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대한민국 미래 리포트>韓은 2세兒조차 35%가 사교육.. 창의력커녕 '암기神'만 키워

정유진 기자 2018. 2. 27. 11:4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창의력을 갖춘 융합형 미래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서는 객관식·암기 위주의 교육 시스템을 전면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사진은 대학수학능력시험을 한 달 앞둔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이 자습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3부. 경직된 노동, 주입식 교육을 넘어서 - ④ 입시 위주서 한 치도 못 벗어난 한국

논술·수학·영어 학원 뺑뺑이

어릴 때부터 문제풀이 반복

융합력 등 시대요구에 ‘역행’

英선 2박3일 토론 뒤 당락

日은 수학 논술형 출제키로

“우리도 현 입시제도 바꿔야”

“한국 학생들은 학교와 학원에서 미래에 필요하지도 않을 지식과 존재하지도 않을 직업을 위해 하루 15시간 이상을 낭비하고 있다.” 한국 교육 현실에 대한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의 평가다. 지금은 4차 산업혁명시대다. 시대가 요구하는 ‘인재상’은 과거 단순 암기형 인재가 아니라 창의력과 융합력을 갖춘 인재다.

주입식 교육으로는 미래 인재를 더는 길러낼 수 없다는 게 시대의 요구다. 세계는 이미 창의성 교육으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미국과 일본은 과감하게 과거를 벗어던지고 교육개혁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주입·암기·객관식 교육이 몇십 년째 똑같은 상황이다.

백순근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는 27일 “시대 상황과 맞지 않는 한국 교육 방식은 비합리적인 대학입시 평가 방식, 바늘구멍 입시 통과만을 위한 잘못된 방향의 과도한 사교육에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고 말했다.

◇사교육 때문에 창의력 ‘원천봉쇄’ = 이원영 중앙대 유아교육과 교수는 “유치원 때부터 초등학교 과정을 선행 학습하면 그 시기에 발달해야 하는 전두엽에 악영향을 끼친다”고 지적했다. 초등학교 입학 전에는 창의·인성을 길러주고 동기를 유발하는 교육을 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는 의미다. 해당 시기에 두뇌는 사고와 인성을 관장하는 전두엽에서 급격하게 신경 회로가 발달하기 때문이다. 부작용은 연구결과에서도 드러난다.

국무총리 산하 국책 연구 기관인 육아정책연구소가 지난해 말 발표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사교육을 많이 받을수록 창의력이 떨어지는 현상이 나타났다. 5세 유아, 초등 2학년과 5학년 등 270명을 조사했더니 사교육 횟수가 일주일에 한 번 늘수록 창의력 점수는 0.563점씩 떨어졌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만 2세의 35.5%, 5세의 83.6%는 학원에 다니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2세 유아가 받는 사교육 중에서는 한글, 독서, 논술 등 국어(26.8%)가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 체육(15.1%), 미술(14.5%), 과학·창의(10.2%), 수학(7.9%), 영어(7.7%) 순이었다. 5세 대상 사교육도 국어(24.5%)가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가운데 체육(19.0%), 수학(17.3%), 미술(11.0%), 음악(9.4%), 영어(5.5%), 과학·창의(5.1%) 등을 기록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창의적 인재 양성이 제대로 될 리 없다는 지적이다.

사교육 중심의 주입식 교육은 세계적인 교육 추세와도 역행한다. 싱가포르는 10년 전부터 ‘덜 가르치고 더 많이 배우게(teach less, learn more)’ 정책을 전국 초등학교를 대상으로 펴고 있다. 교사가 수업 시간에 일부만 학생들에게 알려주고 나머지 지식은 학생 스스로 찾아가는 식이다. 뉴질랜드 학교에선 ‘국·영·수’로 대표되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주요 과목이 국어·예술·체육 순이다. 예술·체육을 중시해 아이들의 사회성과 관계 능력을 키우겠다는 국가 교육 철학이 잘 나타나 있다. 핀란드는 초등학생들이 한 학기 동안 자기가 하고 싶은 활동을 정해 탐구하는 ‘과학 도전 프로젝트’ 학습을 하고 있다.

◇객관식·주입식 한계 못 벗는 입시 = 교육계는 우리나라 학생과 학부모가 사교육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근본 원인에 ‘대입’이 있다고 주저 없이 말한다. 초·중·고교 교육이 대입과 밀접하게 연계된 상황에서 대입 제도에 대한 변화 없이 교육 현장의 변화를 끌어내기는 불가능하다는 점에서다. 실제 지금 같은 객관식 위주의 대학수학능력시험에 대비하려면 초·중·고교 12년간은 물론이고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학원을 찾아 문제 풀이 방식의 수업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대입의 변천사를 보더라도 내용에서는 달라진 게 없다. 수능 이전의 대입 시험은 과목별 지식을 주로 측정했다. 정부가 1994년 주입식 암기 교육에서 벗어나기 위해 통합적 사고력을 측정하는 데 목표를 두겠다며 새로운 입시 방식으로 도입한 수능도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애초 도입 목적과 달리 수험생들은 연계율 70%를 보장하는 EBS 교재를 외우고 적중문제를 반복해서 풀이하는 방식으로 수능 시험을 준비했다. 이름만 바뀌었지 수험 방식은 과거 학력고사 때와 변한 게 없다.

2010년 이후 수시모집 확대와 입학사정관제(학생부종합전형) 도입으로 수능의 절대적 영향력이 줄긴 했지만, 여전히 대학 입시에선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수능을 위한 주입식 교육이 초·중·고교 교육의 주를 이룬다. 교육부가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 토론·협력 수업을 대폭 늘려놨지만, 입시제도가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는 상황에서 효과가 나타날지는 미지수라는 평가다.

일본은 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한국과 비슷하게 객관식·주입식 입시에 익숙했던 일본은 최근 논술형 교육과정을 도입하고, 2~3년 후 대학 입시부터는 논술 문제를 낸다는 방침을 세웠다. 일본 정부는 2020년부터는 ‘대학센터시험’을 폐지하고, ‘대학입학공통시험’을 도입한다는 계획이다. 센터시험은 지식 자체를 묻는 객관식 시험이지만 새 대학입학공통시험은 지식 활용 능력을 본다. 과거와 달리 국어(일본어)와 수학 과목이 논술형으로 출제된다.

900년 역사의 영국 옥스퍼드·케임브리지대에서는 입학시험을 위해 학생들이 보통 2박 3일간 기숙사에 머물며 교수가 낸 문제에 답하고 토론한다. 다른 성적이 아무리 좋아도 여기서 말문이 막히면 낙방하는 방식이다. 정부는 오는 8월 2022학년도 대입제도 개편안을 내놓을 계획인데 대대적인 개편이 이뤄질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정유진 기자 yoojin@

[문화닷컴 바로가기|문화일보가 직접 편집한 뉴스 채널|모바일 웹]

[Copyrightⓒmunhwa.com '대한민국 오후를 여는 유일석간 문화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구독신청:02)3701-5555/모바일 웹:m.munhwa.com)]

Copyright © 문화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