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들' 이원근, 쉽게 물들지 않는 내면의 선함 [인터뷰]

한예지 기자 2018. 3. 1.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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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들 이원근 인터뷰

[티브이데일리 한예지 기자] 배우 이원근은 선하다. 스스로를 외로움이 많고 내향적이라고 밝히지만,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아도 느껴지는 그 내면의 선함과 깊은 감성은 따스한 기운이 감돌았다.

10대들의 권력과 폭력의 비극을 그린 영화 '괴물들'(감독 김백준·제작 케이프프로덕션)에서 이원근은 살아남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해야 하는 소년 재영 역을 맡아 연기했다. 이원근은 큰 키에도 마른 몸과 구부정한 자세, 불안한 눈빛으로 폭력에 노출된 유약한 소년의 외면과 심리를 섬세하게 표현해냈다.

이원근은 처음 '괴물들' 대본을 읽고 극에 담긴 사회적 메시지에 크게 매료됐다. 학교 폭력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고, 이는 굉장히 민감한 문제임에도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 그렇기에 영화적으로 이를 표현해보고 싶었단 설명이다. 그는 "요즘 학교 폭력이 어떻게 일어나나 봤는데 정말 심각한 일들이 많더라. 우리 학교 다닐때만 해도 그렇진 않았던 것 같다. 사회적으로 어른들이 방관하고 쉬쉬하다보니 그 강도가 점점 세진 게 아닌가 싶다"고 했다.

이어 "우리가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에 관심을 갖고 손을 내밀어야 하는데 어른들이 그 역할을 못한 것 같아 촬영하면서도 마음이 아팠다"고 했다. 실제 극에서 비춰진 어른들은 10대들의 폭력과 권력 세계에서 그저 방관자로 그려질 따름이다. 소란을 일으키는 아이들의 근본적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보다 의무적으로 책망하는데 그친다. 이를 두고 어른과 학생들이 생각하는 눈 높이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 이원근은 "영화에서도 힘든 상황에 놓인 친구들이 도움 요청을 하지 않는다.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아이들이 혹독한 환경에 있더라"고 안타까워했다.

이원근은 영화 속에서 적나라하게 묘사된 10대 잔혹사를 간접 체험하며 심적으로도 고통이 컸다. 촬영 전날 밤을 설치며 악몽을 꾸기도 했다. 빈번하게 벌어지는 폭행과 협박, 온갖 모욕감을 느끼는 상황에 노출됐던만큼 괴로웠을 터. 여기에 극한의 체중감량도 불가피했다. 그는 "외적으로 연약한 이미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갈비뼈가 생각보다 안 도드라지더라. 굶고 운동하고 식단 조절하고 물도 거의 안 마셨다. 식단 조절한 게 처음이라 더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심지어 몸에 힘도 안 들어갔더란다. 상대 배우 이이경과의 힘의 분배에서 자신의 큰 체구 때문에 오히려 위협적으로 보여선 안 됐기에 철저한 감량을 했던 것.

학교폭력 피해자 학생의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강아지를 참고했단 비화도 흥미로웠다. 그는 "우리 강아지를 보는데 부스럭 거리는 소리를 보고 '저 간식을 줄까, 안 줄까' 눈치를 보더라. 거기서 강자와 약자의 힘이 느껴지더라. 이걸 참고해서 연기를 해야겠단 생각을 했다. 움츠리고 눈치보고 그런 포인트를 살피려 했다"고 밝혔다. 실제로도 촬영장에서 상대 배우 이이경의 눈치를 절로 살피게 됐다고. 그러면서도 맞는 저보다 이이경이 더 고생 많았다며 "저는 그냥 맞으면 되는데 때리는 사람은 모든 동선과, 대사, 상황까지 다 신경써야 하지 않나"라고 사려깊은 모습을 보였다.

극 중 숱한 폭력에 시달리던 그였지만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괴물'이 되어가고 이로 인한 절망과 자책, 분노 등의 감정이 한데 모여 폭주하는 모습 또한 인상깊었다. 유약하지만 순수했던 소년이 결국 파멸해가는 폭주의 변곡점을 강렬하게 그려낸 이원근은 "감독님께서 여태껏 참았던 것을 다 토해버리라고 하셨다. 그동안 쌓인 게 있으니 저절로 눈물도 나고 울분도 찼다. 정말 힘들었는데도 속전속결로 찍을 수 있게 되더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하지만 '괴물들'의 꽤 극단적인 설정들은 관객이 불편하게 느낄 소지가 다분했다. 이원근은 이를 인정하면서도 "가해자가 피해자가 될 수 있고, 피해자가 가해자가 될 수 있는 상황을 중점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불가피한 신이었다"고 설명했다. '괴물들'은 어른들이 방관한 10대들의 세계속, 폭력이 폭력을 낳는 구조적인 속성을 그려냈지만 이원근은 그 속에서 희망을 갈구했다.

어른과 아이의 눈높이가 다른만큼, 무책임한 태도보다는 먼저 손을 뻗어주는 어른의 손길이 필요할 것 같다고. 실제로도 그는 간혹가다 동네에서 마주치는 학생들에게 말을 걸고 있다며 "그들에게 저는 그냥 동네 백수형이겠지만, 별거 아닌데도 대화를 나누면 좋아하는 게 느껴진다. 그렇게 친근감이 들고 편한 마음이 든다면, 서로 소통도 하고 개선점도 찾아나갈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지 않겠나"라고 바람을 전했다.

어렸을 때 정말 멋있는 어른이 되고 싶었단 이원근은 "예전엔 멋 부릴 줄 알고, 많은 걸 경험한 어른이 멋진 어른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자신보다 어린 이들에게도 눈 높이를 낮춰 소통할 수 있는 어른이 멋있는 어른이라고 생각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학생은 학생일 때 예쁘고 아름답다"고 덧붙였다. 그 역시도 고작 만 스물 여섯의 나이에, 이토록 점잖고 깊은 사고를 지녔다. 이에 "사람마다 타고난 성향과 끼가 있는데 저는 옛날부터 '애늙은이'같은 기질이 있었다"고 웃어보인 이원근이다.

어느덧 차곡차곡 쌓여지는 필모그래피는 이원근의 깊이를 드러내는 척도이기도 했다. 수많은 작은 영화들에서 요행을 바라지 않고 묵묵하고 성실하게 자신을 쌓아나갔던 그는 이젠 제법 선굵은 배우의 이미지를 풍겨냈다. 이원근은 "저의 다양한 모습들을 끌어내주시려고 해서 감사하고, 그 결과물이 나왔을 땐 너무나 뿌듯하기도 하다. 행복하긴 하지만 여전히 아쉽고 보완해야 할 점이 많다. 착실히 해야겠단 생각이 든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제게 끼가 없어 매사 최선을 다하려 하는 거라며 쑥스러워하는 이원근은 보기드문 착실한 청년이었다.

[티브이데일리 한예지 기자 news@tvdaily.co.kr/사진제공=리틀빅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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