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체 먹는 개, 얼어 있는 개..'동물 지옥' 구조 방법이 없다

2018. 2. 28.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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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경기 시흥 수십마리 개들, 동물 사체 덩어리 먹어
시흥시 "동물학대 적용 애매..행정대집행 고려 안해"
동물자유연대 "농장주 설득만이 답이라니.."

[한겨레]

개들이 농장 안에 있는 좁은 케이지에 갇혀있다.
농장 뒤쪽 언덕 위에도 개들이 묶여 있었다.

지난 8일 낮 경기도 시흥시 국도 근처에 있는 임야, 주차장으로 쓰고 있는 너른 공터를 지나니 개 짖는 소리가 요란했다. 그 소리는 녹이 슨 철문이 담처럼 둘러쳐진 농장 안과 밖에서 들려왔다. 농장 대문 앞에는 개들의 밥으로 보이는 음식물 쓰레기가 가득 담겨있는 통이 여러 개 있었다.

농장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각종 공사 장비로 막혀있었다. 사용하지 않은 지 오래된 듯한 기계 아래로 십여 마리 개들이 줄에 묶여있었다. 달려오면 사람을 쉽게 물 수도 있는 거리였지만, 개들은 짖기만 할 뿐 물지 않았다. 고개를 들어보니 농장 뒤의 언덕으로도 십여 마리의 개가 묶여있었다. 개들은 목에 건 쇠줄이 팽팽하게 당겨져도 서로 닿지 않을 정도로 떨어져 있었다. 추위를 피할 집은 따로 없었고, 흥분한 개들 발 옆으로는 멧돼지 사체로 보이는 시뻘건 고깃덩어리가 놓여있었다.

농장에는 개뿐 아니라 우제류로 보이는 동물, 염소, 돼지, 말 등도 빛이 들어오지 않는 우리 안에 있거나 나무에 줄로 묶여있었다. 개들의 종류도 다양했다. 개 중 가장 지능이 높다는 보더콜리를 비롯해 시베리안허스키, 케인크로스, 오브차카, 핏불테리어, 도사견과 믹스견 등이 보였다.

‘동물 지옥’이 있다면 이곳 같았다. 언제 어떻게 죽었는지 모르는 도사견과 새끼 양이 꽁꽁 언 채로 다른 개들 우리 바로 옆에 버려져 있었다. 케이지 안에 있는 개 중에는 제대로 눈도 뜨지 못하고 죽어가는 개가 있었고, 수도가 연결된 우리 안에는 도축에 사용한 적이 있는 것 같은 칼이 보였다. 동물의 신체 부위로 보이는 기름 낀 고기를 물이 담긴 통에 담아두었고, 바닥에는 핏물 흔적이 남아있었다.

농장주는 자신이 키우는 개가 모두 70마리라고 했다. 이날 농장주는 기자에게 “나라에서 주는 연금으로 생활한다. 한 근에 2500원에 개를 팔기도 했고 도축도 직접 했지만 지금은 안 한다”라고 말했다. 개들은 다 어디서 사들였냐는 질문에 “섬에서 가져가라고 줬다. (동물보호단체가 문제라고 하니) 내가 좋아하는 개 10마리만 남기고 광명의 개농장주에게 팔고 개농장을 정리할 것”이라고 답했다.

동행한 동물자유연대 정책팀 송지성 간사는 “이전에 방문했을 때도 동물학대 가능성이 있어 주의 조치를 한 적 있지만 크게 달라진 것은 없어 보인다. 전국에 이렇게 소규모로 동물을 키우는 농장이 수두룩할 것”이라고 말했다.

농장 안의 모습. 안쪽에 동물 우리가 있다.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 공사 장비 사이에 개들이 묶여 있다.

동물자유연대는 농장에 대한 동물 학대 관련 제보를 받고 지난 1월부터 농장을 3번 방문했다. 건강이 좋지 않은 개 8마리와 고양이를 구조하기는 했지만, 남은 개 70마리를 다 구조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또 매번 농장주에게서 무작정 개를 ‘구매’하는 것도 옳은 결정도 아니라고 판단했다.

농장을 그만두게 할 방법은 없을까. 농장이 있는 곳은 그린벨트 지역이었다. ‘개발제한구역의 지정 및 관리에 관한 특별조치법’대로라면 이곳에서는 개농장은 물론 토지개간, 건축물이나 비닐하우스 설치가 불법이다. 게다가 농장주는 토지 소유주의 허락 없이 무단으로 점유해온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토지주조차 농장을 그만두게 할 방법이 없었다.

토지주를 대리하고 있는 법무법인 두우의 심보문 변호사는 “시흥시가 그린벨트 지역인 이곳에 지어진 불법 건축물에 과태료를 부과하면서 농장의 불법 점유 사실을 확인했다. 사유재산 침해로 고소한 상태인데 농장주가 나가지 않고 있다. 시흥시가 행정대집행을 하지 않는다면 토지주가 명도소송을 해 철거 집행을 하는 방법밖에 없는데 강제력이 없으니 사실상 불투명한 상태”라고 말했다.

시흥시도 별다른 방법을 못 찾았다. 그린벨트 안의 가축사육을 이유로 시정명령과 이행강제금만 부과할 수 있는데 이마저도 적용하지 못하고 있다. 시흥시 건축과 녹지지도팀 박재서 책임관은 “점유자는 토지주에게 돈을 주고 임대했기 때문에 토지주에게 책임이 있지 자신은 책임이 없다고 주장한다. 1년에 두 번 이행강제금을 부과할 수 있고 고발까지 할 수 있지만, 점유자가 책임이 없다고 하니 누구에게 부과해야 하나 난감하다. 철거 같은 행정대집행까지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죽은 개와 죽은 양이 방치돼있었다.

동물학대 혐의는 없을까. 동물보호법 위반을 확인하기도 쉽지 않다는 게 시흥시 입장이다. 시흥시 생명기술센터 농축산방역팀 이태휘 주무관은 “동물보호법에는 동물에게 ‘적절한’ 조치를 해야 한다. ‘적합한’ 사료와 물을 줘야 한다 등 학대에 대한 정의가 너무 모호하다”라며 “또 학대 혐의를 적용하려면 고의성을 확인해야 하고 당시 상황을 적발해야 하는데 쉽지 않다. 또 이를 적발해 동물을 농장주로부터 격리한다고 해도 소유주가 반환요청을 하면 돌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시흥시는 동물 사육 환경 개선 등 동물보호와 관련해 시정명령을 했으니, 일단 농장주의 변화를 기다리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농장주가 이를 이행하지 않는다 해도 과태료 30만원만 내면 된다. 시흥시는 지난 22일 농장을 다시 방문해보니 농장의 개 숫자는 크게 줄었지만 환경은 그대로라고 27일 밝혔다.

동물자유연대 정책팀 조소영 간사는 “시흥시가 의지가 있다면 당장에라도 행정대집행, 긴급구조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켜보기만 한다. 법도 허술하니 농장 안에서 동물들이 죽어 나가는 걸 알면서도 이런 농장을 방치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시흥/글·사진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영상 동물자유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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