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말기암 환자, 천식이라고".. 대학병원 오진에 가슴 친 아들

전상후 입력 2018. 2. 25. 06:02 수정 2018. 2. 25.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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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백병원, 말기암 환자 천식 또는 만성 폐쇄성 폐질환으로 오진.. 2주간 입원치료
부산대병원 이송 직후 식도 등 4개 장기서 말기암 확인.. 7일 만에 사망
말기암 모른 채 호흡법만 설명하던 차남 "자꾸 말 안 들으시면 나 간다. 불효했다"며 뒤늦게 가슴 쳐

“식도 기관지를 비롯해 4개 장기에 암세포가 퍼져 말기 중의 말기암을 앓고 있는 어머니에게 ‘자꾸 꾀를 부리시면 병실을 떠나겠다’고 말하자 쇼크받고 더 숨이 가빠졌습니다.”

지난 15일 어머니 주옥녀(87·부산 부산진구 개금동)씨를 하늘나라로 떠나보낸 차남 윤세중(59·개인사업)씨는 24일 세계일보와 가진 1시간여에 걸친 전화인터뷰에서 “식도와 기관지에 암덩어리가 자라 숨을 못 쉬는 어머니에게 꾀부린다고 나무란 그런 불효가 세상에 어디 있느냐”며 울먹여 한동안 인터뷰가 중단됐다.

주씨가 감기 증세를 보여 자택 인근에 있는 인제대 부속 부산백병원에 입원한 것은 지난달 19일. 기침을 하고 때때로 호흡곤란 증세를 보이는 등 심한 감기 증세를 보여 남편과 자녀가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백병원에 입원시킨 것이다.

말기암 환자 주옥녀(87)씨가 지난달 하순 인제대 부산백병원에서 호흡기내과 병동에서 투병생활을 하고 있는 모습.
차남 윤세중씨 제공
입원 이후 호흡기내과 이모(인제대 의대) 교수가 주치의로 정해졌고, 가족은 주치의로부터 “천식 및 만성폐쇄성폐질환이다”는 병명을 들었다.

20년 동안 차남 윤씨의 보살핌을 받으며 부산과 서울을 오르내리며 척추협착증 등의 치료를 받아온 주씨는 입원 열흘째되던 날인 지난달 28일 평소보다 호흡을 급하게 하는 증세를 보였다.

이에 병실을 지키던 윤씨는 어머니가 좀 참으면 될 것을 너무 급하게 호흡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어머니 호흡 급하게 하지마세요. 천천히 하는 연습을 해보세요.”라고 했으나 어머니 주씨가 말을 안 듣고 계속 급한 호흡을 계속했다.

윤씨는 속으로 화가 나 “어머니 자꾸 말씀 안 들으시면 저 갈거예요”하고 쏘아붙였다.

그러자 차남을 믿고 의지하는 바가 컸던 어머니는 쇼크를 받아 ‘헉, 헉’ 대며 더욱 급하게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부산 부산진구 개금동에 위치한 인제대 부산백병원 정문 전경.
부산=전상후 기자
놀란 윤씨는 평소 주치의가 하루 6회 실시하라고 자신에게 지시한 호흡기 치료를 황급히 시작했다. 이 치료는 호흡기를 환자 얼굴에 씌운 뒤 기관지확장제인 벤틀린과 아트로벤트흡입액, 풀마켄(가래 삭히는 약)을 섞어 기기에 넣고 전기로 진동을 가해 나오는 연기를 환자가 호흡해 폐로 들어가게 하는 치료법이다.

환자의 상태가 안 좋을 때 윤씨가 이 치료를 15분 정도 실시하면 상태가 회복되곤 했다.

환자가 쇼크를 받은 이날 상태가 워낙 심해 주치의 대신 당직의사(내과 레지던트)가 달려와 “당장 환자를 중환자실로 옮겨서 인공호흡기를 삽관해야 한다”고 말했다. 보호자 윤씨가 “인공호흡기를 삽관하면 자유롭게 뺄 수 있냐”고 했더니 “안 된다”는 답이 돌아왔다.

인공호흡기를 삽관하는 사실상 사망선고일이라는 것을 직감한 윤씨는 “그러면 내가 주치의로부터 지시받은 호흡기 치료를 하겠다”고 말한 뒤 익숙하게 치료작업에 들어갔다.

그러나 당직의사는 윤씨 옆에 바짝 붙어서서 팔을 미는 등 치료작업을 방해하며 중환자실로 올라가서 인공호흡기를 삽관해야 한다는 말만 반복했다.

화가 난 윤씨는 “호흡기내과 의사도 아닌 당신이 어머니 증세 알아요. 내가 의사를 대신해서 주치의가 지시한 대로 치료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좀 하면 정상적으로 돌아온다”고 했지만, 당직의는 “당신이 의사요. 치료는 의사가 하는 거지…”하며 계속 실랑이를 벌이며 방해했다. 이날 주씨는 두 사람이 다투는 것을 보며 불편했는 지 평소보다 긴 40여분 만에 정상화했다.

이후 하루는 주씨가 구토를 했는데 내용물에 약품액이 섞여 나왔다. 이후 주씨는 부산백병원에서는 치료가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한 뒤 부산대병원을 찾아가 호흡기내과 박모 교수를 면담했다.

증세와 분당 호흡수, 산소포화도 등 환자 상태를 들어본 박 교수는 처음엔 “환자 상태가 비교적 양호하고 어느 대학병원이나 비슷하니 그냥 그곳에서 치료하라”고 말했다. 보호자 윤씨가 “환자 구토 내용물에 약품액이 섞여나왔다”고 말하자, 박 교수는 그제서야 얼굴색이 변하며 ‘입원장’에 사인을 해줬다.

부산백병원 본관 내 호흡기내과 병동 입구 모습.
백병원 측으로부터 이송의뢰서를 발급받은 가족은 지난 1일 환자를 부산대병원으로 이송했고, 다양한 검사 결과치를 확인한 후 환자의 상태가 이상하다고 판단한 박 교수는 즉시 암검진을 지시하며 CT(컴퓨터단층촬영)를 찍도록 조치했다.

지난 8일 부산백병원이 만성 폐쇄성 폐질환으로 초진한 주씨는 기관지, 식도, 위, 간 4개 장기에 회복불가능한 암덩어리가 퍼진 사실을 확인한 후 보호자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이후 모든 치료법이 통증을 없애는 모르핀과 진통제 투여로 바뀌었고, 주씨는 마지막 생을 보내기 위해 호스피스병동으로 옮기기로 한 직전 일인 지난 13일 의식불명 상태에 빠진 이후 이틀 뒤인 15일 오전 평생을 의지했던 차남과 장남 등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자는 듯이 숨을 거뒀다.

세계일보는 부산백병원 측에 오진 경위 등에 대한 해명을 듣기 위해 24일 원무부 당직팀을 직접 방문하고 홍보실에 연락하는 등 백방으로 노력했느나 휴일이라는 이유로 끝내 주치의 비상연락망을 제공받지 못해 아무런 답을 들을 수 없었다.

부산=전상후 기자 sanghu6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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