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미투 운동하려면 매도당할 각오해야" 日피해자들

유세진 2018. 2. 28. 16:0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체제순응 강요가 폭로 저지
종군위안부 인정 않으려는 것도 '침묵 강요' 때문

【도쿄=AP/뉴시스】지난 2015년 한 유명 TV 기자에게 성폭행당했다고 폭로한 일본 여성 언론인 이토 시오리(伊藤詩織)가 2017년 10월27일 도쿄에서 자신의 성폭행과 관련해 인터뷰하고 있다. 일본 여성들은 전세계에서 확산되고 있는 미투 운동에 동참하려면 자신이 매도당할 위험을 무릅써야 한다. 체제 순응과 침묵을 강요하는 사회 분위기가 종군위안부에 대해서도 침묵하게 만든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2018.2.28

【도쿄=AP/뉴시스】유세진 기자 = 전 세계적으로 미투(나도 당했다) 운동이 확산되는가운데 일본 여성들은 "미투"라고 말하려면 남들로부터 매도당할 위험을 무릅써야만 한다.

일본 소셜 미디어에는 지난해 트위터를 통해 고객의 성관계 요구를 거절해 사업 계약 체결에 실패했다고 밝힌 시이키 리카(椎木里佳)에 대해 거짓말장이에 이름을 알리려 한다는 비난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일부는 그녀가 고객과 저녁식사를 함께 하겠다고 동의해 고객에게 성관계를 요구하게 유도했다고까지 비난하고 있다.

20살의 여대생이자 사업을 운영하는 시이키는 지난해 12월 TV 토크쇼에서 "나에 대해 부정적으로 말하는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다. 일본도 말할 수 있는 사회로 바뀔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성희롱과 같은 부적절한 행동은 영원히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피해 사실을 공개한 여성들이 같은 여성들로부터 비난 받는 일이 잦은 일본에서는 #미투 운동이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도쿄에 있는 소피아 대학의 미우라 마리(三浦 まり) 교수는 "오랜 세월 여성들이 비난을 감수해야만 했던 특수한 사회에서는 지원과 정의를 찾는 대신 많은 희생자들이 성희롱 등 공격당한 것을 잊으려 시도한다"고 말했다. 그녀는 "일본에는 여성 해방을 위한 여성들 간 동지 관계가 부족하다. 희생자들이 자신의 피해 사실 공개를 꺼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덧붙였다.

지난해 성폭행당한 사실을 폭로한 여성 언론인 이토 시오리(伊藤詩織) 역시 성폭행 폭로에 따른 비난에 시달리고 있다. 이토는 일본 검찰이 지난 2015년 자신을 성폭행한 유명 TV 기자를 처벌하지 않자 기자회견을 열고 성폭행 사실을 폭로했다.

그러나 온라인 댓글들은 이토가 TV 기자를 유혹했으며 유명인의 삶을 망치려 한다고 비난하는 것들이 대부분이었고 일부 여성들조차 그녀의 폭로에 당혹스럽다는 반응을 나타냈다고 이토는 말했다.

미국에서 미투 운동이 한창이던 지난해 10월 이토는 자신의 성폭행 피해 경험을 담은 책 '블랙박스'를 펴내면서 일본 내에서 성폭행 피해에 대한 공개토론을 시도했으나 소수의 여성들만이 함께 했을 뿐이다.

성범죄 전문 변호사 쓰노다 유키코(角田由紀子,여)는 "많은 사람들이 이토 시오리 문제는 자신과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일본에서 #미투 운동이 확산될 수 없는 이유"라고 말했다.

2015년 정부 조사 결과에 따르면 성폭행 희생자의 4분의 3은 결코 자신의 피해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 않았으며 경찰에 성폭행 사실을 신고한 피해자는 4%에 불과했다. 이 조사에서 일본 여성 15명 중 1명은 성폭행 경험이나 성관계를 강요당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쓰노다 변호사는 "희생자들은 두려움이나 사생활에 대한 우려, 직장에서의 해고 등의 이유로 법정에 서는 것을 꺼린다"고 말했다.

일본에서 성폭행범이 재판을 받는 것은 전체의 3분의 1에 불과하며 그나마 처벌도 미미하다. 2017년 성폭행범으로 재판받은 1678명 가운데 3년 이상 징역형을 선고받은 사람은 285명으로 17%에 그쳤다. 지난해 11월에는 요코하마(橫浜) 검찰이 10대 여학생에게 술을 먹여 취하게 한 뒤 집단 성폭행한 유명대학 학생 6명에 대해 이유도 설명하지 않고 석방한 일도 있었다.

하추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는 유명 작가 이토 하루카(伊藤春香)도 지난해 자신이 당한 성희롱 피해를 폭로했다가 오히려 비난만 받아야 했다. 그녀는 피해 사실을 폭로하는 것이 자신의 이미지를 망치고 전 동료를 해칠 것을 우려해 처음에는 입을 다물려 했지만 이토 시오리의 폭로와 #미투 운동의 세계적인 확산을 보면서 폭로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의원 출신으로 성(性)다양성 운동가인 이케우치 사오리(池內沙織)는 "체제에 순응해야 한다는 압력이 원치 않는 성관계 등 많은 문제들에 있어 여성들의 침묵을 강요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마음가짐이 2차대전 중 일본이 저지른 종군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도 일본인들을 침묵하게 만들며 위안부 피해 여성들에 대한 동정심조차 갖지 않게 만든다.

그럼에도 일부이긴 하지만 여성들의 성폭행이나 성희롱 피해 사실 폭로는 계속되고 있다.

그 자신 성폭행 피해자인 고바야시 미카라는 여성은 같은 성폭행 피해 여성들과 경험을 공유하며 자신들을 돕는 활동을 펴고 있다. 그녀는 피해자들을 이해하고 지원을 제공하는 일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고바야시는 "과거 나는 큰 비밀을 감춘 깨끗치 못한 자책감에 사로잡혔었다. 그러나 다른 피해자들과 교류하게 되면서 힘을 얻고 치유받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녀는 "중요한 것은 피해자들이 편안하게 느낄 수 있는 것이며 그럴 수 있다면 굳이 성폭행 피해 사실을 공개하지 않는 것도 괜찮다"라고 말했다.

dbtpwls@newsis.com

<저작권자ⓒ 공감언론 뉴시스통신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Copyright ©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