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작가의 K-팝 열전] "눈을 감고 걸어도 맞는 길을 고르지" 아이유의 놀라운 선택들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 2018. 3. 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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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 나오기만 하면 음원차트 ‘올킬’ 김창완, 서태지 등 명인들과 협업... 뮤지션으로 독자 영역 구축 직접 제작한 앨범으로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팝 음반상 수상 소나기처럼 지나는 인기 아닌, 햇볕처럼 오래 머무는 스테디셀러의 매력

아이유는 비평과 흥행에서 모두 성공한 몇 안 되는 대중음악인 이다./아이유 페이스북

비평과 흥행, 모든 대중예술의 성과는 둘 중 하나의 잣대로 나뉜다. 대부분 음악은 마치 블루투스 기기처럼 하나에만 연결된다. 평단의 반응은 좋은데 차트에 이름조차 올리지 못하고 사라지거나, 차트 성적은 나쁘지 않은데 리뷰 하나 없이 연예뉴스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경우다. 그런데 아주 가끔, 와이파이처럼 양쪽으로 연결되는 음악이 나타난다. 비평과 흥행에서 모두 성공하는 음악인이다.

우리보다 다양한 음악들이 고루 시장에서 사랑받는 해외에서는 종종 있는 일이지만 한국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들다. ‘좀처럼’이라는 단어를 쓴 이유는 물론 강력한 예외가 있기 때문이다. 누구일까. 적어도 지금의 젊은 음악인 중 고르자면 큰 고민이 필요하지 않다. 아이유다.

◇ 아이유는 가요계의 마스터키이자 소환술사

아이유의 새 앨범이 나오면 즉시 음원차트는 ‘올 킬’된다. 특별한 건 아니다. 어지간한 아이돌이면, ‘음원 강자’면 겪는 일이다. 문제는 지속성이다. 2010년 이후, 즉 음원 시장이 본격적으로 자리 잡은 이후 발매된 모든 앨범 중 가장 많이 스트리밍된 앨범은 아이유의 지난해 정규 앨범 ‘Palette’다. ‘너랑 나’가 담겨 있던 2011년 앨범 ‘Last Fantasy’는 버스커버스커의 1집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이 다운로드됐다.

다운로드 시대도 진작 끝난 이 시점에서, 적어도 이 기록은 깨지지 않을 것이다. 아무튼, 발매 직후 소나기처럼 지나가는 게 아니라 차트 어디엔가 햇볕처럼 오래도록 머무른다는 얘기다. 팬덤뿐 아니라 대중 일반의 지지를 받기 때문이다.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다. 누가 뭐래도 음원 시장 최강자다.

아이유가 2009년 발표한 첫 번째 앨범 'Growing Up' 이미지/사진=아이유 페이스북

아이유에 대한 관심은 팬덤과 대중에 그치지 않는다. 자기 음악을 해온 많은 선배 음악인들이, 음악에 대해 보다 진지하게 생각하는 전문가들도 그렇다. 아이유가 걸어온 길은, 도저히 그럴 수 없는 환경에서 마침내 아이돌에서 뮤지션으로서의 진화에 성공한 한 여성 음악인의 길이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시도는 했으되 성과는 없었다. 아이유는 누구보다 영민하고 자연스럽게 진화에 성공했다. 무리수가 없었다.

2008년으로 돌아가 보자. 아이유가 ‘미아’로 데뷔했던 바로 그때, 대중음악계는 아이돌 르네상스의 불꽃으로 가득했다. 1980년대 중후반에 태어난 아이들이 전 세대와 비교할 수 없는 우월한 신체조건으로 세대교체를 이뤘다. SG워너비, 씨야로 대표되는 ‘소몰이 음악’의 시대에 종지부를 찍고 아이돌 천하를 연 것이다.

원더걸스, 빅뱅, 소녀시대, 샤이니라는 풋풋한 이름의 터보 엔진이 장착되고 있었다. 여럿이 군무를 펼치며 후크송을 불러야만 주목받는 상황에서, 잔물결과 파도를 넘나드는 16세 신인의 목소리는 가요계에 등장하자마자 갈 곳을 잃은 것처럼 보였다. 거점을 마련해야 했다. 댄스 넘버인 ‘Boo’와 ‘마시멜로우’로 이미지 전환을 했다. 대세에 맞췄다. 그리고, 진격이 시작됐다.

김민수, 김이나 콤비와의 첫 결과물인 임슬옹과의 듀엣곡 ‘잔소리’로 2010년 6월 처음으로 음원 차트 1위에 오르고 몇 개월이 지나 ‘Real’이 발표됐다. 차트는 물론이거니와 인터넷 버즈를 박살 낸 ‘좋은 날’의 4분 47초 지점, ‘하나, 둘’하는 구령과 함께 치솟아 오르는 3단 고음은 그해 초 김연아가 밴쿠버에서 펼쳤던 점프와도 같았다. 동시대의 정상에 오르는 대관식이었다.

잔혹한 시장에 자신의 영역을 구축한 후 아이유는 뮤지션으로서의 행보를 펼쳐 왔다. 세 가지의 방법, 혹은 능력, 또는 자질이다. 첫째, 한국 대중음악사의 거장들에 대한 존중과 수용이다. ‘너랑 나’로 또 한 번 큰 인기를 끈 2집 ‘Last Fantasy’에 이적, 윤상, 정석원, 김현철, 김형석 등 90년대의 명인들이 곡을 제공한 걸 시작으로 한국 대중음악의 거장과 명곡을 현재로 호출해왔다.

아이유와 김창완이 함께 부른 ‘너의 의미’ 뮤직비디오 한 장면/사진=유튜브 영상 캡처

김창완과 부른 산울림의 ‘너의 의미’, 조덕배의 ‘나의 옛날이야기’ 등 전곡에 걸쳐 놀라운 해석력을 보여줬던 첫 리메이크 앨범 ‘꽃갈피’ 발매 전부터 그랬다. CF를 통해서는 고(故) 김광석과 함께 ‘서른 즈음에’를 불렀고, 최백호와는 ‘낭만에 대하여’를 노래했다. 그의 리메이크 능력은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동시대 노래에도 적용된다. 가을방학의 ‘가끔 미치도록 네가 안고 싶어질 때가 있어’, 언니네이발관의 ‘가장 보통의 존재’ 같은 곡들이 그랬다.

‘소격동’의 보컬을 아이유에게 맡겼던 서태지는 “아이유가 아니었으면 이 정도 관심을 받지 못했을 것”이라며 그녀의 화제성과 능력을 인정했다. 가요계의 마스터키이자 소환술사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명곡에 담긴 감정의 근원을 깊숙한 고갱이에서 끄집어내 온전히 자신의 목소리로 되새김질하는 장면을 목도할 때마다 나는 감탄하곤 한다.

◇ 직접 제작한 ‘Palette’ 앨범,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팝 음반 상 수상

잔망스럽다는 생각마저 들 때도 있다. 이병우가 만들고 양희은이 불렀던 ‘가을아침’에서도 그랬다. 두 번째, 선연한 감정 표현과 정확한 가사 전달이다. 오디션 프로그램이 일상화되면서 신파와 같은 감정 표현과 장대높이뛰기와 같은 옥타브 싸움이 명창의 기준처럼 돼버렸다. 묻고 싶다. 그걸로 충분한가?

가사를 보지 않으면 전달되지 않는 발음, 마치 마이클 베이 영화처럼 성대를 폭발시키지 않으면 음악이 아니라는 단편적 표현만으로 충분한가 말이다. 아이유는 자신의 노래로 그렇지 않음을 증명한다. 성량을 터뜨리건, 조곤조곤 부르건 아이유의 목소리에 담긴 가사는 잘 들리는 이야기가 된다. 때로는 일기처럼, 때로는 편지처럼 시점을 분리하며 노래에 스며든 감정들을 한 단어로 명료하게 집약한다. 그것은 기술이 아니다. 표현이다.

마지막, 그녀는 준비해왔다. 자신이 가진 것들을 세상에 펼쳐도 될 날을 위하여 한 발자국씩 걸었다. 성급히 음악 인생의 다음 단계로 나가다가 품고 있던 알을 깨트리는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다. 아우구스투스가 서서히 로마제정을 확립하듯 신중하고 사려 깊었다. 한 살 한 살을 먹으면서 얻게 되는 생각을 조금씩 가사로 펼쳐왔다. 들려줘도 될만한 노래가 나왔을 때에야 조용히 사람들에게 내놨다.

지난해 발매한 ‘Palette’ 앨범에서 아이유는 전곡의 작사에 참여한 것은 물론, 동명의 타이틀 곡을 혼자 작곡했다. 이 앨범은 2018년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최우수 팝 음반상을 받았다./사진=아이유 페이스북

2015년 ‘Chat-shire’에서는 프로듀서로 이름을 올렸다. 자신의 음악에 오롯이 책임을 진다는 의미다. 그리고 마침내 ‘Palette’에서는 지난 앨범과 마찬가지로 전곡의 작사에 참여했거니와 동명의 타이틀 곡을 혼자 작곡했다. 스물다섯 이지은의 이야기를, 스스로 만든 멜로디에 오롯이 담아낸 것이다. 사랑과 이별이 아닌 청춘의 성찰을, 댄스와 뻔한 발라드가 아닌 음악에 실어 차트 정상으로 직행한 것이다.

아이유는 이 앨범과 ‘밤편지’로 2018년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올해의 음반과 올해의 노래, 그리고 올해의 음악인 등 주요 부문에 이름을 올렸고, 최우수 팝 음반상을 받았다. 음악인이 전곡을 작곡하지 않은 음반으로서는 처음 있는 일이다. 이 상의 선정위원들이 음악 전문가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오직 ‘음악성’만을 기준으로 삼는다는 사실에 비춰본다면, 이 앨범의 음악적 가치가 어느 정도 설명되리라.

2008년 9월 18일, 엠넷의 ‘엠카운트다운’으로 데뷔했을 때 누가 이런 날을 기대했을까. 돌아보면 의성의 소녀들이 이름도 생소했던 컬링으로 올림픽 금메달을 겨루는 이야기만큼이나 극적이지 않은가. 나는 지금의 아이유가 완성형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상업과 비판의 잣대 그 어느 쪽으로도 더 나아갈 길이 있으리라 믿는다. 지금까지 그녀가 들려줬던 음악들이 증거다.

‘드림 하이’ ‘프로듀사’ 등의 드라마와 ‘효리네 민박’ 등의 예능에서 보여줬던 연기와 생활도 그렇다. 아이유와 작업했거나 교류가 있는 지인들의 공통된 칭찬 또한 마찬가지다. 작사가 김이나는 책 ‘김이나의 작사법’에서 ‘분홍신’의 가사 “내 운명을 고르자면 눈을 감고 걸어도 맞는 길을 고르지”를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응원이라 썼다. 그것은 응원이 아니다. 현재까지는 정확한 진단이다.

◆ 김작가는 대중음악평론가다. 어릴 때부터 음악을 남들보다 좋아했다. 사회에 나와서 짧게 다른 일을 하면서도 음악과 연관된 삶을 살더니 자연스럽게 음악에 대해 쓰는 게 업이 됐다. 추상적인 음악을 구체적인 언어를 사용하여 그 안에 담겨 있는 감수성을 끄집어 내는 걸 지향한다. 저서로는 음악 애호가로서의 삶을 그린 <악행일지>가 있으며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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