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성차 조립 위주 자동차산업구조 탈피해야

송진식 기자 2018. 2. 24.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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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해외자본의 위험성 늘 불안요소… 자동차산업 구조개선 고민해야

한·일 월드컵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았던 2002년 10월 한때 시장점유율 33%를 기록하며 국내 자동차 시장을 삼분했던 대우자동차의 매각이 완료됐다. 당초 우선협상대상자였던 미국의 포드가 도중에 손을 뗐고, 새 주인으로 등장한 미국 제너럴모터스(GM)에 정부가 과도한 특혜를 줬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등 논란이 있었지만 글로벌 자동차업계 ‘빅3’로 불리는 GM의 막강한 후광에 기대를 거는 시각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후광효과 같은 건 없었다. 대우자동차를 인수한 한국지엠은 현재 누적적자만 2조원이 넘고 차입금 명목으로만 3조원에 가까운 빚을 지고 있다. 협력업체를 포함해 30만명에 달하는 직·간접 근로자들은 고용위기에 놓여 있다. 해외자본이 인수한 르노삼성이나 쌍용자동차 등에도 이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으리라고 장담하긴 어렵다. 이 때문에 한국지엠 사태를 계기로 완성차 생산 중심 구조인 국내 자동차산업 구조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짚어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한국 GM 노조 임한택 지부장이 2월 20일 국회 정론관에서 일방적 공장 폐쇄를 규탄하는 기자회견문을 낭독하고 있다. / 권호욱 기자

대우자동차 매각 당시 노동계를 중심으로 등장했던 해법 중 하나가 바로 ‘대우자동차의 공기업화’였다. 지금은 글로벌 빅3로 군림하는 독일의 폴크스바겐도 부도가 났을 때 지방정부가 한때 인수했던 적이 있었고, 프랑스의 르노 역시 공기업화를 통해 위기를 넘긴 사례 중 하나였다. 이와 함께 노동계는 대우자동차의 해외매각 반대 이유로 세 가지를 들었는데, 첫 번째가 외국자본의 내수시장 잠식으로 인한 자동차산업 붕괴, 두 번째가 연구개발기능 축소 및 폐지로 인한 단순 조립생산 기지로의 전락, 과잉설비 해소를 위한 대규모 해고 등이다.

해외수출 공장으로 전락 노동계의 우려 중 내수시장 잠식 우려를 제외한 두 개의 문제점은 한국지엠 사태로 정확하게 실현됐다. 한국지엠은 지난해 52만대의 차를 생산했는데, 이 중 내수판매는 13만대 수준이었다. GM에 있어 한국지엠은 생산량의 80%가량을 해외로 수출하는 여러 해외 생산기지 중 한 곳인 셈이다. 생산기지라 해도 계속 주문량이 있으면 문제가 없지만 GM이 유럽 등지에서 사업을 철수하면서 이곳 시장의 주요 생산거점이었던 한국지엠은 순식간에 과잉설비가 돼버렸다. GM이 2월 13일 전격적으로 군산공장 폐쇄를 발표한 배경이다.

자동차산업은 완성차업체부터 2~3차 하청업체까지 유기적으로 연결된 전형적인 피라미드형 산업이다. 매출이나 고용 파급력도 커서 한 국가의 경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지만, GM의 발표에서 드러나듯이 글로벌 자동차업체들에 해외공장 폐쇄란 재무제표 상에서나 화제가 될 뿐 그리 복잡한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국내 주요 완성차업체 중 현대·기아자동차를 제외한 르노삼성, 쌍용 등에도 역시 이 같은 위험이 항상 존재한다는 것이다.

르노삼성도 2012년 유럽과 러시아 등지로 수출되던 ‘SM3’ 물량이 중단되면서 생산량이 13만대 수준으로 급감하며 존폐의 위기를 맞았다. 2011년에는 2100억원대의 적자를 봤고, 시장은 르노삼성의 철수설로 흉흉했다. 다행히 본사에서 전략 신차인 ‘로그’의 생산을 부산공장에 배정하면서 위기를 넘겼고, 2016년에는 4175억원의 영업이익을 내긴 했지만 이 과정에서 대량해고를 피하지는 못했다. 르노삼성이 2년간 ‘리바이벌 플랜(회생계획)’이라는 경영정상화 방안을 돌리는 동안 5500명이던 임직원 수는 4300명으로 20% 이상 줄었다. 르노삼성은 2017년 26만대를 생산해 절반인 13만대를 수출했다. 르노삼성 역시 본사에서 생산물량을 어떻게 배정하느냐에 따라 명운이 엇갈릴 수 있다는 얘기다.

쌍용자동차의 경우 2009년 상하이자동차 시절 사측의 일방적인 법정관리 발표와 함께 시작된 ‘쌍용자동차 사태’는 자동차업계는 물론 우리 사회에서도 손꼽히는 ‘비극’으로 남아있다. 인도의 마힌드라가 인수한 후 ‘티볼리’ 등의 신차 발표로 내수 판매량이 차츰 늘고 있지만 수출 감소 등의 여파로 지난해 653억원의 적자를 보는 등 부침을 거듭하고 있다. 한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마힌드라가 쌍용차와 함께 미국 시장 진출을 추진 중이지만 북미 시장이 워낙 ‘격전지’라 성공을 장담하기 어렵다”며 “지난해 10만대 수준까지 끌어올린 내수 판매를 좀 더 확대해야 하지만 이를 위한 신차 개발 등에 마힌드라가 추가 투자를 진행할지 여부가 관건”이라고 밝혔다.

국내 자동차업계는 이미 1997년 외환위기를 겪으며 대규모 구조조정을 한 번 치른 바 있다. 1997년 부도처리된 기아차를 당시 현대차가 인수한 것을 시작으로 2004년 상하이차가 쌍용차를 인수할 때까지 7개의 자동차업체가 새 주인을 찾았다. 하지만 1차 구조조정이 완료된 이후에도 끊임없이 주요 완성차업체가 한국 시장 철수나 공장 폐쇄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자동차산업의 연속성을 보장하려면 보다 근본적인 산업 구조개편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부품·소재산업 근본적 경쟁력 키워야 완성차업체와 이를 중심으로 한 피라미드식 산업구조로는 더 이상 성장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시장 상황이 좋을 때는 양적인 팽창을 통해 성장하기 좋은 구조지만 업황이 악화될 경우 완성차업체의 추락과 함께 전체 자동차산업의 몰락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지엠 사태만 해도 한국지엠 자체도 문제지만 협력사들이 줄도산할 경우 여기서 부품을 공급 받는 다른 자동차업체들까지 피해를 보게 되는 등 산업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

이런 문제 때문에 정부도 그간 대안으로 모색해온 것이 부품·소재산업 지원을 통해 근본적인 산업 경쟁력을 강화하는 방안이었다. 2004년 당시 산업통상자원부는 “완성차산업 위상에 걸맞게 부품산업을 대형화·전문화하겠다”며 “2012년까지 100대 자동차부품기업을 10여개로 늘리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2012년이 지나 최근까지도 100대 자동차부품기업은 한 손으로 꼽을 정도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가 2016년 발표한 자료를 보면 2015년 기준 ‘세계 100대 자동차부품업체’ 중 한국 기업은 현대모비스(6위), 현대위아(32위), 만도(45위) 등 5개 업체에 그쳤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국내 자동차업계는 특정 업체끼리만 거래하는 ‘전속거래’ 관행이 너무 강해 부품이나 소재산업 발전에 큰 장애로 작용하고 있다”며 “신기술 개발이나 협력을 위한 글로벌 네트워크 구축에도 폐쇄적 성격이 강한 전속거래 방식은 도움이 안 된다”고 밝혔다.

완성차 생산·판매에만 집중하기보다는 자율주행차 등 미래의 융합 신기술에 보다 많은 투자와 협력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자동차가 인공지능 등 다양한 정보기술(IT)과 결합되면서 점점 자동차 자체보다는 자동차를 제어하는 소프트웨어 등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만을 인수한 삼성전자도 올해 CES에서 자율주행 플랫폼인 ‘드라이브라인’을 선보이고 “완성차업체에 공급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반면 2016년 국정감사에서 공개된 ‘2015 산업기술수준 조사’ 자료를 보면 한국의 자율주행차 기술수준은 유럽 대비 79.9% 수준으로 2011년(86.4%)과 2013년(83.8%) 당시보다 오히려 더 후퇴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위원은 “자동차산업이 지속가능하려면 자동차업체를 중심으로 연관산업 내 기업들이 상호 개방과 혁신이 가능한 네트워크형 협력체제를 구축해야 한다”며 “정부도 연구개발 예산을 늘리고 인력 양성 지원 및 관련 법·제도 개선 등 지원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송진식 기자 truej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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