지만 교수로서 잘못한 부분이 있어 학생들에게 누차 사과했다"며 "술을 먹다 보니 실수한 부분이 있다. 책임을 질 부분이 있다면 책임지겠다"고 덧붙였다.

(한예종 연극원 여성혐오 아카이빙 갈무리)© News1

◇한예종 총장 출신 황지우, 강의 중 흡연에 女 신체 비속어도

총장 출신인 '거물' 황지우 교수도 학생들의 폭로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황 교수가 강의 중 여성 신체 부위를 비속어로 표현해 곤혹스러웠다는 내용이 아카이브에 포함됐다. 한 연극원 학생은 '수업시간 팜므파탈 이야기를 하다가 H 교수가 남학생에게 '팜므파탈 하면 어떤 이미지가 생각나느냐'고 물었다. 남학생이 '배우 김혜수 같은 사람'이라고 답했더니 H 교수는 '팜프파탈은 그렇게 젖탱이가 크지 않다'고 말했다'고 제보했다. 다수의 연극원 학생들은 'H 교수'가 황지우 교수를 뜻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에 대해 황 교수는 "황석영의 '삼포 가는 길'의 여주인공 백화의 성격을 분석하고 토론하는 중에 나온 성담론이었다"며 "사석에서 성적 유희 등을 목적으로 나온 성희롱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다른 학생은 "황 교수가 수업 도중 담배를 많이 피워서 학생들이 담배를 좀 줄여주시면 좋겠다고 건의했더니 오히려 과호흡·천식을 앓던 학생을 가리키면서 '○○이 아픈 것처럼 나도 아프다'고 말했다"고 폭로했다. 이에 황 교수는 "'이 백해무익한 것이 나노 안 끊어진다. 미안하다'는 뜻으로 말했던 것"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학생은 "황 교수가 수업 중 임신한 학생이 있을 때도 흡연하거나 재떨이를 비우라고 하는 사례도 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황 교수는 "결코 임신한 학생이 있는 상태에서 담배를 피운 일은 없다"고 말했다.

한 연극원 소속 교수는 "사실 여부를 파악하고자 실제 피해자를 만나려 했지만 직접 피해를 겪었다는 학생이 나타나지 않았다"면서도 "다만 황 교수의 강의가 '도제식'으로 거칠고 혹독해 오해를 살 만한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연극원 조교 출신 A 시인, 여학생 성폭행 시도 의혹까지 연극원 조교 출신인 A 시인은 재학생 시절 연극원 여학생에게 성폭행을 시도했다는 폭로에 직면했다. 성폭행 의혹에도 A씨는 연극원 조교로 활동해 학생들이 거세게 반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뉴스1>이 입수한 피해 녹취록에 따르면 A씨는 지난 2008년 연극원 학생들과 술자리를 가진 뒤 여학생 B씨에게 '자취방에서 잠시 재워달라'며 부탁했다. 그는 B씨에게 '잠시 잤다가 새벽 일찍 나가겠다'고 말했지만, 자취방에 들어서자 B씨를 껴안고 주요 신체 부위를 추행했다. 현장에는 A씨와 B씨 외에 다른 여학생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B씨는 "처음 보는 사이인데 재워달라고 해서 놀랐지만 A씨 외에 다른 여학생도 있었기 때문에 동행을 허락했던 것"이라며 "'뭐 하는 것이냐, 이러려고 데려온 것이 아니다'라고 옥신각신했지만 오히려 A씨는 '왜 너도 좋잖아'라고 말하면서 힘껏 밀쳤다"고 고백했다. B씨는 법적 소송까지 검토했으나 부담을 느껴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예종에 따르면 이 밖에도 지난 2016년 10~11월 한 달 사이 학교 6개원 학생들이 제보한 성추문 의혹은 무려 388건에 달했다.

학생들의 폭로가 빗발치자 한예종은 지난해 '바른 성문화 TF'를 구성해 대책 마련에 나섰다. 사안이 심각해지자 연극원 교수진도 2016년 11월 교수진 공동명의로 사과문을 발표했다.

한예종 관계자는 "바른 성문화 TF가 만들어진 후 학교는 Δ교직원 대상 성교육 교육 의무화 Δ성교육 교과목 신설 Δ교내 몰래카메라 전수조사 Δ강의실 철제 출입문 교체 등 성범죄 예방 조치를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폭로에 대한 진상조사와 가해자 징계에 대해서는 "모든 제보가 가해자와 피해자를 명시하지 않은 '익명'으로 제기됐기 때문에 사실관계 파악이 불가능했다"고 해명했다.

이어 "학교 관계자·학생·전문가가 참여하는 TF를 만들어 5차례에 걸친 의견수렴 과정을 거쳤고, 학생들의 의견은 대부분 실현됐다"며 "특정 교수를 조사하거나 징계해달라는 요구는 없었다"고 선을 그었다.

한예종 연극원 관계자는 "황 교수 막말 등에 대한 실태를 파악할 것"이라면서도 "다만 시간이 조금 지난 일이고 교수진의 담당 보직도 일부 변경돼 내용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 하고 있다"고 말했다.

© News1 최진모 디자이너

◇"우린 乙이잖아요"…전문가 "피해자 보호하고 조사했어야"

일부 학생들은 "가해자 진상조사와 징계는 빠진 '반쪽짜리 TF'"라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연극원 아카이브 계정주 중 한 명인 C씨는 "연극원 핵심 관계자에게 Δ연극원 내 교수진의 전면 교체 Δ가해자 진상조사와 징계 등을 요구했다"며 "하지만 그 관계자도 '익명으로 들어온 제보이기 때문에 가해자와 피해자를 특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학생들의 요구를 거절했다"고 토로했다.

특히 학생들은 당시 안식년 중이었던 황 교수의 학교 복귀를 막아달라고 요청했지만 황 교수는 예정대로 학교로 돌아왔다. 황 교수는 이번 학기에도 강의를 개설한 것으로 알려졌다.

C씨는 "학교에서 이 사람들은 교수이지만 연극계에서는 우리의 선배이자 인맥을 쥐고 있는 '권력자'"라며 "학생이 실명을 공개하고 가해자를 지목하려면 인생을 걸어야 한다"고 말했다.

유독 업계가 좁고 교수와의 관계가 향후 생계까지 좌지우지하는 문화예술계의 특성상 철저히 '을(乙)'일 수밖에 없는 학생이 공개적으로 교수의 비위를 고발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전문가들도 제도 마련에 그친 한예종 TF를 '의지 부족'이라고 비판하면서 '익명의 제보라도 학교 차원에서 피해자 보호 방안을 만들고 철저한 진상조사가 이뤄졌어야 한다"고 꼬집었다.

김재련 법무법인 온 세상 변호사는 "학교가 TF를 꾸렸다는 것 자체가 사안에 대한 진상을 확인하고 개선책을 강구하려는 것인데, 예방책만 내놓으려면 TF를 만든 이유가 무엇이냐"고 반문하면서 "비록 익명 제보라도 학교의 기관장은 철저한 피해자 신상보호 방안을 만들고 사실관계를 조사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미투(#Me too)운동의 목적은 폭로에 있는 것이 아니"라며 "왜 피해자가 오랜 기간 침묵할 수밖에 없었는지, 피해를 입고도 계속 두려움을 가질 수밖에 없었는지를 들여다보는 것에 있다"면서 "그 원인은 권력 관계와 우월적 지위, 폭로 이후 본인의 신분이나 직업이 안전하지 못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유명인사의 사건은 쉽게 공분의 대상이 되지만 오히려 일반인이나 학생의 불안감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면서 "피해자가 피해를 고백했을 때 조사방법과 조사 기간, 조사 이후 피해자의 조직 내 안전을 담보할 수 있는 매뉴얼과 제도가 정착되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dongchoi89@@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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