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GM '화전민식 경영' 16년..1만6천명 노동자 가슴엔 피멍만

2018. 2. 24. 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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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대우차 부도 뒤 해고
이번엔 GM서 정리해고 통보
"본사가 물량 일방적 넣고 빼고
생활수준 널뛰기..하청 취급"
"한국 업무보다 본사 업무 더 많아
특허 어디 갔는지 설명도 없어"
위기 앞 '노동자 편가르기' 우려도

[한겨레]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가 지난 14일 전북 군산에서 결의대회를 열고 “공장 폐쇄 철회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 제공

한국지엠(GM)의 군산공장 폐쇄 결정에 따른 논란이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군산발’ 고용위기에 전북 군산과 인천 부평, 경남 창원공장 등에서 일하는 한국지엠 노동자 1만6천명의 마음은 타들어갈 수밖에 없다. 마치 ‘빨대’를 꽂은 듯 막대한 이자와 업무지원비, 기술 라이선스 등만 빼내 한국지엠을 적자투성이로 만든 지엠 본사의 경영 행태, 곧 ‘화전식(경작지에 불을 질러 농사를 지은 뒤 땅의 힘이 바닥나면 다른 곳으로 옮기는 방식) 경영’에 대한 노동자의 분노도 커지고 있다.

대우에 지엠까지…어떻게 두번이나 1986년 대우자동차 부평공장에 입사해 현재 한국지엠 군산공장에서 생산직 노동자로 일하는 ㄱ(55)씨는 지난 설 연휴 직전, 회사가 특급우편으로 보낸 희망퇴직원과 사직원을 받았다. 2001년 대우자동차의 정리해고 통보서를 받은 뒤 17년 만이다. ㄱ씨는 지난 20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아내가 ‘어떻게 (회사가) 두번씩이나 이러냐’고 하더라고요. 배신감 들고 암울하죠”라며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ㄱ씨는 2001년 대우차 부도에 따른 1700여명 정리해고 순간을 또렷하게 기억한다. “그때는 너 아니면 내가 해고될 형편이었어요. 초등학교 6학년, 중학교 2학년 애들이 딸려 있으니 당장 먹고사는 게 급했어요.” ㄱ씨는 해고 뒤 치킨집을 차렸다. 배달까지 직접 챙겼지만 처음 해본 장사라 역시 어려웠다. “겨우 애들 학교 보낼 정도로 먹고살았다”고 ㄱ씨는 회상했다. 2003년 노사가 정리해고자 복직에 합의하자 그는 치킨집을 정리하고 공장으로 돌아왔다.

ㄱ씨는 2005년 새로 열린 군산 디젤엔진공장에 배치됐고 이곳에서 정년퇴직할 작정으로 아예 이사도 했다. 처음 몇년만 괜찮았다. 지엠은 점차 군산공장 물량을 줄여나가더니 지난 12일 아예 공장을 멈춰세웠다. 지엠 본사는 각 공장의 생산 물량을 일방적으로 넣고 빼기를 거듭했고, 그 물량에 따라 노동자의 생활 수준이 널뛰었다. ㄱ씨는 “지엠 본사가 한국지엠을 하청업체로 생각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는 “물량으로 공장 사이에 경쟁을 붙여서 지엠 본사만 이득을 챙긴다”고 말했다.

회사라는 울타리의 ‘바깥’을 이미 경험한 그는 걱정이 크다. “2001년 정리해고 때도 전직 지원 절차가 있었지만 성공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군산 경기가 워낙 안 좋아 재취업도 힘들어 보인다.” ㄱ씨는 다시 치킨집을 차려야 하나 고민중이다.

본사 위한 연구개발 성과 어디로 갔나 지엠 본사에 대한 박탈감은 군산공장 노동자만 느끼는 감정이 아니다. 전국금속노동조합 한국지엠지부 사무지회가 감사보고서 등을 종합해 작성한 자료를 보면, 2012~2016년 한국지엠의 누적적자 약 2조원 가운데 1조5천억원은 이자비용·업무지원비 등 지엠 본사에 지불한 비용이다. 노조는 “같은 기간 한국지엠은 기술개발을 위해 2조9926억원을 썼는데 지엠 본사가 한국지엠에 지불한 기술료는 4771억원에 그친다”고 주장한다. 많은 한국지엠 연구개발직 노동자들이 “노동의 대가가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하는 이유다.

창원공장에서 일하는 연구직 노동자 ㄴ씨는 “2011년 한국지엠으로 바뀐 뒤로 한국지엠 업무보다 지엠 본사 업무가 더 많았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생산되는 트랙스와 형제 차종인 뷰익 앙코르, 홀덴 모카는 한국지엠에서 모두 개발했다. 전세계 지엠 브랜드 가운데 한국지엠이 유일하게 이 업무를 맡고 있다. 한국지엠이 생산하지 않는 대용량 가솔린엔진도 지엠 본사를 위해 한국지엠에서 개발한다. ㄴ씨는 “한국지엠이 돈 들여 다 개발했는데, 그 대가로 지엠 본사가 얼마를 받았는지 특허가 어디로 갔는지 회사는 설명하지 않는다”고 했다. 지엠 본사는 과거 스웨덴 자회사 사브를 정리하는 과정에서도 지식재산권 독점을 고집해서 여러차례 매각 기회를 놓친 바 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결국 사브는 파산하고 말았다.

ㄴ씨는 군산공장 폐쇄 발표에 대해 “노동자나 한국지엠 경영진이 잘못해서 회사가 어려워졌다면 모르겠지만, 현재까지 한국지엠은 지엠 본사가 배정해주는 일 받아와서 생산하는 수준에 그쳤다”며 “초국적기업이 현지법인의 유지를 위해서 일정 부분 이익을 분배해줘야 하는데, 지엠은 모든 이익을 다 가져가고 현지 국가와 그 노동자에게 피해를 전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가 지난 20일 국회 정론관에서 ‘지엠자본 규탄 및 대정부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 제공

위기 앞 ‘노동자 편가르기’ 우려도 한국지엠의 생산직과 사무직을 막론하고 불안함과 박탈감에 시달리는 가운데 위기가 계속될수록 ‘노동자 편가르기’가 진행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지난해 12월 대기업 정규직 노조의 자성을 담은 책 <위장취업자에서 늙은 노동자로 어언 30년>을 낸 이범연(56)씨는 학생운동권 출신으로 1989년 대우자동차에 위장취업한 이후 29년째 한국지엠 부평공장에서 생산직 노동자로 일하고 있다.

이씨는 “앞으로 지엠 사쪽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군산공장과 다른 공장 사이에 갈등을 부추겨 갈라치기 하려 들 것”이라고 말했다. 대우차는 2001년 정리해고에 앞서 먼저 비정규직 노동자를 모두 해고했고 정규직 노동자한테는 ‘상황이 좋아지면 다시 들어올 수 있다’며 희망퇴직을 부추겼다.

“실직에 대한 불안감이 지속되고 결국 정리해고자 명단이 발표되자 회사 내 인간관계는 황폐화했다”고 이씨는 회상했다. 이씨는 “결국 정리해고자 전원이 복직했지만 감정의 골은 지금도 있다”고 했다.

이씨는 군산공장 폐쇄 결정 앞에서 지엠 노동자의 연대의식을 지켜내는 것이 노조의 과제라고 조언한다. 그는 “지엠 사태는 노조의 투쟁만으로는 해결이 어렵고 사회적 관심이 필요하다. 누가 편을 나눠 자기 이득 챙기는 이들의 싸움에 관심을 갖겠나”라고 반문하면서 “그럴수록 노조는 비정규직 등 다양한 현장, 다양한 처지의 노동자를 하나로 모아내는 구실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지혜 박태우 기자 god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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