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 거기 어디?] 생강우유·조선향미 한국식 젤라또

백수진 2018. 3. 2.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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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 가득 온실 정원으로 꾸민 실내
생강우유·조선향미 한국적 메뉴 인기

겨울방학은 학교에만 있는 게 아니다. 아이스크림 가게 중에도 겨울이면 한두 달씩 문을 닫는 곳이 많다. 숨만 쉬어도 폐가 얼어버릴 듯한 날씨엔 차가운 간식을 찾는 손님이 확연히 줄기 때문이다. 그러나 방학 없이 겨우내 영업을 하면서, 설 선물세트 판매 특수마저 누리는 곳이 있다. 오픈 1년 만에 입소문을 타고 SNS까지 접수한 젤라또집, 삼성동 ‘젠제로’다.

비가 내리고 기온이 뚝 떨어졌던 지난 28일 젠제로를 찾아갔다. 강남구청역 1번 출구에서 도보로 5분 거리다. 출구로 나와 바로 보이는 오른쪽 길로 한 번만 꺾어 쭉 걷다 보면 왼편에 큼지막한 아이스크림 아이콘이 보인다. 젠제로의 간판이다.

젠제로의 외관.
따뜻한 조명과 식물 인테리어만 봐서는 젤라또 가게임을 알아채기 어렵다. 내부에는 작은 테이블이 4개 있다.
사실 걷는 내내 생각했다. ‘으슬으슬 몸이 움츠러드는 날씨에 젤라또라니….’ 그러나 방문 날짜를 잘못 잡았다는 후회는 젠제로의 문 앞에서 사라졌다. 차가움을 파는 곳이지만 가게의 느낌은 한없이 따스했다. 전면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초록 식물들과 포근한 조명 덕분에 온실 같기도 했다. 젤라또 가게라고 하면 흔히 떠오르는 파스텔톤의 아기자기한 인테리어와는 거리가 멀었다.
“젤라또는 아이스크림에 비해 유지방과 공기 함량이 낮고 원재료의 느낌을 많이 살려요. 자연적인 방식으로 만드는 젤라또의 이미지에 맞춰 인테리어도 내추럴한 느낌을 강조했죠.”
젠제로의 정원. 식물 디자이너 원안나씨가 큐레이팅한 공간이다.
정원을 꾸민 디자이너가 직접 쓴 소갯말.
오너 젤라띠에레 권정혜(38) 대표는 식물을 배치한 공간을 ‘정원’이라고 불렀다. 이 정원의 식물들은 아무렇게나 놓아 둔 것이 아니다. 원안나 식물디자이너가 큐레이션한 하나의 작품이자 전시공간이다. 레몬나무와 무늬유자나무 화분으로 겨울 느낌을 냈고 오렌지색 꽃 극락조로 이국적인 느낌을 더했다. 디자이너의 설명을 담은 안내판도 함께 세워놨다. “창밖 가로수에 이파리가 풍성한 봄·여름엔 풍경이 정말 예뻐요. 푸른 정원에서 젤라또를 먹는 것 같죠.” 권 대표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이 공간을 새롭게 꾸민다. 올 봄에는 행잉플랜트를 몇 개 달고 선인장을 여러 개 심어 볼 계획이다.
늦여름에 창밖을 내다 본 풍경.
지난해 3월 문을 연 젠제로의 첫 여름은 기대 이상으로 바빴다. 동네 주민들을 중심으로 맛있다는 입소문이 나더니 인스타그램(이하 인스타)에서도 ‘핫’해졌다. 해시태그(#젠제로)가 1500개에 달한다. 차분하고 고급스런 인테리어와 깔끔한 패키지도 한몫 했다. 권 대표는 “어린이들뿐 아니라 미식을 이해하는 어른들에게도 어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권 대표의 의도대로 젠제로엔 젊은층 못지 않게 3040 세대 손님이 많다. 설 연휴엔 어른들께 선물하기 위한 가족 단위 포장 주문도 많았다고 한다. 현재는 오픈 당시에 비해 생산량이 2~3배로 늘었다.
젠제로의 쇼케이스. 지난해 3월 8개 메뉴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16가지로 늘어났다. 메뉴는 끊임 없이 새롭게 개발되고 매일, 매 계절 바뀐다.
젠제로의 시그니처 메뉴는 ‘생강우유’다. 가게 이름도 '생강'을 뜻하는 이탈리아어에서 따왔다. 생강의 매운 맛은 아주 얕게 남기고 쌉쌀달달한 향을 우유와 함께 부드럽게 풀어냈다. 권 대표와 남편 전현욱(44) 대표가 자체적으로 개발한 맛이다. 이탈리아에선 우유를 넣지 않은 채로 생강 소르베를 만든다. “다른 여러 재료들과 조화가 잘 되면서도 한국적인 개성이 있다는 점에서 생강을 골랐어요. 소르베가 아닌 젤라또로 만드는 건 새로운 시도이기도 하고요.”

가장 인기 있는 메뉴는 ‘조선향미’다. 쌀로 만든 젤라또다. 재래종 쌀 중에서도 고급품종인 ‘골든퀸 3호’를 재료로 쓴다. 제조법은 로마식을 따랐다. 물 대신 우유와 크림을 넣고 밥을 짓는 형식이란다. 시나몬 향이 가미되는 것이 특징이다. 생강우유는 매운 맛이 거의 없어졌다고 해도 가리는 손님이 있지만 조선향미는 취향을 타지 않는 베스트셀러다.

그 외에 ‘금귤 바닐라’ ‘잣’ ‘밤꿀과 고르곤졸라’ 등 색다른 맛을 끊임 없이 연구해서 내놓는다. 몇 가지 메뉴에는 특별 제작한 토핑도 얹어 준다. 금귤 바닐라 젤라또 위에 직접 만든 금귤 콩포트가 올라가는 식이다. 메뉴는 매일 똑같지 않고 조금씩 바뀐다. 계절에 맞는 제철 식재료를 사용하기 위해서다. 새로운 메뉴는 입간판에 적어 가게 앞에 세워 두고, 인스타 계정(@zenzero126)으로도 공지한다. 젤라또 1컵 가격은 5000원. 컵 하나에 두 가지 맛까지 담을 수 있다.

금귤 콩포트가 토핑으로 올라간 금귤 바닐라와 제주 유기농 말차 젤라또.
바닐라 젤라또 위에 애플크럼블을 뿌리고 홍옥 포셰 젤라또를 얹었다. [사진 젠제로]
겨울 한정 신메뉴인 밤꿀과 고르곤졸라(앞), 유기농 딸기우유와 박하사탕.
젠제로의 대표 부부는 3년 전까지만 해도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권 대표는 “나이 들어서까지 직장 생활을 계속하기 보다는 주도적으로 기획해서 무언가 해보고 싶었다”며 “둘 다 음식을 워낙 좋아해서 관련 비즈니스를 해보자고 생각이 모아졌다”고 말했다. 사업을 구상하던 부부는 우연히 젤라또를 접했다. 원재료 맛이 강하게 나는 젤라또는 그들에게 하나의 요리로 다가왔다. “가볍게 먹는 간식이나 디저트가 아닌 완성된 요리 같았어요. 식재료를 다루는 하나의 방법인 거죠. 우리만의 개성을 살린 젤라또를 만들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들은 2015년 이탈리아 볼로냐로 날아가 젤라또 학교를 다녔다. 그리고 2년 뒤, 한국에서 생강우유 젤라또를 만들었다.
젠제로의 포장 패키지.
젤라또는 아이스크림에 비해 높은 온도에서 보관된다. 쇼케이스를 벗어나면 빠르게 녹기 시작한다. 때문에 보냉 포장을 해도 1시간 이상 먼 길을 가기는 어렵다. 다만 하루 전에 전화로 예약하면 제작 단계부터 급냉처리한 젤라또를 받을 수 있다. 이 경우 2~3시간까지 보관이 가능하다.
젠제로는 지난 1월 이종국 셰프의 '104'에 납품을 시작했다. 보리순(새싹)으로 만든 젠제로의 젤라또가 디저트로 제공된다.
지난 1월, 젠제로를 만날 수 있는 공간이 한 곳 더 늘었다. 미셰린 2스타 ‘곳간’의 이종국 셰프가 성북동에 문을 연 한식 레스토랑 ‘104’다. 보리순으로 만든 젤라또 등 한식 코스와 어울리는 색다른 디저트를 맛볼 수 있다.
글·사진=백수진 기자 peck.soo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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