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오디션 보는 셈치고.." 드라마제작사 대표의 노래방 성폭행 사건
연기자의 꿈 짓밟은 외주사 대표 드라마 출연 시켜준 뒤 성폭행 “어른으로서 미안… 너무 취해서” 여대생 A씨, 부실수사에 또 ‘상처’
“우리나라는 아직 폭행이나 협박이 없는 단순한 ‘비동의 간음’을 처벌하는 데까지는 입법적인 수준이 이르지 않은 관계로 피의자를 형사 처벌하기는 어렵다는 사실을 알려드립니다. ”
드라마 외주제작사 대표로부터 성폭행을 당한 연기자 지망생 A(대학생)씨가 검찰로부터 받은 문자메시지다. 성폭행을 당한 다음날 직접 경찰에 찾아가 신고했고, 해바라기센터에서 증거 채취도 했다. ‘무혐의 처리됐다’는 이 문자를 받기까지 두달 보름여 동안 1차례, 40분 남짓 경찰 조사를 받은 것이 전부였다.
가족과 변호인 측이 주장하는 A씨의 성폭행 피해 상황은 이렇다.
A씨는 작년 5월 말 드라마 외주제작사 대표 길모(52)씨와 술을 마셨다. 길씨는 A씨 아버지와 아는 사이로, 연기자 지망생이던 A씨에게 드라마 단역배우 출연 기회를 몇 차례 만들어줬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만나는 식사자리에 2~3차례 불려나간 적도 있다.
이날은 나갔더니 길씨 혼자 있었다. 서울 용산구의 한 일식집이었다. 오후 6시부터 3~4시간을 마셨다. A씨는 취했다. 몸을 가누지 못해 식당에서 넘어져 무릎도 다쳤다. 길씨는 2차로 노래방에 가자고 했고, A씨는 머뭇거렸다. “오디션 보는 셈치고 노래방에 가서 노래 3곡만 부르고 가라”는 재차 요구에 따라나섰다. 결국 그곳에서 ‘일’은 벌어졌다.
노래방에서 나온 길씨는 A씨에게 10만원짜리 상품권 1장을 줬다. A씨는 상품권을 움켜쥐고 택시 올라탔다. 울음을 참으며 상품권을 내다 버렸다.
‘혼란스러운 상황을 잘 다스리고 심신을 추스르기 바란다. 우리 서로가 혼란했던 시간에 대해 상처가 됐다면 내가 깊이 용서를 구한다’
A씨는 이튿날 길씨로부터 이런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답변을 하지 않자 며칠동안 수시로 카카오톡 메시지가 날아들었다. ‘서로 술이 많이 취했다’, ‘어른으로서 미안하다’, ‘용서를 구한다’ 등의 내용이었다. ‘믿음으로 보답할 수 있다면 뭐든 마다할 수 없겠지’라고도 했다.
A씨 측은 “노래방에 가기 전부터 기억이 잘 안날 정도로 취해 있었다. 서른 살이나 많은 어른이고, 딸이 고교생이라는 말까지 들어 설마 했던 것 같다”며 “연예인이 되는 게 꿈이었던 A씨 입장에선 그쪽 분야에서 영향력을 가진 길씨의 어떤 요구도 거절하지 못했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했다.
신고 후 40여분 조사가 전부 대질조사도 현장조사도 없어 검찰, 송치 하루만에 ‘무혐의’ “단순 비동의 간음 처벌 못해”
A씨는 이튿날 새벽 부모와 남자친구에게 털어놨다. 남자친구와 함께 곧바로 해바라기센터로 가서 성폭행 신고를 했다. 증거 채취도 했다. “가서 기다리고 있으라”는 경찰관의 말만 믿고 집으로 돌아왔다.
2주쯤 지났을까. 용산경찰서로부터 “나와서 조사 받으라”는 연락이 왔다. A씨는 “조사실의 딱딱한 의자에 앉았더니 온몸이 벌벌 떨렸다”고 했다. 그것도 잠시 조사는 금방 끝났다. A씨 기억으로는 1시간도 채 되지 않는 시간이었다. 누구 말이 맞는지 대질조사도 한번 안했다. 뭘 묻고, 뭘 대답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무서웠다고 한다. 다음날 담당 경찰관에게 길씨로부터 받은 문자메시지 등도 증거로 보내줬다.
한달이 지났다. 수사 진행 상황 등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7월 중순 어느 날, 경찰에 전화했더니 이미 하루 전 길씨 사건을 ‘불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고 했다. 그날 밤 서울서부지검 ○○○호 검사실로부터 “길씨를 처벌하기 어렵다”는 문자메시지가 왔다. 송치 하루만에 검찰이 불기소 처분을 내린 것이다. A씨는 하늘이 무너져내리는 것처럼 막막했다고 했다.
A씨는 이튿날 변호사를 선임해 검찰에 추가 의견을 전달했다. 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결국 A씨는 변호사를 통해 “다시 조사해달라”고 검찰에 항고장을 접수했다.
검찰은 그해 11월 이 사건에 대해 재기 수사 명령을 내렸다. 당초 수사했던 서울서부지검으로 사건은 되돌아갔다. 그로부터 3개월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진척된 내용은 하나도 없는 상태다.
이에 대해 길씨는 본지에 “이 사건과 관련해 드릴 말씀이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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