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느리다"경전선 광주송정~순천 구간 타보니
[경향신문] 25일 오전 10시34분 광주 송정역에 목포를 출발, 부산 부전역으로 가는 경전선 무궁화 열차가 섰다. 60~70대 어르신 10명과 고교 남학생 6명이 기차에 올랐다. 3칸 짜리 객차에는 승객이 50여명으로 불어났다. 열차는 10분 후 서광주역에 도착해 승객 3명을 더 태웠다.
광주시내를 벗어나 나주·화순으로 들어서자 낮은 산과 들녘이 번갈아 나타났다. 그 사이를 기차는 연신 S자 모양을 그리며 느릿느릿 달렸다. 기차 창밖을 내다보던 고교생들이 이런 모습을 보고 신기한 듯 깔깔거리며 웃었다. 김민우 군(17·경기 안산)은 “기차가 트위스트 춤을 추는 것같다”고 말했다.
무인역인 명봉역에서 보성역으로 가는 구간에선 속도가 절반이상으로 확 떨어졌다. 시속 60~70㎞로 가던 기차가 고갯길을 만나 10여분간 속도를 30~40㎞로 낮춘 것이다.
경전선 전체 구간(300㎞) 가운데 ‘광주~순천’(116㎞)은 유일한 단선이다. 나머지 ‘순천~광양~진주~부산’은 전부 복선이고 전철화 사업도 마무리 단계다. 하지만 ‘광주~순천’은 여전히 1930년 개통 때와 똑같은 단선이다. 고속버스로 1시간여 거리를 기차로 가면 2시간 16분이나 걸린다. 이 구간은 하루 왕복 4차례 기차가 다닌다.
화순역에서 오른 김민식씨(78)는 “기찻길이 구불구불하고, 비탈길도 많아 순천까지 가는데 2시간 이상이 걸린다”면서 “60여년간 이 기차를 타고 다니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속도가 똑같다”고 불만을 털어놨다.
승객들은 “이런 느림보 철도를 본적이 있으냐”며 정부가 적극적인 투자를 해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재 이 구간은 2016년 국가철도망구축계획에 반영돼 노선개량이 예고됐지만 투자우선순위에 밀려 그 시점을 점칠 수 없는 상황이다.
광주·순천·부산·마산·창원 등 영호남 8개지역 상공회의소는 영호남 교류 확대, 광주·나주 기업 수출품 운송편의, 전남지역 교통복지 차원에서 복선·전철화 시기를 앞당겨야 한다며 수차례 대정부 건의문을 내놓고 있다.
김영식씨(64·광주 북구)는 “지역 기업체들은 부산항과 광양항으로 싣고갈 화물컨테이너를 호남선으로 전북 익산·대전까지 끌고 올라간 뒤, 다시 전라선과 경부선을 타고 내려가느라 물류비가 2배 이상이 든다”면서 “이 구간 철도만 고치면 부산·광양항까지 바로 갈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구간 간이역 11곳에서 오른 주민들도 철도를 고치면 살림 형편이 좀 펴질 것이라는 기대감을 드러냈다.
경남 진주 큰 아들집에 간다는 이순길(60·보성군 조성면)는 “기차가 지나는 동네를 따라 펼쳐진 산과 들, 바다에서 싱싱한 농수산물이 많이 난다”면서 “특산물을 지금보다 빨리 광주·순천 등으로 가져나간다면 더 많은 소득을 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글·사진 배명재 기자 ninapl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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