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브레이크 없는 일본의 '영토·역사 왜곡'

2018. 2. 28.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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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아베 정권 출범 이후 일본에서 영토 왜곡 주장은 갈수록 기승을 부리고 있는 모습이다. 지난 1월 25일에는 일본 정부 차원에서는 처음으로 도쿄 한복판에 ‘독도가 일본 땅’이라고 주장하는 자료 등 영토 관련 선전을 하는 전시관을 개설했다.

에사키 데쓰마 일본 영토문제담당상이 지난달 25일 도쿄 히비야에 개관한 영토주권전시관에서 ‘독도는 일본 땅’이라고 주장하는 자료들을 둘러보고 있다./도쿄/AP연합뉴스

일본의 영토·역사 왜곡이 점점 노골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일선 학교에서의 독도 왜곡 교육체제는 사실상 완성 단계에 이르렀고, 정부의 홍보전도 적극 이뤄지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비롯, 과거 식민지배와 침략전쟁 등 가해의 역사를 뒤집으려는 시도도 거리낌없이 이뤄지고 있다. 2012년 제2차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 출범 이후 더욱 뚜렷해진 국가주의적 역사·영토관이 이런 움직임을 가속화하고 있다. 최근 북한 핵·미사일 위기와 이를 부채질하는 듯한 일본 정부의 대응으로 인해 일본 사회 전체가 ‘브레이크’ 없이 한 방향으로 치닫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교과서에 식민지배와 침략전쟁 미화

일본 문부과학성은 지난 2월 14일 공개한 고교 학습지도요령 개정안에서 역사총합(종합)과 지리총합, 공공 과목에 ‘다케시마(일본이 주장하는 독도의 명칭)와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열도는 일본 고유 영토’로 가르치도록 했다. 지난해 초·중학교에 이어 고교 학습지도요령에도 독도의 일본 영유권을 처음 명기함으로써 일선 교육현장에서의 영토 왜곡 교육이 체계를 갖춘 셈이다.

학습지도요령은 법적 구속력을 갖고 있어 교육현장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미 일본 정부는 2008년 중학교 사회과 학습지도요령 해설서, 2014년 중·고교 학습지도요령 해설서, 2017년 초·중학교 학습지도요령에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내용을 명기했고, 현재 초·중·고 교과서 상당수에 이런 왜곡 주장이 들어 있다. 이번 고교 학습지도요령 개정은 이런 흐름에 쐐기를 박는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식민지배와 침략전쟁 미화도 두드러진다. 역사총합 과목에 ‘일본 근대화와 러일전쟁 결과가 아시아 제민족의 독립과 근대화 운동에 주는 영향’을 명시하고, ‘구미제국이 아시아 제국에 세력을 확장하고, 일본이 조선반도와 중국 동북지방에 세력을 확장한 것’도 다루도록 했다. 하지만 러일전쟁 이후 군비확장, 식민지배 등의 표현이 빠져 제국주의 침략 사실을 부정하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또 ‘우리나라 역사에 대한 애정’(역사총합), ‘국토에 대한 애정’(지리총합) 등 애국심을 강조한 표현이 대거 포함돼 과거 군국주의 시절로 회귀한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아사히신문은 사설을 통해 “정권 비판과 재일 외국인의 존재 자체를 ‘반일(反日)’로 규정하는 풍조가 만연해 있다”며 “일본의 입장을 줄기차게 강조하는 쪽으로 학습지도요령이 변경된 것에 위험함을 느낀다”고 밝혔다.

실제 제2차 아베 정권 출범 이후 일본에서 영토 왜곡 주장은 갈수록 기승을 부리고 있는 모습이다. 지난 1월 25일에는 일본 정부 차원에서는 처음으로 도쿄 한복판에 ‘독도가 일본 땅’이라고 주장하는 자료 등 영토 관련 선전을 하는 전시관을 개설했다. 지난 2월 22일 일본 시마네현이 제정한 이른바 ‘다케시마의 날’ 행사에는 영토문제를 담당하는 야마시타 유헤이(山下雄平) 내각부 정무관이 참석했다. 일본 정부는 아베 총리 재집권 이후 6년째 차관급 인사를 파견하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 역사문제에서의 ‘역주행’도 뚜렷해지고 있다. 일본 정부는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를 둘러싼 한국 정부의 추가조치 요구에 대해서는 ‘1㎜도 움직일 수 없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오히려 ‘위안부 합의’가 국가 간 약속임을 강조하면서 문제가 ‘최종적·불가역적’으로 해결됐다는 점을 적극 홍보하고 있다.

이미 일본 보수우익 세력은 국내에서의 ‘역사전’은 사실상 승기를 잡았다고 보고, 국제무대로 보폭을 넓히고 있다.

2014년 미국 뉴저지주 유니언시티 리버티플라자에서 위안부 피해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위안부 기림비 제막식이 열리고 있다./연합뉴스

지자체에서 확산되는 역사수정주의

스기야마 신스케(杉山晋輔) 신임 주미 일본대사는 지난 15일 위안부 소녀상에 대한 일본의 입장을 이전보다 더 강력히 미국에 전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 기자들과 만나 미국 내에서 위안부 기림비가 잇따라 설치되고 있는 것에 대해 “일본의 생각을 한층 알기 쉽게 설명해가겠다”며 “지금까지 이상으로 강력하게 발언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앞서 아베 총리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시의회가 지난 2016년 11월 위안부 기림비 설치 수용을 결의한 데 대해 “일본 정부의 입장과 양립하지 않아 매우 유감”이라며 샌프란시시코 시장에게 거부권 행사를 요청했다.

집권 자민당 내에도 역사문제와 관련해 국제무대에서 발언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 나오고 있다. “역사수정주의로 비칠 수 있다” “여성 인권을 존중하는 움직임이 강해지고 있어 정부가 나서면 잘못된 메시지를 줄 수 있다” 등의 일부 우려는 묻히는 모습이다.

지난 14일 마에바시(前橋) 지방법원은 군마(群馬)현이 2014년 현립공원에 있는 조선인 강제연행 희생자 추도비의 설치기간 갱신을 불허한 처분을 취소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추도비는 시민단체가 군마현과 교섭을 거쳐 2014년 건립했다. 하지만 군마현은 추도비 앞에서 매년 개최되는 추모식에서 ‘강제연행’ 등의 표현이 사용된 것을 문제삼는 항의가 이어지자 갱신을 불허했다. 법원은 이 처분이 ‘재량권 일탈’이라고 판단했다. 다만 군마현의 처분이 ‘표현의 자유에 반한다’는 원고 측 시민단체의 주장은 인정하지 않았다. 앞서 군마현에서는 지난해 4월 군마현립미술관에서 전시 예정이던 ‘군마현 조선인 강제연행 추도비’ 전시가 돌연 취소돼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처럼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역사인식 등 논란을 부를 문제를 틀어막으려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지난 2014년 나라(奈良)현 덴리(天理)시에서는 전시 비행장 건설에서 강제연행이 있었다고 기재한 설명판을 시가 철거했다. 같은 해 일본이 패망 직전 일왕의 임시거처와 전시 최고사령부 이전 등을 위해 건설하고 있던 나가노(長野)현 ‘마쓰시로 대본영’ 지하 입구 간판에 쓰여 있던 조선인 노동자 ‘강제동원’ 문구가 테이프로 가려졌다가 ‘전원 강제동원은 아니다’라는 견해가 더해졌다. 후쿠오카(福岡)현 이즈카(飯塚)시 시영 묘지에 시민단체가 설립한 추도비도 강제연행의 문구 등에 대한 항의가 있다는 이유로 시 당국이 비문 수정을 요구하고 있다.

이런 움직임은 일본 내 국가주의가 고조되고, 일본 정부가 견해를 명확히 하지 않으면서 확산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요시자와 후미토시(吉澤 文壽) 니가타국제정보대 교수는 “대다수 연구자들이 조선인 노동자들의 강제연행을 인정하고 있다”며 “지자체들은 역사수정주의적인 언설을 용인하지 않겠다는 뜻을 표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진우 경향신문 도쿄특파원 jw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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