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비녀 꽂은 20대 여성 희생자, 67년 만에 빛을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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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와 취재수첩을 내려 놓았다.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기자가 자리한 B2 지역은 가로세로 3m 남짓으로 협소했다.
끝날이 평평한 호미를 이용해 흙을 조금씩 긁어서 걷어내는 일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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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글:심규상, 편집:김시연]
▲ 윗쪽에서 카빈소총 탄피( 윗쪽 좌우 붉은 원안)가 발견됐다. 가운데 붉은 원안은 검정고무신의 잔해다. |
ⓒ 심규상 |
▲ 아산 폐금광터 유해발굴 구역도 |
ⓒ 심규상 |
천천히 호미질을 시작했다. 23일 오전 충남 아산시 배방읍 중리마을 뒷산 8부 능선. 이곳 폐금광터에서는 인근 마을에서 끌려온 주민들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어린 갓난아기까지 일가족이 끌려와 희생됐다는 증언도 많다. 1950년 인민군 점령 시기에 인민군에 협조했다는 게 처형 이유였다.
유해 발굴 구덩이는 가로 10m, 세로 15m 크기다. 유해발굴단은 이 면적을 다시 7개 구역으로 나눴다. 유해발굴과 기록을 꼼꼼히 하기 위해서다. 기자가 자리한 B2 지역은 가로세로 3m 남짓으로 협소했다. 여기서 세 명이 자리를 잡았다.
끝날이 평평한 호미를 이용해 흙을 조금씩 긁어서 걷어내는 일이 시작됐다. 모인 흙은 양동이에 담아 따로 모은다. 양동이 흙 속에 혹여 유해가 섞여 있는지를 재확인하기 위해서다.
▲ 20 대 여성으로 추정되는 희생자 치아(오른쪽)와 같은 희생자이 유품으로 보이는 옥비녀 |
ⓒ 심규상 |
기자가 박선주 유해발굴 단장을 급히 불렀다. 오전 10시께였다.
"옥비녀 같아요. 부녀자들이 쪽진 머리에 꽂던…."
온전히 모습이 드러날 때까지 조심조심 흙을 헤집었다. 부러져 있었지만, 옥비녀가 분명했다. 호미를 내려놓고 대나무 조각칼로 주변 흙을 조심스레 긁어나갔다. 비녀가 있던 한 뼘 아래쯤에서 하얀 물체가 보였다. 치아였다. 유해가 손상되지 않도록 신경 썼다. 간간이 골짜기 찬 바람이 몰아치는데도 등줄기에 땀이 배어 나왔다. 여러개의 치아가 가지런히 박힌 잇몸뼈와 턱뼈가 모습을 보였다.
박 단장이 치아를 유심히 살폈다.
"치아의 크기와 마모 정도로 볼 때 20대 여성으로 보이네요"
범위를 조금 넓혀 비녀가 나왔던 왼쪽 경사면 흙을 걷어냈다. 푸른 빛이 도는 탄피가 발견됐다. 당시 경찰이 두루 사용하던 카빈총 탄피였다. 학살이 충남경찰국장과 온양경찰서장의 지휘와 지시로 이뤄졌다는 증언을 뒷받침했다. 30여㎝ 떨어진 오른쪽 경사면에서도 같은 탄피가 추가 발견됐다. 옥비녀를 꽂은 20대 여성을 쏜 총탄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살짝 손끝이 떨렸다.
▲ 이름 모를 20대 여성 희생자와 기자와의 67년만의 만남은 이렇게 이뤄졌다. 유해발굴을 하고 있는 기자. |
ⓒ 유해발굴 공동조사단 |
▲ 박선주 유해발굴 공동조사단장(오른쪽)과 발굴팀의 노용석 교수(영남대)가 드러난 희생자 유해를 들여다 보고 있다. |
ⓒ 심규상 |
▲ B1구역에서 발견된 희생자 유해 |
ⓒ 심규상 |
▲ 또 다른 구역에서는 머리카락이 발견됐다. |
ⓒ 심규상 |
아산시와 시민단체로 구성된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은 지난 22일부터 한 달간 일정으로 유해를 발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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