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자리 오라는데 안가면 실습서 빼.. 어떻게 교수님 말을 안듣겠어요"

박상현 기자 2018. 3. 3.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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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교수 4명 성추문' 명지전문대 연영과서 무슨 일이]
연기 길 막힐까, 왕따될까 두려워 학생들, 교수 성폭력 보고도 침묵
말려야 할 교수들도 동조 '공범'.. 명지전문대, 교수 4명 직위해제

2일 오후 명지전문대 본관 802호 강의실은 불이 꺼진 채 비어 있었다. 연극영상학과 안광옥 강사의 1학기 '장치 디자인' 첫 수업이 예정돼 있었다. 성폭력 논란으로 강제 휴강됐다. 두 시간 후 권경희 학과장은 학생 100명 앞에서 "수업에 차질을 빚어 미안하다. 대책을 마련하겠다"며 눈물을 흘렸다.

최근 명지전문대 연극영상학과 학생들이 남성 교수들의 성폭력 행위를 폭로했다. 교수인 최용민·박중현·이영택씨와 시간강사에서 겸임교수로 발령 예정됐던 안광옥씨로, 남성 전임교수진 3명 전원이 포함돼 있다. 가해 교수들은 성폭력 행위를 인정하는 자필 사과문을 작성해 학생회에 전달했다. 학교 당국의 조사도 받는 중이다.

재학생·졸업생들은 1998년 학과 설립 후부터 성폭력·성희롱이 있었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20년 가까이 드러나지 않았다. 폭로 후 미래에 대한 두려움, 같은 집단의 따돌림 등을 우려해 피해 사실을 알리지 못했다. 그사이 성폭력 가해자는 늘어났다. '명지전문대 연극영상학과' 사례는 특정 집단에서 성폭력이 어떻게 외부로 알려지지 않고 만연할 수 있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학 내 성폭력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는 건 '돌출 행동을 하지 말라'는 분위기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교수가 저지른 만행을 고발해도 선후배나 동기가 이에 동조하기를 꺼린다. 오히려 '이상한 사람'으로 몰아갈까 봐 두려워하는 것이다.

한 졸업생은 "'너만 올곧은 사람이냐'는 무언의 압박이 작용한다. 자기 목소리를 잘못 내면 '이단' 내지는 '아웃사이더'로 취급받는다"고 했다.

'연대 책임'을 묻는 문화도 침묵에 한몫했다. 교수가 주관한 술자리에 참석하지 않으면 해당 학번 학생들을 실습에서 배제했다. 한 졸업생은 "동기들 생각해서라도 교수의 요구를 거절하기 어려웠다. 저항하면 비싼 학비 내고 독학하는 셈이 됐다"고 했다.

졸업 후 연기 활동에 지장을 받을까 봐 염려돼 성폭력을 묵인했다. 박중현 교수의 성폭력은 매학기 개설된 '연극 제작' 수업에서 주로 일어났다. 연구실로 여학생을 불러 안마를 시켰다고 한다. 한 졸업생은 "어느 날은 허리가 아프다며 웃통을 벗더니 '로션을 발라 안마해달라'고 했다. 수건을 전자레인지에 돌려 스팀 타월로 찜질하고, 또 뻐근한 곳이 있으면 다시 안마를 시켰다. 시녀가 따로 없었다"고 했다.

다른 교수들은 오히려 성폭력에 동조했다. 부조리가 대물림된 결정적 이유다. 한 졸업생은 "어떤 교수가 술자리에서 마음에 든 여학생이 CC(캠퍼스 커플)인 것을 알자 여학생과 사귀던 남학생을 불러 손찌검을 했다. 다른 남학생이 교수를 저지할 때 '어디서 말리느냐'며 그 학생을 오히려 폭행한 건 당시 조교였던 안광옥 강사였다"고 했다. 안 강사는 이번에 겸임교수 발령을 앞두고 있었다. 최용민 교수는 택시 안에서 여학생에게 강제로 키스를 하려 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최 교수는 사임계를 냈다.

성폭력이 묵인되는 사이 다른 교수들의 추행이 이어졌다. 한 졸업생은 "이영택 교수가 여학생 몇 명을 술집으로 조용히 불러 술을 마시다가 갑자기 키스하려 했다"고 말했다.

명지전문대는 지난달 26일 사실조사위원회를 열고 본격적으로 사실 확인에 들어갔다. 학교 측은 "4명 교수 모두 직위를 해제해 수업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했다"고 했다. 사표를 냈다고 하더라도 불미스러운 일이 사실로 확인되면 사직이 아니라 파면 등 다른 절차를 밟을 계획이다. 또 시간강사 등 대체 인력으로 강의 공백을 메우기로 했다. 본지는 가해 교수들에 반론을 요청했으나 이들은 연락이 닿지 않거나 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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