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 교과서에는 없는 것]성·인권·정치·대화법..배워두면 쓸모 있는 교육, 교과서는 왜 외면하나요?

장회정 기자 2018. 2. 24.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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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1월 초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초·중·고교에서 페미니즘 교육을 의무화해달라는 국민청원이 올라와 마감일까지 21만명이 넘는 지지를 얻었다. 청원 신청자는 “아직 판단이 무분별한 어린 학생들이 학교에서 여성비하적 요소가 들어있는 단어들을 아무렇지 않게 장난을 치며 사용합니다”라고 썼다. 기존 교육과정에 대한 아쉬움이 이처럼 청와대 청원으로 공론화됐다.

시대의 변화에 맞춰 교과서 내용도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의무교육 과정인 초·중 9년과 고등 3년간 시험에 안 나와서 배우지 못했지만 일상에서 발목 잡는 생활지식이 얼마나 많은가. ‘뉴미디어 시대’라는 반듯한 이름은 교육과 발을 맞춰야 빛난다.

‘살아보니 학교에서 배우고 나왔으면 좋았을 교육’에 대한 각계 전문가들의 제안을 모았다. 페미니즘 교육이 기본적인 인권 교육에 녹아들어야 한다는 데에 다수가 공감을 표시했다. 정치, 경제, 환경 등 다방면을 아우르는 ‘배워두면 쓸모 있는 학문’에 대한 의견도 들었다. 교육은 국민의 의무일 뿐 아니라, 꼭 필요한 지식을 익힐 권리이기도 하다.

▶시험엔 안 나와도 세상살이에 꼭 필요한 상식이니까

■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성교육(은유 작가, <글쓰기의 최전선> 저자 )

은유 작가는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2016)에서 남자친구와 헤어진 뒤 혼자서 출산한 아이를 음식물 쓰레기통에 버려 신생아 유기범이 된 한 여성의 사연을 언급했다. “왜 미혼모로 살아가는 일이 제 몸 아파 낳은 아기를 죽게 내버리는 일보다 더 공포스럽게 되었을까.”

작가는 이 사건을 두고 “성적 책임감에 무지한 기성세대가 낳은 자식들의 소행”이라며 “콘돔 사용법부터 아는 사람에 의한 강간 시 대처법, 원치 않는 임신과 출산을 논의할 수 있는 상담 기관과의 연락법 같은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성교육이 절실하다”고 썼다.

2015년 <교육문화연구>를 보면, 남녀 고등학생이 응답한 ‘학교에서 이미 배운 성교육’ 1위는 성희롱과 성폭력이었다. 2위는 사춘기와 신체변화(남고생), 바람직한 이성교제(여고생)로 각각 나타났다. 그렇다면 학생들이 배우고 싶어 하는 성교육은 무엇일까. 남고생은 피임방법과 임신중절, 에이즈와 성병 순으로 응답한 반면, 여고생은 결혼과 가정, 피임방법과 임신중절, 남녀 성 심리차이, 임신과 출산, 성적 소수자 순으로 결과가 나왔다. 실제 학생들이 요구하는 성교육은 은유 작가가 제안한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것에 가깝다.

중앙대 적십자간호대학 이규영 교수가 참여한 ‘중학교 성교육담당교사의 애로사항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응답자 중 절반에 가까운 교사가 절제, 피임, 성개방 등 포괄적 성교육과 자기결정권 강화가 학교 성교육의 나아갈 바라는 의견에 함께했다. 10대 임신율이 높은 미국에서는 이미 피임과 성병 예방을 포함한 ‘포괄적 성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하지만 ‘생명 탄생의 신비’에서부터 출발하는 우리의 성교육은 여전히 ‘밤길 조심해라’ ‘짧은 치마 입지 마라’라고 딸을 단속하는 수준을 뛰어넘지 못하고 있다. “여자아이는 어렸을 때부터 상대방의 감정과 기분을 맞춰주고 배려하도록 키워진다. 문제를 터뜨려서 해결하는 분란보다 나 하나만 참으면 유지되는 평화가 익숙하다”는 은유 작가의 문장은 세계적인 성폭력 고발운동인 미투 캠페인이 왜 이제야 불거졌는지를 납득하게 하는 통찰이다.

작가는 모성을 신비화하고 여성은 어떠한 고통도 참아야 한다는 전제가 깔린 사회 풍토에 대해서도 일갈했다.

“출산은 무섭고 고통스러운 일이자 신체에 해가 가는 일인데, 그것을 여성의 언어로 말하기보다는 신성화, 이데올로기화했어요. 출산이 힘들다고 하면 마치 엄마 자격이 없다는 듯, 여성 스스로 자기검열을 하도록 만들었어요. 사회적 약자인 여성이 자신의 고통을 말하면 ‘네 노력이 부족해서 그렇다’고 되받아치고 개인의 무능으로 환원시키는 거죠.”

남매를 키우고 있는 작가는 ‘잠재적 가해자’인 아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실제로 아들에게 ‘아는 사람에 의한 강간에 관해 알아야 할 모든 것’이란 부제가 붙은 <그것은 썸도 데이트도 섹스도 아니다>, 솔직한 성교육을 요청하는 <아무도 대답해주지 않은 질문들>을 권했다고 한다.

누구든 성폭력의 피해자, 가해자, 목격자가 될 수 있다. 그럴 경우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에 대한 얘기를 나누는 것도 중요한 교육 과정이 될 수 있다. 인권교육과의 연계를 통해 자연스럽게 폭력의 감수성을 높이자는 것. 더 이상 성교육은 특별히 날 잡아서 하는 특강이어선 안된다.

■ 삶을 위한 공부, 인권교육(배경내 인권교육센터 들 상임활동가)

“어려서 아버지의 가정 폭력을 겪으면서 저는 아버지의 화를 돋웠다며 피해자인 엄마를 비난하거나, 난 왜 하필 이런 집에서 태어났느냐며 개인적 원망의 서사를 썼어요. 집에서 탈출하는 날을 기다리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죠. 대학에 와서 인권 관련 책을 읽고서야 이것이 결코 우리 집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됐어요.”

배경내 인권교육센터 들 상임활동가는 스스로를 인권교육의 뒤늦은 수혜자라고 말한다. 스무살이 넘어 접한 인권 교육은 삶의 해방구이자, 이후 삶의 방향키가 되었다. 배 활동가가 청소년 인권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이유다.

배 활동가는 가정폭력, 성폭력, 또래폭력, 교사폭력의 경험을 가진 청소년들을 만난다. 그중 누군가는 절망해 나쁜 길로 빠지고, 누군가는 살아남아 사회를 바꾼다. 이것은 결코 개인적인 행복, 불행의 문제가 아니다. 배 활동가는 “폭력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그 상황에서 벗어나려면 어떤 자원을 찾아가 노크할 수 있는지를 알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형식적인 폭력 예방 교육이나 학과목 개설에 앞서 학교 문화 전체가 반폭력적·평화적으로 재구성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남의 몸에 손을 대는 것이 어떤 경우에는 다정한 행위지만, 어떤 경우에는 상대방에게 공격적이거나 모욕감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어려서부터 알아가야 합니다. 어린이집에서부터 교사와 아이의 스킨십, 친구와의 다툼을 어떻게 조정하는가의 문제 하나하나가 교육 자료가 되는 거죠.”

‘어떻게?’는 막연하지만 필요한 질문이다. 인권교육학과는커녕 인권학과도 존재하지 않는 현실에서 인권교육이란 ‘뜬구름 잡기’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배 활동가는 “인권 공부는 삶을 위한 공부”라며 “우선 교대나 사범대의 교사 양성 과정이나 재교육 과정을 통해 교사의 인권감수성을 키우는 것이 필요하다”고 운을 뗐다.

인권교육은 교과 수업 안에서 자연스럽게 이뤄져야 한다. 시험용으로 외우는 영어 단어는 잘 잊히지만, 여행을 앞두고 익히는 생존 영어는 쉽게 흡수되는 것처럼, 내 삶에 유용한 교육임을 알게 해야 한다는 얘기다. 영어포기자, 수학포기자와 같은 인권포기자가 나와서는 안 될 일이기 때문이다.

“음악수업에서 노래에 담긴 여성을 바라보는 인식을 통해 성교육을 할 수도 있고, 동요를 통해 성인 중심의 사회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사회적 이방인인 어린이의 입장이 되어보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겠죠. 수학, 사회, 국어 과목은 훨씬 더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고 접근할 수 있을 겁니다.”

배 활동가는 언론도 좋은 교사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취재 일선에서 인권가이드라인을 잘 지켜서 나온 보도 내용은 청소년들에게 훌륭한 교재가 된다는 것이다. “모든 학교의 모든 교사가 인권감수성을 갖춘 시대는 오지 않겠지만, 적어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지금부터 시작하는 것이 낫다”는 그의 말이 주는 울림이 크다.

■ 학급회의로 배우는 생활 정치(설규주 경인교대 교수 & 박현모 세종리더십연구소장)

이야기의 시작은 정치 교과서와 현실의 온도차다. 미디어를 통해 접하는 정치는 정치인보다는 정치꾼, 정치계보다는 정치판이 더 그럴듯하게 어울린다. 막말과 몸싸움, 심지어 성희롱이 난무하는 그 세계에 대해 청소년들은 부정적이다 못해 무관심의 벽을 쌓는다.

그러나 교과서 속 정치는 더없이 이상적이다. 생활 정치보다는 제도권 정치 위주의 교육으로 흘러가다 보니 정치는 더욱 어렵고 알 수 없는 것이 된다.

설규주 교수는 교단에 섰던 시절 학생들이 보여준 정치 반감을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교과서의 정치는 선거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정작 현행 선거권 연령은 만 19세 이상이라는 점도 정치의 이론과 실제의 괴리를 키우는 데 한몫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18세면 선거에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지식과 경험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고 봅니다. 정치에 관심을 갖게 하기 위해서는 정치란 우리의 일상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면서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요?”

생활 정치의 출발점으로 설 교수는 유명무실해진 학급회의의 부활을 제안했다. “외부 강사 강연이나 자율학습 등으로 희생되는 학급회의 시간에 학생들이 자치활동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학생들의 문제 인식이 우선해야 한다. 부실한 급식, 융통성 없는 교복 착용 규칙, 스마트폰 사용 제한, 청소 분담 등 학생들이 갖고 있는 불만을 안건으로 각 구성원들의 의견을 조정해 개선의 여지를 만드는 것. 혹 개선되지 않는다면 안 되는 이유라도 알게 하는 것. 그것이 교과서에서 다루지 않거나 혹은 좁게 언급된 것을 실제 생활에서 느끼게 하는 계기가 된다는 의견이다.

박현모 세종리더십연구소장도 세종대왕이 애용한 다사리와 경연을 언급했다. 다사리는 참석자 모두에게 발언권을 주고 의견을 들었던 토론이며, 경연은 말을 통해 지혜를 모으고 일에 적용하는 회의였다.

2014년 12월 세계 최초로 인성교육을 의무로 규정한 인성교육진흥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인간다운 성품과 역량이 곧 인성이라는 정의는 있으나, 교육 방법은 애매모호하기 이를 데 없다. 박 소장은 “자칫 지식의 강조, 학습 우선의 방식이 학생들의 수동적인 태도를 가져올 수 있으므로, 다사리와 같은 세종식 토론과 경청, 그리고 이야기 들려주기라는 회의 기법이 민주적인 의사 결정을 경험하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추천했다.

▶이젠 학교에서 가르쳐주세요

■제대로 된 대화 나누기 (윤영미 아나운서, <넌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세요?> 저자)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스마트폰 메신저, 문자메시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쪽지, e메일로 아무리 연락해도 답이 없어서 큰일이 난 줄 알았다는 친구의 걱정 섞인 타박에 “전화를 하지 그랬어?”라고 대꾸했다는 우스갯소리는 전화 본연의 임무인 통화기능이 후순위로 밀린 스마트폰 세대의 자화상이다. 짜장면 주문도 애플리케이션 조작으로 가능해지면서 인간의 말하기 능력도 저평가 시대를 맞았다. ‘대박’이 감정 표현의 만능키로 등극한 요즘, 한국인의 문해력과 어휘력 저하에 대한 우려도 심심찮게 제기된다.

34년차 아나운서 윤영미씨는 젊은층에서 눈에 띄는 언어 습관을 줄줄이 읊었다. 일단 아투(兒套), 어리광이 섞인 말투를 쓴다는 것. “그랬거든요~ 그래갖고요~”라며 불필요하게 어미를 길게 늘리는 것, “되게” “너무” 등 부사를 남발하는 것, 두 사람이 마주보며 대화를 하면서도 “저요? 정말요? 진짜요?”라며 확인하는 버릇 등을 예로 꼽았다. ‘굉장히’를 ‘갱장히’로, ‘최고야’를 ‘체고야’로 대강 말하며 발음을 뭉개는 이들도 흔하다. “경제적인 말하기가 인간의 본능이긴 하지만, 아투를 쓰면 일단 프로페셔널하지 않게 들립니다. 신뢰감을 주기도 힘들죠. 대화는 발음, 억양, 어휘 같은 언어적인 요소뿐만 아니라 자세, 표정, 동작 등의 비언어적인 요소로 이뤄지는데, 요즘은 두 가지가 다 안 되고 있어요.”

윤씨는 스마트폰 세대가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하는 과정에 익숙지 않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단순한 어휘 사용은 즉각적인 대응이 미덕인 스마트폰 소통에 최적화된 언어생활이다. “2030세대와 통화를 하다보면 목적한 바를 전달하는 것조차 어려워하는 경우가 많아요. 말하고자 하는 내용의 기승전결이 없다고나 할까요. 일단 말하는 데 대한 두려움이 큽니다.”

2015 개정 교육과정을 통해 중학교 1~3학년 듣기 말하기 영역에 ‘말하기 불안에 관한 내용 성취 기준’이 추가됐다. 그러나 여러 사람 앞에서 말할 때 부딪히는 어려움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내용을 담고 있어 ‘발표’ 위주의 말하기 지도라는 점은 한계로 보인다.

말하기 기술을 배우기에 앞서 자신의 콘텐츠를 쌓는 것이 우선이라는 윤씨의 지적은 새겨들을 만하다. 특히 심리학, 철학 등 다양한 영역까지 걸쳐 있는 비언어적인 부분은 하루아침에 완성되는 게 아니라는 것. “요즘 친구들은 ‘짤’은 봐도 책을 안 읽잖아요. 국어과 수업 이외 교양수업 시간을 마련해 책을 읽고 의견을 나누게 하는 교육이 필요해요. 맞춤법과 부족한 어휘력은 게임으로 극복하는 것도 방법이겠네요.”

윤씨는 자신의 트위터에 언어 사용에 관한 글을 올렸을 때 호응이 크다고 했다. “그만큼 올바른 언어 사용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은 크다”며 긍정적인 사인을 보냈다.

■우선순위를 찾는 용돈 관리 교육 (박미정 경제교육협동조합 푸른살림 엠밸런스코치)

여름과 겨울의 기온 차만큼 한국의 극단적인 면모를 드러내는 것이 바로 소비 패턴일 것이다. ‘돈은 안 쓰는 것’이라는 김생민표 ‘그뤠잇’ 정신과 한 번뿐인 인생 멋지게 살자는 ‘욜로(YOLO, You Only Live Once)’ 마인드는 매일같이 치열한 내면의 싸움을 벌인다. 은행 이자와 재테크가 사어(死語)가 된 듯한 가상화폐 통용의 시대에 자라나는 세대를 위한 경제 교육은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까.

“일단 용돈 관리 교육을 했으면 좋겠어요. 어른들이 보기에 잘 모으고 잘 쓰는 ‘좋은 돈 관리’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아이 스스로 자신의 소비 성향이나 패턴을 파악할 수 있는 기회로 삼자는 거죠.”

박미정 경제교육협동조합 푸른살림 엠밸런스코치는 기본을 강조했다. 용돈기입장을 쓰다 보면 자신에게 주어진 재화가 한정되어 있다는 것을 배우는 동시에 그 재화 배분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된다. 박 코치는 그동안 돈에 대한 현실감각 키우기의 필요성을 역설해왔다. 용돈 관리 교육은 삶의 우선순위를 찾는 철학이 필요한 동시에 현실감각을 익히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는 의견이다. 교육 시기는 초등학교 5학년 이후를 추천했다.

십 수 년의 학교교육을 마치고 사회인이 되는 기쁨은 잠시, 수많은 어른들이 전·월세 계약서, 난해한 수당 계산법, 펀드 가입 신청서 앞에서 좌절을 겪는다. “우리 사회가 자신이 원하는 걸 얘기하기를 금기시하잖아요. 특히 돈 문제에 있어서는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섣불리 말하지 못하는 분위기가 있어요. 그럴수록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집중이 필요합니다.”

박 코치는 ‘짠돌이’가 미덕인 것처럼 소개되면 소비의 미덕을 찾던 사람들이 힘들어지고, 욜로가 강조되면 미래를 위해 저축하는 사람들이 허무해지는 경향성을 두고 “사람마다 연비가 다르다”고 정리했다. “돈을 보태주는 사람의 조언이 아니면 듣지 말라”는 조언은 정곡을 찌른다.

박 코치는 경제 교육이 공식화된다면 다양한 경제단체와 교육기관에서 커리큘럼을 제공하고 그것을 학교나 교사, 부모가 취사선택할 수 있는 방향으로 진행되었으면 한다고 제안했다. 자칫 은행이나 금융회사가 주도하는 금융상품 교육으로 변질될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추천 콘텐츠를 요청하자 박 코치는 애니 레너드의 <물건 이야기>와 우치다 타츠루의 <어른 없는 사회>를 들었다. 물건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소비되는지 라이프 사이클을 보여주는 환경학자의 책. 책임과 대가를 아는 것이 어른이라는 함의를 담은 일본 문화평론가의 책이다.

■주변 식물에 돋보기를, 생활 식물 교육 (고규홍 나무칼럼니스트)

지난해 여름 서울의 한 공원이었다. 어린이집 원아들을 데리고 나온 교사가 노란 꽃잎에 거무스름한 술이 달린 꽃(루드베키아)를 가리키며 “해바라기”라고 했다. 아무리 봐도 해바라기는 아니었지만, 당시에는 정확한 꽃이름을 알지 못해 감히 훈수를 두지 못했다. 그 일화를 들은 나무칼럼니스트 고규홍씨는 “식물의 이름을 가르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를 웅얼대는 기자에게 고씨는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는 나태주의 시를 들려줬다.

이어 고씨는 “아이들에게 자연의 이름을 가르쳐줄 것이 아니라 자연이 얼마나 경이로운지 가르쳐야 한다”는 레이첼 카슨의 글을 인용했다. 고씨는 식물의 이름을 많이 아는 아이들은 나뭇가지를 꺾을 수 있지만, 자연을 사랑하는 아이들은 결코 가지를 꺾지 않는다고 말했다. “사람은 사랑하지 않는 것을 위해 목숨을 걸지 않습니다. 단지 식물의 이름을 안다고 목숨 걸고 싸우지 않아요. 자연이 얼마나 사랑해야 할 대상인지 몸으로 느끼게 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숲유치원이 성행할 정도로 자연 학습에 대한 관심은 높아지고 있다. 체험학습도 늘었다. 하지만 목적지가 테마파크나 외곽의 숲이라는 점에서 고씨는 아쉬움을 드러냈다. 식물 교육을 위해 매번 장거리 버스에 몸을 실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도시의 나무 친구들> <도시의 나무 산책기>는 고씨가 살고 있는 경기도 부천의 한 아파트 단지 주변 식물들의 계절에 따른 변화를 담아낸 책이다. 이팝나무, 양버즘나무, 개잎갈나무 등 흔한 가로수부터 철쭉, 맥문동 등 철따라 색색의 꽃을 피우는 식물까지 콘크리트 도시에서도 자연은 사계절을 온몸으로 보여준다.

“준비물은 돋보기 하나면 됩니다. 이른 봄에 피는 산수유도 돋보기로 자세히 들여다본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접사 촬영한 산수유 사진을 확대해 보여주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탄성을 지릅니다. 그런 신비로움과 아름다움을 알려주는 것이 환경 교육의 첫걸음이 될 거예요.”

그는 “어른들은 시각으로만 세상을 보느라 다른 감각 능력이 희미해졌지만, 아이들은 많은 감각이 깨어있다”며 “꽃향기도 맡게 하고 나무줄기에서 나는 소리도 듣게 하고 때론 이파리도 씹어 먹게 하면서 식물을 통해 오감교육이 이뤄질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세계를 보는 시야를 넓히는 요리 교육 (정동현 음식칼럼니스트)

‘이것’은 세계를 보는 지평을 넓히고 타인의 입장을 이해하게 하며 생존 기본권에 대한 인식을 형성한다. 특히 남자가 세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셰프 겸 음식칼럼니스트 정동현씨가 추천하는 ‘이것’은 요리 교육이다.

세상이 바뀌어 남학생과 여학생 공히 ‘기술가정’을 배우지만, 그 내용은 생활습관병과 식이요법, 푸드 디자인의 실제, 그리고 단탄지(단백질, 탄수화물, 지방)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요리 교육이라 하면 불과 칼을 직접 다뤄봐야 하는데, 현실적인 제약이 많다보니 식습관, 칼로리와 영양소 위주의 피상적인 교육이 이뤄지는 것 같아요. 요리를 해볼 수 있는 기회가 없다보니 두려움만 커지는 거죠.”

경영학도 출신의 정씨는 해군 복무 당시 취사반 지원을 나갔다가 요리의 묘미를 발견했다. 이후 영국으로 건너가 요리학교 탕트마리에서 본격 수업을 받았다. 음식을 먹는 즐거움보다 만드는 즐거움을 강조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요리를 하는 것 자체가 정말 즐겁거든요. 또한 내가 해준 음식을 누군가 먹는 걸 보는 기쁨은 대체 불가능합니다. 뭔가를 만드는 창작의 의미와 순간의 성취감도 큽니다.”

정씨는 요리 과정을 모르기 때문에 김밥 한 줄 원가 계산에 식재료 값은 넣어도 노동자의 노력, 준비 과정의 수고로움은 깡그리 지우는 것이 아니겠느냐 반문했다. 노동 감각이 없으니, 요리를 하찮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는 지적에는 반박의 여지가 없다.

만드는 사람 따로 있고, 먹는 사람 따로 있으니 음식에 대한 평가 또한 그들만의 리그가 된다. 때문에 음식 본연의 맛보다는 보신주의적 관점이 평가를 지배한다고 정씨는 짚어냈다. 정성껏 만든 케이크를 앞에 두고 맛의 풍요로움을 표현하기보다는 ‘달지 않아 맛있다’고 한다. 즉 몸에 나쁘지 않아 ‘착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맛에 도덕적인 관념을 부여합니다. 지금 우리나라 맛 평가에 ‘황홀’ ‘매혹’ 같은 표현은 금기시됩니다. 신토불이, 건강과 같은 가치판단의 영역으로 흘러가다 보니 정작 맛의 표현은 단순해지는 거죠.”

정씨는 한 끼의 식사가 그 사회의 단면을 그대로 드러낸다고 말한다. 쌀의 생산과 유통 과정은 경제학, 쌀이 밥으로 완성되는 과정은 화학, 밥맛을 인식하는 과정은 생물학 등 연계 학문을 따지자면 끝이 없다. 정씨는 요리 유학 시절, 단순히 손을 깨끗이 씻는 것을 넘어서 위생과 청결을 심도 있게 공부하는 것이 이채로웠다고 전했다. 요리로 배울 수 있는 영역은 무궁무진하다. 그는 “요리는 재료를 이해하고, 타인을 이해하는 수단”이라고 말했다.

▶출판사가 수정·보완시스템 등록 → 한국교과서연구재단 등 자문 → 교육부 승인 후 새 교과서 제작>> 교과서 수정·보완 절차는 최근 교육부는 문단 내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받은 고은 시인의 작품이 담긴 교과서의 재검토 작업에 착수했다. 교육부는 총 130여 종에 달하는 중·고교 검정 국어교과서에 고은의 작품이 실렸는지 각 출판사에 확인을 요청했다. 이후 결과에 따라 해당 교과서 저자들과 논의를 거쳐 수정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교과서는 통상 개정과 수정을 통해 내용 변경이 이뤄진다. 교육부 교과서정책과 심순희 연구사는 “개정은 (정례적인) 교육과정을 통해서 하고, 수정 및 보완은 국민적인 제안이나 민원, 국가사회적 요구사항이 들어올 경우 이뤄진다”고 말했다. 현재 학교 현장의 교과서는 2015 개정 교육과정에 따른 교과용 도서로 2017년부터 연차적으로 사용됐다. 당시 통합적 사고력을 키우는 ‘통합사회’, ‘통합과학’ 과목이 신설됐다. 생활안전, 교통안전, 신변안전, 재난안전으로 구성된 초등 1~2학년용 ‘안전한 생활’이 신설된 것도 이때다. 고은 시인 사례와 같이 특정 사안으로 인해 삭제 및 수정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경우, 출판사가 수정·보완시스템에 관련 내용을 등록하면 한국교과서연구재단 등의 자문을 거쳐 교육부가 최종 승인하는 절차를 밟는다. 이번 수정 작업이 이뤄지면 2학기부터는 새로운 내용의 교과서를 통해 수업이 이뤄진다. 올 1학기 교과서에 수록된 시는 해당 교사가 수업 중 수정 사항을 알리고 지도한다.

<장회정 기자 longcu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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