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조복래 "애늙은이 같지만 오래 기억될 배우이고 싶어요"

김시균 2018. 3. 1.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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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조연배우다-8] 배우 조복래(32)는 소싯적부터 '애늙은이'라는 소리를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다. 남들이 최신 패션, 최신 가요 흐름에 너도나도 좇아가기 바쁠 때, 그는 왜인지 이 모든 것에 심드렁했다. 천성이었다. 인생사 희로애락을 이미 죄다 겪은 사람처럼, 그는 앞만 보고 질주하는 삶을 애초에 내켜하지 않았다.

대신에 좋아한 건 이미 지난 것들이었다. 시간은 앞으로 자꾸만 나아가지만 그럴수록 그는 시계태엽을 거꾸로 감았다. 피가 펄펄 끓어오르는 사춘기 시절. 그의 마음을 사로잡은 건 잊혀 가는 '7080 포크송' 정서였다. 요즘 감성보다 옛 감성이 좋았다. 그때 그 시절에 대한 사랑과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한 삶. 말하자면 '카르페디엠'은 지금껏 이어오고 있는 그의 신조다.

배우 조복래 / 사진=양유창 기자

조복래는 마치 '21세기를 살아내는 20세기 사람'처럼 보인다. 바래어 가는 옛 감성의 힘을, 그 운치와 멋을 아는 향토적인 이미지의 배우. 이 방면에선 동년배 배우를 통틀어 그가 둘째가라면 서러울 것이다. 실제로 그를 만나본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30~40년 전에 살던 사람이 타임머신 타고 온 것 같다"고.

지난 22일 오후 충무로의 한 소공연장에서 그를 만났다. 인터뷰 장소는 넓고 고아한 원목 테이블이 놓인 3층. 그런데 1층 입구에서 그를 마중하고선 작은 '해프닝'이 벌어졌다. 3층으로 올라가는 작고 앙증맞은 엘리베이터가 작동 중 멈춰버린 것이다. 엘리베이터 안엔 네 사람이 있었다. 멀쑥이 차려입었지만 어딘가 시골 사람 같은 조복래와 그의 매니저, 기자와 영화사 직원 한 명.

난감한 상황에 일동은 잠시간 얼어붙었다. 최저속으로 느릿느릿 오르는가 싶던 엘리베이터는 기어이 2층 언저리에서 완강한 태업 모드만을 고집했다. 웃지도 울지도 못할 상황. 그러런 그때, 조복래가 한마디 툭 던졌다.

"자, 이렇게 이번 생을 마감하게 됐네요. 우리 모두 고생 많으셨습니다. 저승에서 만나요.(웃음)" 어이없는 상황에서도 그는 여유롭게 농을 던지는 거였다. 그러더니 키 큰 매니저가 완력으로 문을 열어젖혀 네 사람 모두 무사히 빠져나왔다.

마지막으로 내린 조복래는 바깥 문에 적힌 문구를 읽다가 이런 말을 덧붙였다. "어라, 최대 수용 인원이 세 명이었네요."

배우 조복래 / 사진=양유창 기자

-그냥 걸어 올라갈 걸 그랬습니다.

"뭐, 그럴 수도 있죠. 이렇게 살아있는데(웃음)."

-평소 낙천적이신 것 같아요. 서른 다섯 정도는 돼야 (영화) 데뷔할 줄 알았다는 것부터 하며.

"저는 지금도 제가 매우 빠른 시기에 활동하게 된 거라 생각해요. 복 받은 거죠. 배우 되기가 솔직히 좀 어렵나요. 준비하는 분들도 수두룩하고요. 저는 애초에 욕심이 별로 없어요. 앞으로도 욕심만큼은 가질 생각이 없고요. 주변에서 '복래야, 넌 대기만성형이다. 오래갈 거야'라고 말씀해주시는데, 그럴 수만 있다면 참 좋겠네요. 나이 들어서도 오래 연기할 수 있다는 건 배우로서 꿈과 같은 거니까요. 젊어서 확 뜨는 배우는 비주얼 배우인 경우가 많은데 전 그쪽 계열은 아니죠(웃음)."

영화 `궁합`에서 배우 조복래는 사기꾼 역술인으로 분해 극에 유머와 활력을 불어넣는다.

전날 조복래는 자신의 출연작 '궁합'(감독 홍창표·28일 개봉) 시사회에 다녀왔다고 했다. '궁합'은 제작사 주피터필름의 역학 3부작 '관상' '궁합'' 명당' 중 두 번째 영화다. 송화 옹주(심은경)의 부마(옹주의 남편) 물색차 역술가 서도윤(이승기)이 궁합 풀이를 떠맡으며 벌어지는 소동극인데, 톤은 대체로 밝고 명랑하다. 극중 조복래는 서도윤을 졸졸 쫓는 사기꾼 역술인 이개시를 열연했다.

-극중 유머 담당이신데, 배역이랑 궁합은 어땠나요.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늘 있었어요. 이런 캐릭터라면 특히요. '플레이어'들은 주어진 배역을 생각만 하다 막상 상황이 주어지면 당황하곤 해요. 머릿속 상상과 실제 자기 연기와의 온도차가 굉장히 크다는 걸 뒤늦게 실감하거든요. 저도 처음엔 자신이 있었는데 이게 코믹 캐릭터가 오랜만이어서인지···. 그간 그루미하거나 서스펜스가 가미된 배역을 주로 해왔어요. 조용 조용하고 극에 긴장을 불어넣는, 다소 무겁고 특히 느린 '결'을 도맡아온 거죠. 그래서인지 현장 스태프들 앞에서 갑자기 코믹한 분위기로 연기한다는 게 쉽지 않았어요. 시간이 좀 필요했어요."

-역술가 캐릭터가 처음이기도 할 테고요.

"일단 사기꾼이고 입만 산 놈이잖아요. 화려하게 언변으로 먹고사는 인물이라 사전 공부를 좀 했어요. 대본에 적힌 대사를 어떻게 화려하고 재밌게 표현해내느냐. 역술인들 영상을 인터넷에서 보고 또 보았어요. 제가 궁합이나 사주 보는 걸 별로 안 좋아했는데요. 이번에 조금은 전향을 하게 됐달까요."

-전향이라면?

"원래 손금 같은 거 절대 안 믿었어요. 군복무 마치고 스물세 살 즈음이었나. 호기심에 전문가한테 손금 본 적이 딱 한 번 있죠. 그때 들은 얘기 때문이었어요. '자네, 아무래도 구두나 닦아야 할 것 같은데'라고(웃음)."

-손금이 어떻길래요?

"가운데 선 하나가 없어요. 이게 일자 손금이라고, 한 번 볼래요?"

그가 양손을 펼쳐 앞으로 내뻗었다. 정말로 보통 손금과는 달랐다. 가로로 뻗어가는 줄기 하나가 그의 양손에는 없었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뻗어가는 선과 오른쪽에서 손바닥 아래로 뻗어가는 선이 전부였다.

-희한하네요.

"이게 '모 아니면 도' 손금이래요. 100억원을 벌 수 있는 손금이거나, 그 반대로 거지 될 손금이라고 일러주더군요. '에라이, 재수없네' 하며 그 뒤로는 사주 같은 거 절대 안 믿었어요. 남들이 뭐라 하든 내 나름의 삶을 살리라 다짐했죠. 오기가 생기잖아요. 괜히 의욕을 꺾는 거 같고. 그러다 이번에 '궁합' 찍으면서 조금은 재미를 붙이게 된 거예요."

배우 조복래 / 사진=양유창 기자

-현장서 궁합은 누구랑 잘 맞았어요?

"승기 씨랑 실제로 궁합이 잘 맞아요. 사주라는 게 태어난 연월일시 등에 바탕한 거잖아요. 생각보다 통계학적이고 깊이가 있어요. 그리 허무맹랑하지만도 않고요. 한 번은 같이 사주를 보는데, 승기 씨는 '수', 그러니까 물의 기운이 있대요. 화수목금토 이렇게 오행이 있다면 저도 똑같이 '수'였고요. 역술인이 저희더러 아주 좋은 궁합이라대요(웃음). 절대 충돌하지 않고 큰 물줄기가 작은 물줄기를 인도하는 형상이라면서요. 실제로 촬영장에서도 승기 씨가 리드를 하면 저는 그걸 따라갔어요."

그는 생각보다 숫기는 없었다. 말투는 조곤조곤했고, 자기를 내세우려 들지 않았다. 겸양하는 태도가 몸에 배어 있었다. 그는 "메인 롤이 주어진 배우들에게 초면부터 너무 편하게 다가가는 건 아무래도 결례인 것 같다"고 했다. "평소 말이나 행동거지를 조심하며 조용히 있는 편이에요. 다행히 '궁합'은 동갑내기 승기 씨가 리더십 있게 큰 그림을 그려줘서 금방 '아이스 브레이킹'을 했지만요."

-큰 그림이라면요?

"최민호 씨(시각장애인 서가윤 역)랑 승기 씨가 극 중 형제이고, 저도 같이 붙어 나오다보니 앙상블이 필요하잖아요. 촬영 초기 승기 씨 주도로 대판 술을 먹었어요. 촬영감독님, 피디님, 저, 승기 씨, 민호 씨와 밤중에 고량주만 30병을 먹었네요."

-덕분에 서로 많이 편해졌겠어요.

"먼저 다가워줘서 풀어주고 끌어주니 그게 진짜 고마웠어요. 현장이 편해지니 마음껏 '내'가 나올 수 있었고요. 조명감독, 카메라감독 등 현장 스태프들로 둘러싸인 가운데 혼자 활개를 치려면 스스로가 편해야 해요. 전 아직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편하게 연기하는 내공은 아닌 것 같아요."

-다른 배우들이랑은 어떠셨어요?

"전 (심)은경이라는 배우의 빛깔을 참 좋아해요. 노란색이랄까. 개나리색, 봄 같은 느낌이요. 이승기 씨가 시뻘건 상남자 스타일이라면 은경 씨는 자기만의 은은한 색이 있더라고요."

-그럼 본인은요?

"길바닥에 흔히 보는 흙색?(웃음) 황토색과 가까운 것 같아요. 토종적인 느낌이랄까. 어릴 때부터 끊이지 않고 따라붙는 저만의 수식어죠."

그의 첫 영화는 이준익 감독의 '소원'(2013). 성폭력 피해자 가족의 삶을 그린 이 영화에서 그가 맡은 건 초단역 '코코몽 알바2'이었다. 이후 몇 번의 조·단역을 거쳤고 이듬해 김한민 감독의 '명량'(2014)에 출연한다. 어지로운 전란통에 달아나다 붙잡힌 병사 오상구(조복래) 역이다. 그러니까 때는 어두컴컴한 한밤중. 수백여 명의 병사들이 그를 에워싸고 있다. 밧줄에 포박돼 무릎 꿇려진 그는 미동 없는 한 남자를 바라본다. 이순신(최민식)이다.

"칠천량에서 6년 동안을 같이한 동료들이 모두 죽었습니다요… 오늘 제 손으로 그들의 죽음들을 묻고 왔습니다요… 정말 두렵습니다요… 이제 틀림없이 제 차례 같습니다, 허허… 이제 속절없이 이렇게 다 죽어야 합니까… 으흐흑흑…"

가만히 최후 진술을 듣던 이순신은 말한다. "할 말 다했느냐." 그러고는 단칼에 오상구의 목을 베는 것이다. 극중 이순신의 냉엄함을 가장 서늘히 보여주는 장면이다. 조복래는 "이 영화가 진짜 데뷔작"이라고 강조했다.

배우 조복래 / 사진=양유창 기자

-무대와 달리 영화 촬영 현장은 어땠나요.

"이게 정말 100% 리얼이구나 싶었어요. 연극이나 공연계만 누비다 진정한 영화 촬영 현장을 그때 처음으로 접한 거죠. 거대한 세트장에 있으니 정말 영화 속에 있는 것 같았어요. 200여 명이 갑옷을 입고 횃불을 들고 창을 하늘로 향한 채 서 있어요. 저 멀리 하늘에는 우주선 같은 커다란 조명기가 떠 있고요. 제가 기존에 접해왔던 사이즈와는 차원이 다르더군요. 당시 오상구가 도망친 것에 대해 추궁받고 해명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고, 200여 명이 둘러싼 채 저를 묵묵히 쳐다보고 있었어요. 떨리고 무섭기도 하고, 때는 밤이고. 이거 잘해야 하는데 하는 부담과 공포심도 생기고···."

-제대로 카메라 앞에 선 것도 처음이었겠군요.

"그렇죠. 카메라가 배우 주변에 서 있는 거잖아요. 한 번은 이런 적이 있어요. 카메라는 제 눈에 안 보이고, 최 선배는 제 앞에 서 계세요. 왼편에는 커다란 마이크가 있고요. 거기서 목소리가 들려와요. 아무튼 해당 신에서 오상구가 탈영하다 붙잡혀 이순신 앞에 최후의 변명을 하게 되죠. 일단 준비한 연기를 꺼내보여야 겠고 감정도 북받쳐 올라 정말 진심으로 오열을 했어요. 그러니까 최 선배가 순간 당황하시더군요. '카메라가 저 산 꼭대기에 있는데 왜 그래 임마' 하시면서(웃음). 카메라가 어딘가에 숨어서 저를 찍고 있는 줄 알았던 거에요. 나중에 알고보니 얼굴 찍을 땐 카메라가 바짝 제 앞에 오더라고요."

-대선배에게 얻은 배움이 적지 않았겠네요.

"편하게 대해주셨어요. 초면에 그러셨죠. '복래는 영화가 처음이니?' '네 선배님' '처음부터 모가지 잘리면 불길한데'라며(웃음). 그러시더니 '야, 나중에 모가지 붙여서 다시 좀 해보자'고 호방하게 농담 던지시는 식이에요. 술자리에서 조언해주신 게 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말씀이 이거예요. '가슴을 울리는 연기를 해라. 너가 하는 그 대사로 보는 이들 가슴을 울려야 한다.'"

-첫 영화가 1700만명이 봤어요.

"그러게요, 당시 저한테 '천만영화 조연' 이런 타이틀도 아주 가끔씩은 붙여주기도 하더라고요(웃음)."

조복래는 부산 중구 남포동에서 나고 자랐다. 소싯적부터 음악적 감수성이 남달랐다. 우연히 집에서 들은 노찾사(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광야에서'가 "가슴을 절절히 울렸다." 그때 나이 열네 살. 그는 "애늙은이가 된 순간"이자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넌 순간이었다"며 '광야에서'를 조용히 흥얼거렸다. "해 뜨는 동해에서/ 해지는 서해까지/ 뜨거운 남도에서/ 광활한~ 만~주 벌판/ 우리 어찌 가난하리오/ 우리 어찌 주저하리오/ 다시 서는 저~ 들판에서 움켜주니 뜨거운 흙이여."

-음악은 그때부터 쭉 해온 건가요?

"저한텐 놀거리가 오락실, 노래방, 극장, 당구장 정도인데, 음악이 제일 좋았어요. 혜광고교에서 밴드부였어요. 'HAC'라고 제가 25기인데요. 거기서 기타를 처음 배웠죠. 나름 전통 있는 밴드여서 팬클럽도 있었죠. 전 인기가 없었지만요(웃음). 그러다 성우 준비를 하게 돼요."

-가수가 꿈이었겠거니 짐작했는데 아니었네요.

"고교 1학년부터 성우가 되고 싶었어요. 제가 초등학생 때면 일요일 아침마다 월트디즈니 애니메이션을 챙겨봤거든요? '티몬과 품바' '알라딘' 같은 거요. 그 시절 성우 목소리를 들으면 자꾸만 흉내내고 싶었어요. 자기 목소리로 돈을 버는 직업도 있구나, 참 멋지다 하고요. 그래서 1학년 때 '행동'에 들어간 거죠."

-어떤 행동에 착수했나요.

"부산 백병원 지하에서 성우 스터디 모임이 있다는 걸 알아냈죠. MBC 아나운서 공채 나오신 분께서 1주에 한 번씩 무료 교육을 해주셨어요. 거기 혼자 찾아가 배운 거예요. 이메일로 라디오나 드라마 대본 받으면 인쇄해서 연습하고 카페에서 같이 해보는 거죠. 그때 전부 아나운서 공채 준비하는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분들이었어요. 10대는 제가 유일했고요."

-사투리는 그때 고친 건가요. 아예 티가 안 나는데.

"맞아요, 타원형 테이블에 도란도란 둘러앉아서 정말 열심히 고쳐나갔죠. 대사를 '펴서' 읽는 법부터 장음, 단음, 혹은 변조법이랄지, 울림통 단련법 같은 걸 그때 익혀 갔어요. 그러다 2학년 됐을 때 대학 진로를 고민하기 시작해요. 선생님께 '어디로 가면 될까요?' 여쭤보니 성우들은 연극영화과 출신이 많다고 그러시대요. 그래서 부산에 있는 연극영화과 학원에 등록했죠.

-그 나이에 참 자기 주도적이었네요.

"전 하고 싶은 건 밀어붙여요. 연극영화과 준비를 하면서도 발성 부분을 반드시 바로잡고 싶었어요. 때마침 고교 3학년 때 2학년 담당으로 서원준이라는 음악 선생님이 새로 오셨어요. 성악을 전공자라고 하더군요. 젊은 남자분인데 파트는 테너였고요. 그 얘기 듣고 혼자 서 선생님께 찾아갔어요. '제가 성우와 배우를 꿈꾸는 학생인데요, 선생님께 발성을 제대로 배워볼 수 있을까요?'라고 했죠. 마침 좋다 하셨고 그 뒤로 선생님과 매일 짬 내서 훈련했어요. 브로드웨이 뮤지컬도 함께 보고 호흡법, 발성법 이런 것들을 계속 교정해나갔고요. 지금도 한 번씩 부산에 내려가면 찾아뵙고 발성 연습도 해요."

-십 수년이 지났으니 상당히 늘었겠어요?

"글쎄요, 아직 멀었다고만 하시던데요(웃음). 성악적인 근육을 자주 안 쓰다보니까 기본 소리는 안정되고 좋은데 저음 발성은 아직 힘이 약한 것 같다면서요."

배우 조복래 / 사진=양유창 기자

-부모님은 이 길을 줄곧 지지해주셨나요?

"'네 인생 네 알아서 해라'는 주의예요. 먹고사는 거 간섭할 생각 없다면서요. 아버지가 그러셨죠. '복싱보다 연기하는 게 나을 기다.'"

-복싱을 했군요.

"성우 준비하기 전 중학교 때부터 친형이랑 계속요. 지금도 취미로 하고요. 그때 아버지가 별 말씀을 안 하셨는데, 아마도 복서 되겠다고 하면 지금 생각으론 가로막으셨을 것 같아요. 정말 나중에 알게 된 건데요. 아버지께서 전국체전 출신이시더군요. 지금은 건축일을 하시는데, 다 커서 사촌 형님한테 들은 거예요. 그때가 서른 살 즈음인가. 얼마나 놀랐는지요. 과묵한 분도 아닌데 굳이 왜 감추셨을까요. 피는 못 속인다고 아들이 복싱 배우러 다닐 때 내심 놀라셨을 텐데 말이죠(웃음)."

유년 시절 품은 꿈은 으레 바뀐다. 하지만 조복래의 경우엔 궤도 변경이 그리 크진 않았다. 성우가 되겠다는 꿈은 이내 배우라는 꿈으로 한 걸음 옮겨간다. 그는 "연기에 대한 열망이 마치 운명처럼 다가왔다"고 했다. 그렇게 서울예대 연극과 05학번에 입학했다. 단짝 동기 권혁수(SNL 등 예능에서 맹활약 중이다)와 각종 무대에 올랐고, 금세 연극계 촉망받는 신인으로 떠오른다. 하지만 연극계가 그러하듯 주린 삶이 이어졌다. 2년여간 극단에 몸담을 무렵 번 돈은 하루 5000원 남짓. 극단 지하 연습실에서 1년여간 연명했고, 2010~2012년까진 고시원 생활을 전전했다. 지금은 홍대에서 혼자 지낸다는 그는 그럼에도 "그때 삶이 힘겨웠다고 여긴 적은 단 한번도 없다"고 했다.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 그걸로 충분하지 않냐"는 거였다.

배우 조복래는 영화 `쎄시봉`에서 가수 송창식으로 분해 호연했다.

-'명량' 이후 '쎄시봉'(2015)이야말로 복래 씨를 대중에게 널리 알린 작품이었죠. 송창식 선생님만의 기이한 오라(aura), 얼굴 표정, 몸동작, 발성 같은 게 곧잘 어울리던데요.

"오디션 갱쟁률이 250대1이었어요. 사실 송 선생님 배역에 있어서 '나 아니면 누가 해'라는 자신감이 있었어요(웃음). 보세요, 성악에도 관심이 있었죠, 기타도 좀 만졌죠, 생긴 것도 태어날 때부터 아주 옛날 사람 같다는 소리 늘상 듣고 살았죠. 애초 승산이 있는 게임 같았어요."

-송 선생님을 직접 뵈었나요.

"예전부터 알던 분이었어요. 선생님이 미사리 라이브 카페에서 공연 자주 하시잖아요. 예전에 찾아가면 제가 번쩍 손 들어서 '무슨 무슨 곡 불러주세요'하고 요청하곤 했어요. 그럼 다 불러주시거든요. 그때 선생님만의 디테일한 모습을 유심히 관찰했어요. 모쪼록 그렇게 선생님 연기를 하게 됐다며 당시에 찾아뵈니 확신에 찬 어조로 웃으며 말씀하시더군요. '넌 아무리 열심히 해도 나한텐 안 돼.' 그런 자신감이랄까요. 절대 부러지지 않는 자기만의 철학이 있는 사람. 그런 단단함을 표현하려 했어요. 다행히 영화 보고 나오시면서 진짜 재미있게 봤다고 좋아해 주시더라고요."

배우 조복래 / 사진=양유창 기자

-'쎄시봉' 생각하면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해요. 그때 함께 출연한 정우(젊은 오근태 역), 강하늘(윤형주 역), 진구(젊은 이장희 역), 안재홍(병철 역) 같은 배우들이 요새 한창 주연 배우로 활약하고 있잖아요. 그렇지만 복래 씨는 배우로서 개성과 역량에 비해 상대적으로 잔잔하게 가고 있지 않나, 그런 부분에 있어서 약간의 질투나 부러움 같은 건 없을까.

"전혀요, 사실 제가 좋아하는 선배 한 분이 10여 년 전에 술 한잔 하면서 이런 말씀을 주셨어요. '복래야, 네가 열매가 되고 싶다면 조바심을 내지 마라. 사람들은 네가 잘 익은 열매가 되면 알아서 따먹으려고 기다릴 것이다.' 부연설명을 드리자면 '다 때가 있다'는 거에요. 보세요. 지금 제가 잘된다고 30대 후반, 40대 넘어서서까지 그 '잘됨'이 지속될지는 모르는 거 아니겠어요. 시간이 무르익을수록 좋은 기회는 계속 올 거라고 봐요. 그걸 미리 걱정하며 주어진 오늘을 허투루 보내고 싶진 않아요. 지금 잘된다고 마냥 좋아할 필요가 없고 안 된다고 실망할 필요가 없고요. 대신 스스로를 가다듬어야죠. 어떤 배역이든 잘할 수 있으려면요."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고, 배우 조복래가 그래 보였다. "지금 이렇게 관심을 가져주고 신작을 찍는 것만으로 참 감사하고 만족한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굳이 욕심을 내자면 "나이 마흔 전에 장가는 가고 싶다"고 그는 말했다. "부모님께 예쁜 손주는 꼭 보여드려야죠(웃음)." 그런 그에게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조복래가 생각하는 연기란 무엇이고, 어떤 배우를 지향하나요?" 고심 끝에 내놓은 그의 답변은 이랬다.

"뭐랄까, 안다고 하는 순간 오만한 놈이 되는 것 같아서···. 이렇게 말할 순 있겠네요. 알려고 할수록 모르겠는 게 연기가 아닐까라고요. 마치 우리들 인생처럼요. 그리고 전 제 연기를 보는 많은 분들이 기분이 좋아졌으면 해요. 그게 참 힘든 일일 테죠. 그런 만큼 계속 수련해나가야 할 거고요(웃음)."

[김시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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