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콘크리트 지지율 뒤엔 러스트벨트 백인 노동자 있다

조진형 2018. 2. 27. 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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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팎서 욕 먹어도 꾸준한 인기 왜
도널드 트럼프. [EPA=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지지율이 40% 선을 오르내리고 있다. 해외에선 아무리 욕을 먹어도 30%대 중후반은 트럼프 대통령 지지율의 마지노선 역할을 한다. ‘콘크리트 지지층’으로 꼽히는 백인 노동자 덕분이다. 특히 펜실베이니아주를 비롯한 중부 철강·자동차 산업지(地) 노동자들은 여전히 트럼프 대통령에게 열광한다. 불황에 ‘러스트 벨트(녹슨 지대)’로 불릴 정도로 쇠락을 거듭한 이 지역이 트럼프 정권의 뿌리 역할을 하는 셈이다.

트럼프의 콘크리트 지지층은 상대 무역국인 한국에도 중요하다. 트럼프 정부의 무역 통상 압박 강도를 가늠할수 있는 잣대가 되기 때문이다.

실제 트럼프 행정부는 보호무역주의 노선에 열광하는 이들의 지지를 겨냥해 잇따른 무역 제재를 내놓고 있다. 지난달 한국·중국산 태양광패널 및 세탁기에 세이프가드(긴급수입 제한조치)를 발동한데 이어, 수입산 철강과 알루미늄에 높은 관세 폭탄까지 예고했다.

그가 취임 전부터 “미 경제에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등 각종 무역협정을 손보겠다”고 한 공언을 하나둘씩 실천하고 있는 셈이다.

러스트 벨트의 백인 유권자들은 열광하고 있다. 오랜 불황에 실의에 빠진 민주당 지지자들중에서도 트럼프 지지로 돌아서는 이가 있을 정도다. 최근 미 타임지는 러스트 벨트 일대를 돌며 만난 백인 노동자들의 이같은 심리를 파고 들었다.

잇단 무역제재, 보호무역주의 지지

미 철강노조 지역본부장(펜실베이니아주)인 롱 보니는 대선 당시 힐러리를 뽑았다. 하지만 트럼프의 “미국 일자리를 위협하는 불공정 무역 행위에 싸워나가겠다”는 공약에 이끌린 나머지 그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 보니는 “상당수 주변 노동자가 (같은 이유로) 여전히 트럼프를 확고히(unwavering) 지지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제철도시’인 코츠빌에서 29년간 중철강 절삭 작업을 하다 퇴직한 존 개더콜(64) 역시 오랜 민주당 지지자였다. 하지만 대선 때 트럼프에게 표를 던졌다.

이처럼 정당에 상관없이 일관된 지지를 나타내는 백인 노동자들은 트럼프의 ‘정책 원동력’이 되고 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백악관 자문위원회 위원 출신인 스콧 폴 미 제조업연합회 회장은 “취임 초기 트럼프 대통령은 자국 철강산업 보호와 NAFTA 재개정 등에 적극적이었다”며 “그가 오바마케어 폐지, 일부 계층을 위한 세제 개편에 집중하는 대신, 공언했던 불공정 무역 조치에 좀 더 신경썼더라면 세상은 더욱 달라졌을 것”이라며 트럼프에게 공약 이행을 촉구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가운데 러스트 벨트 일대 경제는 점차 회복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그 비결은 보호무역이 아니라 트럼프의 각종 세제 개편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 일반적 평가다.

한국산 못을 재료로 쓰는 화물용 깔판 공장인 ‘존 락’은 지난해 말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한 세제 개혁 법안이 의회를 통과한 직후 투자를 크게 늘렸다. 빌 맥컬리 공장 운영인은 “최근 주문한 200만 달러(22억원) 값어치의 기계가 석 달 안에 도착할 예정”이라며 “(세제 개혁) 법안이 없었다면 이런 통큰 투자를 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양질의 일자리도 꽤 늘었다. 상당수 노동자가 남미계 출신인 존 락 공장은 시간당 임금을 1달러 가량 올린데 더해 퇴직연금까지 제공한다고 타임지는 전했다.

현재 미 실업률은 17년만에 최저수준(4.1%)을 기록, 사실상 완전 고용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정치 전문가들은 트럼프의 콘크리트 지지층인 백인 노동자들이 실제 경제 훈풍을 불러일으킨 세제 개혁과 트럼프의 무역 제재 공약을 동일한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진짜 원인이 무엇이든 트럼프가 경제를 회복시켰다’는 광적인 믿음이 깔려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트럼프의 무역 제재는 자국 시장 질서를 교란시키면서 노동자들을 희생시키고 있다. 그가 실제 행동으로 옮긴 무역 관련 조치 역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 뿐이라고 타임지는 전했다.

일자리 증가, 트럼프의 공으로 여겨

타임지에 따르면 최근 외국의 저가 철강 수입품이 미국 시장에 쏟아지면서 미국 업체까지 가격 인하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트럼프 정부가 무역확장법 232조 발동을 예고하자 대미 철강 수출업체들이 선제적으로 가격 인하 물량 공세에 나섰기 때문이다. 결국 매출이 급감한 미국 공장 상당수가 타격을 입었다. 피해는 노동자들에게 돌아갔다. 펜실베이니아주 주도(州都)인 해리스버그 외곽 관로공장, 소도시 콘쇼호켄 제강공장이 정리해고를 단행했고, 결국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심지어는 코츠빌에 있는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제강공장의 가동률도 역대 최저로 떨어졌다. 이 공장은 현 미 상무부 장관인 윌버 로스가 WL 로스 앤 컴퍼니 CEO 시절인 지난 2003년 인수했던 곳이라고 타임지는 전했다. 이 여파로 일부 지지층은 트럼프에 돌아서기도 했다. 지난 1월 여론조사기관인 모닝 컨설트 조사에 따르면 대학을 마치지 않은 백인들의 트럼프 지지율은 46%로 취임 당시에 비해 약 7%포인트가 빠졌다. 미 타임지는 이를 두고 “트럼프 대통령이 유세기간 ‘잊혀진 미국인(the Forgotten Man)’이라고 칭했던 백인 노동자 계층이 정작 트럼프 대통령에게 큰 배신감을 느꼈다”고 언급했다.

한국에 대한 통상 압력 더 커질 수도

하지만 ‘러스트 벨트’에서의 트럼프 지지율은 꾸준하다. 트럼프의 국정 지지도가 하락했던 지난해 8월 NBC와 여론조사업체 마리스트의 공동 조사에서도 펜실베이니아·미시간·위스콘신주에서의 트럼프 지지율은 각 35%, 34%, 32%를 기록해 10개월 전 실제 투표율(42%, 39%, 35%)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현재 트럼프 대통령의 가장 큰 걱정은 러스트 벨트 일대의 ‘여성 노동자 유권자’다. 이들은 대선기간 각종 성추문에도 불구하고 트럼프를 열렬히 지지했다. 하지만 최근 미 갤럽의 조사에 따르면 펜실베이니아주와 미시간주, 오하이오주 등에 거주하는 여성 노동자들의 트럼프 지지율은 전년도에 비해 최대 18~19%포인트 가량 떨어져 39~45%를 기록했다. 이와 관련 미 애틀랜틱지는 “오바마케어를 폐지하려는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에 돌아선 여성 유권자를 민주당이 공략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트럼프 정부는 미 중간 선거를 약 8개월 앞두고 있다. 트럼프의 지지율이 40%선을 뚫고 올라가면 공화당엔 청신호다. 하지만 이는 한국 등에 대한 무역 공세가 가열되는 상황을 의미할 수도 있다.

조진형 기자 enis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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