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의 새' 무도회장을 망치는 고속도로

2018. 2. 26. 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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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붉은극락조 서식지 비상
붉은극락조, 나무에 올라 춤춘다
몸을 파르르 떨고 펄쩍 뛰고
암컷에게 선택받기 위한 노력
진화론에 영감 준 아름다운 새

인도네시아 원시의 와이게오섬
순환도로 건설, 활주로 확장되면
극락조 공연장도 줄어들 것이다

[한겨레]

붉은극락조의 수컷은 화려한 깃털을 뽐내며 암컷에 선택받기 위해 춤을 춘다. 앤디 사요고(국제동식물협회) 제공

잘 알려진 탐험가이자 자연주의자인 앨프리드 러셀 월리스는 19세기 중반 극락조를 발견하기 위해 말레이군도에서 수년 동안 보냈다. 극락조를 발견한 월리스는 이 새가 깃털을 가진 모든 존재들 중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수컷만 추는 구애의 공연

나무들로 빼곡한 열대우림의 정상부에 붉은극락조(Paradisaea rubra) 한 마리가 앉아 있다. 자랑스럽다는 듯 나뭇가지에 앉은 이 수컷은 자신의 위치를 알리려고 노래를 부른다. 정글은 지금 번식기이다. 그리고 그는 본격적인 아침 공연을 막 준비하는 참이다. 곧 극락조의 구애 춤이 시작된다.

이 수컷은 자기만큼 매력적인 새들과 경쟁해야 한다. 그리고 ‘렉’(Lek)이라는 경연장에 선다. 렉은 수컷들이 암컷에게 선택받기 위해 벌이는 과시 행동(구애의 춤)의 장소다. 수컷들에게는 아름드리나무의 상단부가 경연장이 된다. 비교적 잔가지들이 적어 잠재적인 파트너의 시선을 끌기 좋다.

붉은극락조는 자신의 주변에 암컷이 앉은 것을 일단 확인하면, 그때부터 구애의 춤을 춘다. 일차 목표는 암컷의 눈길을 끄는 것이다. 수컷은 아름다운 황갈색의 날개를 거대한 나비처럼 펼쳐 파르르 떤다. 펄쩍펄쩍 튀어 오르면서 코르크 모양으로 꼬인 검은 꼬리깃털을 자랑한다. 그리고 에메랄드빛 초록 얼굴을 위아래로 움직이며 춤을 이어나간다. 이렇게 춤은 몇 시간 지속된다. 수컷이 에너지 상당 부분을 소비하는 시간이다. 그동안 암컷은 공연하는 수컷을 까다롭고 면밀하게 시험하며 짝짓기를 할지 결정한다.

극락조 수컷은 숲의 정상부에서 암컷의 시선을 끈다. 앤디 사요고(국제동식물협회) 제공

뉴기니 제도 일대에 사는 극락조는 42개 종이다. 찌르레기처럼 작은 몸집, 까마귀만큼 큰 몸집을 지닌 종도 있다. 깃털의 색깔도 다양하다. 실용성은 전혀 없어 보이는 아주 긴 깃털을 지닌 새도 있는데, 과시적인 색깔 등 장식적인 요소가 풍부하다는 점에선 모든 종이 마찬가지다.

특히 붉은극락조는 인도네시아에만 사는 종이다. 뉴기니섬의 서쪽 끝, 인도네시아에서 ‘라자 암팟 제도’라고 불리는 네 개의 작은 섬(와이게오, 바탄타, 게미엔, 사오넥)이 이들의 유일한 서식지다. 원래 좁았던 서식지조차 점점 축소되기 때문에 붉은극락조는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의 적색목록에 ‘근접위기’(NT)로 분류되어 있다.

극락조의 명성은 수컷의 화려함과 과시적인 춤에서 비롯됐다. 월리스와 다윈이 내세운 진화론과 성 선택 이론의 주요한 사례이기도 하다. 수컷 극락조의 호화스러운 깃털과는 반대로 암컷의 자태는 그다지 눈길을 끌 정도가 아니다. 암컷은 몸이 작은데다가 꼬리에 길고도 검은 솜깃털이 별로 없다. 하지만 암컷은 이 의식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누구를 택할지 신중하게 정함으로써 어떤 유전자적 형질이 다음 세대로 이어질지 결정하기 때문이다. 아름답고 화려한 수컷을 선택함으로써, 암컷은 그녀의 자손이 같은 특질을 계승하고 더 나은 생존율을 갖도록 보장한다.

무도회를 위협하는 것

이렇게 치열하게 춤을 추며 대를 이어가고 있지만, 정작 붉은극락조를 위협하는 건 외부에 있다. 새들의 서식지에 대규모 개발사업이 추진되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 케임브리지에 본부를 둔 야생보전단체 ‘국제동식물협회’(FFI)의 생물다양성 전문가 앤디 프리요 사요고는 2016년 라자 암팟 제도의 와이게오섬을 탐험하며 육상 생물종 조사를 벌였다. 원시의 자연은 인간에게 포위되고 있었다. 사회기간망 건설 계획이 추진되면서, 섬은 현격한 변화의 문턱 앞에 놓였다. 와이게오순환도로가 757㎞ 길이로 섬을 포위하려고 한다. 대형기 이착륙을 위해 마린다공항의 활주로 확장 계획도 나왔다. 이러한 건설 과정은 극락조의 서식지를 파괴할 것이다. 26개 마을을 지나가는 도로는 원주민들의 이용 편의보다는 벌목 산업의 수송로로 기능할 것이라고 환경단체와 원주민단체는 비판한다.

붉은극락조가 나뭇가지에 앉아 있다. 최근 순환도로 건설 계획으로 와이게오섬에 사는 이 새가 위협받고 있다. 앤디 사요고(국제동식물협회) 제공

국제동식물협회의 조사를 보면, 지난 10년 동안 와이게오 섬의 숲 2000㏊가 사라졌다. 80%는 자연보호구역으로 지정된 곳이었다. 사요고는 최근 인터뷰에서 “도로가 건설되면 극락조가 서식하는 숲에 대한 인간의 접근이 쉬워진다. 숲이 점점 더 분절화되면서 파괴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와이게오가 자랑하는 야생종이 위협받으며 섬 생태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얘기다. 그는 “야생생물 종의 분포와 개체수에 대한 좀 더 깊고 면밀한 평가가 필요하다”며 “정부는 이를 토대로 붉은극락조와 서식지를 관리하는 조처를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다음 세대는 야생에서 가장 독창적인 행동 중 하나인 붉은극락조의 춤을 볼 수 있을까? 와이게오섬의 극락조들은 지금 태풍 앞에 놓여 있다.

◆기사가 인용한 문헌 정보:

Alfred Russel Wallace (1869). The Malay Archipelago: The land of the Orangutan and the Bird of paradise, a narrative of travel with studies of man and nature. Published in London.

Payne, R B (1984). Sexual selection, Lek and Arena Behavior, and Sexual Size Dimorphism in Birds. Ornithological Monographs, No. 33. Published by The American Ornithologists' Union. Washington, D. C. DOI: 10.2307/40166729

라하유 옥타비아니 애니멀피플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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