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찬의 軍] "눈도 귀도 없나"..정부가 키운 김영철 방남 논란
2010년 평양에서 외신기자들을 대상으로 천안함 피격 사건에 대해 북한은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는 김영철 당시 정찰총국장. 연합뉴스 |
김 부위원장의 방남이 발표되자 정치권을 중심으로 방남 철회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천안함 피격 희생자 유족들과 예비역들도 강하게 반발했다. 그럼에도 정부는 “올림픽 성공을 위해 대승적으로 받아들인다”는 입장을 밝혔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천안함 사건이 있었을 때 여러 추측이 있었지만 당시 조사 결과 발표에서 누가 (사건의) 주역이었다는 부분은 없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통일부는 이례적으로 설명자료를 배포하며 진화에 나섰고, 국방부는 침묵했다. 어리석음과 비겁함이 뒤섞인 모습에서 남북 대화의 주도권을 잡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허점투성이인 정부의 김영철 방남 설명
3년전 오늘 북한의 도발로 서해 백령도 바다를 지키던 천안함 46용사가 꽃다운 나이로 산화했다. 사진은 해군과 해난구조 업체 관계자들이 천안함 침몰 20일만인 2010년 4월 15일 백령도 남방 해역에 가라앉아 있는 천안함 함미를 대형 크레인으로 인양하고 있는 모습. 세계일보 자료사진 |
국방부가 2010년 발간한 천안함 사건 합동조사보고서나 2010~2016년 네 차례에 걸쳐 발간된 국방백서 등에서는 천안함 침몰 주도자나 조직을 언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2015년 7월 31일 국방부 국방교육정책관실이 작성해 국방일보에 게재한 ‘제31주차 기본정훈-제10과 북한의 끊임없는 대남 도발’이란 장병 정신교육 자료에서는 “2008년 뇌졸중으로 쓰러졌던 김정일은 자신의 후계자로 김정은을 지목했다. 대남공작기구들을 통합해 정찰총국을 만든 후 김정은의 최측근인 김영철을 책임자로 임명했다”며 “많은 북한 요인들이 숙청됐지만 김영철만은 유일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김영철이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천안함 피격의 배후로 북한 독재정권 유지의 최고 공로자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2014년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군사당국자 접촉에서 김영철과 류제승 국방부 국방정책실장이 만나 악수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
하지만 판문점은 남북이 함께 지키는 공동경비구역(JSA)으로 1976년까지 양측이 자유롭게 오갔던 중립지역이다. 현재 우리측 지역은 유엔군사령부가 관할하고 있다. 엄밀히 따지면 김 부위원장은 중립지역 내 유엔군사령부 관할 구역을 방문한 것이지 방남을 한 것은 아니다. 반면 이번 방남은 올림픽 폐막식 참석자로 평창으로 가서 외빈급 대우를 받게 된다. 군사당국자 접촉 대표와 국가를 대신해 국제행사에 참석하는 대표는 격 차이가 엄청나다. 외빈은 대통령을 면담하게 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논란은 더욱 커질수밖에 없다. 천안함 피격 논란 해명에만 급급하다 보니 논리적 구성에 구멍이 뚫린 것 아니냐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운 이유다.
◆‘김영철 방남’ 아둔했던 통일부, 비겁했던 국방부
일각에서는 대남 도발을 주도한 것으로 보인다는 이유로 김 부위원장의 방남을 반대할 수는 없다고 지적한다.
2013년 3월 김영철 당시 북한 정찰총국장이 북한 최고사령부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
구구절절한 해명 대신 “남북관계를 총괄하는 통일전선부장을 맡고 있어 남북 대화를 촉진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며 “여러 측면에서 과거와는 달라진 만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필요한 건설적 제안을 가져올 것으로 믿는다”며 명분을 부각하고 북한에 정치적 부담을 안겨 방남을 앞두고 기선을 제압하는 것이 더 나았다는 평가다. 이쯤 되면 노회한 김 부위원장을 상대로 협상에 나섰다가 북한의 의도에 말려들지는 않을까 걱정스런 지경이다.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가운데)를 비롯한 당 지도부와 소속 의원들이 23일 오전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북한 김영철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을 단장으로 한 고위급 대표단의 평창동계올림픽 폐막식 참석 반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서상배 선임기자 |
문재인정부는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얼어붙었던 남북관계를 개선할 동력을 확보하는데 성공했다. 이제는 동력을 잘 관리해서 한반도 평화 구축과 북핵 문제 해결 등 난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도록 하는 과제가 남았다. 이 과정에서 국민들의 이해를 얻는 것이 필수이며, 이를 위해서는 치밀한 논리와 설득, 계획, 용기가 필요하다. 김 부위원장 방남 과정에서 정부가 보여준 궁색함은 어렵게 얻은 기회를 날려버리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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