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착마크] 박지원 "지방선거, 민주당 싹쓸이? 선거·골프는 고개 쳐들면 진다"
━ 박지원 “文, 역대 가장 취약한 여당의 대통령…DJ라면 연정할 것”
박지원(전남 목포·4선) 민주평화당 의원은 “문재인 대통령은 국회에 121석을 가진 역대 대통령 중 가장 취약한 여당의 대통령”이라고 말했다. 민주당과 정의당(6석), 무소속(범여권은 최대 3석)을 합해도 범여권의 의석수가 과반(147석)에 한참 못미치는 130석에 불과한 걸 꼬집은 것이다.
박 의원은 “어차피 국회선진화법 때문에 전체 의석의 3분의 2가 넘어야 하는 쟁점법안 처리는 아예 불가능하다”며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이런 상황이었다면 연정을 했을 것 같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연정을 통해서 법과 제도에 의한 개혁, 최소한의 적폐청산을 했을 것”이라며 “지금은 (민주당이) 아무 것도 못한다”고 비판했다.
그렇게 여권을 향해 독설을 한 박 의원은 정치권에서 ‘정치 머신(기계)’으로 통한다. 시쳇말로 하면 정치권에서 ‘닳고 닳은 사람’이다. 그는 최근 침체 상태다.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의 합당(바른미래당)에 반발해 국민의당을 탈당한 의원 14명은 민평당을 만들었다. 하지만 상황은 처참하다. 창당에 따른 ‘컨벤션 효과’도 없이 정당 지지율도 꼴찌다. 한국갤럽이 23일 공개한 조사에서 1%를 기록했다. 리얼미터의 전날 조사에선 2.9%였다. 6·13 지방선거 때 호남 지역을 제외한 곳에 민평당이 광역단체장 후보를 낼 수 있을 지도 의문이다.
지난 19일 오전 11시 20분 서울 여의도 국회 앞 산정빌딩 7층에서 열린 민평당 서울·경기 지역위원장 간담회의 풍경도 당세를 반영했다. 박 의원은 20여명의 참석자 앞에서 “우리가 원내 교섭단체(20석 이상)를 구성하지 못하니까 언론에 노출이 안 된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며 적극적인 당 활동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박 의원의 인사말이 끝난 뒤 참석자들은 “지역에 명함을 돌리고 싶어도 명함 도안이 없다”거나 “민주평화당 이름이 너무 어렵다. ‘더개혁당’처럼 이름이 외우기 쉬운 게 좋다”며 쓴소리가 담긴 건의사항을 쏟아냈다.
박 의원은 최근 일부 지인에게 “상황이 너무 어렵다”고 토로했다고 한다. 그런 그를 중앙일보가 이날 오전 7시부터 오후 6시까지 밀착마크하며 물었다.
Q : 민평당이 만들어졌는데 솔직히 지역정서에 기대 정치생명을 연장하려는 것 아닌가. A : 호남당이 왜 나쁘냐. 이번 지방선거에서 자유한국당은 TK(대구·경북)를, 더불어민주당은 PK(부산·경남)를 사수한다고 한다. 그럼 TK당, PK당은 좋은 거냐.
Q : 민평당은 ‘민주당 2중대’ ‘민주당 위성 정당’ 이란 비판이 있다. A : 그러면 바미당(박 의원은 바른미래당을 ‘바미당’이라고 줄곧 불렀다)은 한국당 2중대냐. 개혁과 적폐청산을 함께 한다고 해서 2중대라고 하는 건 말이 안 된다. 무엇이 국가를 위해서, 국민을 위해서 필요한가로 가늠했으면 좋겠다.
Q : 결국 지방선거 때 민평당과 민주당이 연대하는 거 아니냐. A : 한국당과 바미당 사이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연대가 이뤄지리라 본다. 서울시장과 경기지사 선거에서 한국당과 바미당이 단일화할 가능성이 크다. (민주당과 연대하려면) 명분과 실리가 필요하다.
Q : 한솥밥을 먹었던 안철수 바른미래당 의원이 혹시 서울시장 출마하면 ‘반(反)안철수 연대’ 만드는 거 아니냐. A : 우리는 반안철수 연대, 친안철수 연대 같은 건 없다. (※이날 오후 광주 평화방송 라디오 인터뷰에서 박 의원은 설 민심과 관련해 “‘안철수와는 잘 헤어졌다. 안철수는 XXX다’라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최근 정치권에선 지방선거와 동시에 치러지는 전남 영암-무안-신안 보궐선거에 DJ의 3남 김홍걸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대표 상임의장이 출마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김 의장 본인도 “(출마 여부를) 폭넓게 검토는 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김 의장이 보궐선거에 출마하는 대신 전남지사에는 박지원 의원이 출마하는 방식으로 민주당과 민평당이 ‘빅딜’할 것이란 소문도 있다. 민주당과 민평당의 지방선거 연대 고리가 두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정치적 그림이다.
그러나 박 의원은 도통 자신의 진로에 대해선 정확한 답변을 하지 않았다. 전남지사 출마 여부에 대해 몇 번이나 물었지만 “아직도 지방선거가 3~4개월 남아 있고, 정치는 생물이고 인심은 조석변이기 때문에 잘 주시하고 있다”고 답했다. 철저히 NCND(확인도 부정도 하지 않음) 기조였다. 그래야 끊임없이 정치권에서 관심을 끌 수 있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 정치를 하며 언론을 활용하는 방법에도 능수능란했다. ‘민주당 2중대’ 관련 질문에 박 의원은 먼저 “이건 기사 쓸 것은 아니고 참고만 하라. 내가 들은 얘기가 있다”며 안철수 의원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박 의원은 “최근에 남경필 경기지사가 안 의원을 두 번 만났다고 한다. 그래서 남 지사가 ‘주적(主敵)’이 누구냐. 문재인이냐, 홍준표냐’고 하니까 안 의원이 ‘주적이 문재인이다’라고 답했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기사로 쓰지는 말라’는 얘기에 기자가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심리를 아는 것이다. 그러나 박 의원은 본지와 만난 다음날 공개적으로 ‘주적’ 관련 발언을 했다. 안 의원은 “법적조치”까지 거론하며 강하게 반발했다.
DJ와 뗄래야 뗄 수 없는 길을 걸어온 그는 휴가를 갈 때도 DJ 부부와 함께 가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부인 이선자 여사와 단 둘이 해본 여행은 신혼여행과 지난해 여름 전남 구례 화엄사에 간 게 전부라고 한다.
그런 그가 이날 오후 2시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본관 20층에서 부인과 함께 복도를 걷고 있었다. 복도를 다섯 바퀴 도는 동안 박 의원은 환자복에 하얀색 패딩, 검은 털모자를 쓴 아내의 손을 꼭 잡고 놓지 않았다. 박 의원은 연신 뭔가를 속삭였고, 이 여사는 간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30분 정도 동행이 이어진 뒤 박 의원은 국회로 돌아가기 위해 차에 탔다. 서강대교를 건너는 사이 그에게 물었다.
Q : 무슨 얘기를 했나. A : ‘운동 열심히 하고 밥 잘 먹어라. 건강해야 손자도 본다’고 했다. 많이 미안하다. 내 죄가 크다. 7년 연애 끝에 결혼하고 49년 동안 부부의 연으로 살고 있는 두 사람은 지난해 12월 큰 시련을 겪었다. 부인이 방산시장에 다녀오던 길에 시내 버스에서 넘어졌고, 정밀검사를 했더니 뇌종양 진단을 받았다. 10시간 대수술을 받기 전 박 의원은 “나쁘게 산 내가 아파야 하는데 왜 당신이 아프냐”며 울었다고 한다. 바깥일에 집중하고 남편 노릇을 제대로 못한 그는 스스로 “남편으로서 0점”이라고 했다.
허진 기자 b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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