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北·美 샅바싸움 속 .. 南, '산토끼' 쫓다 '집토끼' 놓칠라

김예진 2018. 2. 27.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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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평창 .. 기로에 선 한반도 <하> / 과거 금기시되었던 주제 다뤄 / 김영철 방남 '北태도 변화' 의미 / 美 지금은 타이밍 아니라 생각 / 본대화로 넘어가기엔 큰 장벽 / 北·美 힘겨루기 南 스탠스 중요 / '중재' 입장 韓·美관계에 부적절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북·미가 대화의 조건을 놓고 본격적인 힘겨루기에 돌입했다. 방남(訪南) 기간 김영철 조선노동당 중앙위 부위원장(당 통일전선부장)의 북·미 대화 용의 표명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적절한 조건(right condition)하의 대화로 맞서는 형국이다. 북·미 대화는 4월 한·미 연합군사훈련과 관련한 갈등을 최소화하고 향후 남북관계 개선의 속도와 폭을 결정한다는 점에서 한반도 정세 변화의 최대 변수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27일 “과거 북한은 핵·미사일 문제를 결코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지 않겠다고 대외적으로 선언했는데 이번 남북 고위급 접촉에서 북한의 비핵화와 북·미 대화 문제를 진지하게 논의했다면 이는 상당히 중요한 태도 변화라고 할 수 있다”며 “남북 고위급 접촉에서 과거에는 금기시되었던 주제들을 다룬 것만으로도 이번 김영철 부위원장의 방남은 큰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북·미 간에 초기 단계의 탐색적 대화가 열리더라도 본격적인 대화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시간과 조건이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북핵 6자회담 수석대표와 주러시아 대사를 역임한 위성락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객원교수는 “초기 단계 접촉은 있을 수 있지만 그건 평창동계올림픽 계기가 아니더라도, 우리가 주선하지 않더라도, 미국이 원하면 언제든지 할 수 있는 대화”라며 “의미 있는 북·미 대화는 당분간 어렵다”고 전망했다. 이어 “관건은 미국인데 미국은 지금 그럴(대화) 때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최근의 강력한 제재도 시간이 더 가야 효과가 나기 때문에 미국이 지금 대화를 할 최적의 여건이나 타이밍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준형 한동대 국제어문학부 교수는 “북한이 나오는 속도나 규모, 유연함, 진정성 때문에 미국이 당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탐색적 대화에서 본대화로 넘어가는 건 큰 장벽이 있다. 탐색적 대화까지는 희망적이지만 그것이 본회담으로 이어질지는 쉽지 않다. 미국은 일단 탐색적 대화로 테이블에 앉은 뒤 북한 탓을 하고 깨고 나올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북·미가 샅바 싸움을 하는 과정에서 정부의 스탠스가 중요하다.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북·미 대화를 견인한다는 정부의 전략적 의도와는 무관하게 산토끼(북한)를 잡으려다 집토끼(미국)를 잃을 가능성이 있는 탓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26일 오후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이후 선(先)핵동결·후(後)핵폐기의 2단계 비핵화 로드맵을 강조해왔다. 문 대통령이 김 부위원장을 만났을 때도 이런 단계적 접근법을 제시했을 가능성이 있다. 외교 소식통은 이와 관련해 “미국은 핵 동결이라는 말 자체가 북핵을 인정해준다는 전제하에 이뤄지는 것으로 보고 있다”며 “핵포기 없는 북한의 말장난은 의미가 없다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국은 북한의 평화공세에 강력한 대북제재로 대응하겠다는 입장”이라며 “핵 포기 없는 북한의 평화공세에 속아 넘어가지 않겠다는 생각이 강하다”고 전했다.

특히 한국이 북·미 사이에서 중재하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것은 향후 한·미 관계에도 치명적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최강 아산정책연구원 부원장은 “중재 외교라는 말은 나오지 않았으면 한다. 중재라는 것은 양쪽의 등거리 입장에서 양쪽을 한자리에 놓겠다는 것”이라며 “적어도 우리는 북한의 태도 변화를 끌어내서 미·북 대화로 가야 한다는 입장을 이야기해야지 미국과 북한 사이에서 중재한다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미국은 대북 압박의 명분 확보와 한국 관리 차원에서 대북 접촉에 나설 수 있으나 북한에 대한 불신이 커 진정한 대화 의지는 없다”며 “북한도 남북 대화 유지를 통해 미국의 대북제재 강화를 막아내며 시간을 벌다가 결국 비핵화에 진전이 없어 우리가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하면 그걸 빌미로 다시 도발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예진·김민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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