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평창 올림픽 망해라"?..'안티'가 된 자원봉사자

김종훈 기자 2018. 2. 24.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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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 [Law&Life-노예가 된 자원봉사자 ①] 주최측 준비와 자원봉사자 인식 둘다 부족
2018 평창올림픽 개막을 닷새 앞뒀던 지난 4일 강원도 강릉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인 오발에서 자원봉사자들이 국기게양 예행연습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1


"솔직히 평창 동계올림픽이 성공적으로 개최되라고 기원하진 못할 것 같습니다. 속마음은 아주 망해버렸으면 좋겠어요."

평창올림픽 개막 3개월 전인 지난해 11월 한 '페이스북 대나무숲'에 올라온 글이다. 평창올림픽 자원봉사를 포기했다는 한 대학생은 이 글을 통해 조직위원회에 강한 불만을 쏟아냈다. 시험기간을 쪼개 10시간 넘는 교육을 이수했음에도 봉사자들이 지원하지 않은 직무에 배정되거나 아예 직무를 배정받지 못하는 등 납득하기 힘든 처우를 받았다는 것이다.

평창올림픽 자원봉사자들의 불만은 대회 개막 이후로도 꾸준히 제기됐다. 자원봉사자들 중 일부는 조직위가 셔틀버스를 제대로 운영하지 못해 영하 10도를 밑도는 강추위에 1시간 가량 떨어야 했다며 '보이콧' 직전까지 나가기도 했다.

그 뒤로도 난방과 숙소, 식사 등 기본적인 요소들에서 푸대접을 받고 있다는 볼멘소리가 계속 나왔다. 자원봉사를 하다 노로바이러스에 걸렸는데도 제대로 된 조치를 받지 못해 중도 포기한 경우도 있었다. 이에 후한 대접을 바라는 건 아니지만 봉사활동에 집중하기 어려울 만큼 푸대접하는 것은 문제라는 목소리가 커졌다. 이 같은 논란은 주최 측의 준비 부족과 자원봉사자들의 인식 부족이 결합된 결과라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하려면 하고, 말려면 말고?" 뿔난 자원봉사자들

20일 평창올림픽 조직위원회에 따르면 이번 올림픽에 참여한 자원봉사자는 총 2만1600여명에 이른다. 현재 진행 중인 올림픽에 1만5000여명, 패럴림픽에 6600여명이 자원봉사자로 참여한다. 이들은 관중안내, 교통안내, 선수단 지원, 의료단 지원 등 244개 직무에서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16년 12월 발행한 '자원봉사자의 사회적·경제적 가치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자원봉사 활동의 경제적 파급효과는 최소 1조9641억원에서 최대 3조2924억원에 이른다. 이번 평창올림픽에서도 자원봉사를 통해 예산절감등 상당한 경제적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불만을 토로한 평창올림픽 자원봉사자들은 조직위가 다른 문제는 등한시한 채 이런 경제적 효과만 빼먹으려 했다고 주장했다. 대나무숲에 불만 글을 올린 대학생도 "그들(조직위)은 저희를 무상으로 노동력을 제공하는 사람들, 우리가 포기해도 할 자원봉사할 사람들이 줄을 섰으니 '하려면 하고, 말려면 말고' 딱 이 정도로 보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주최측 준비·자원봉사자 인식 둘다 부족

이번 평창올림픽은 자원봉사자들을 위한 사전 준비와 대처가 모두 미흡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최근 노로바이러스에 걸린 자원봉사자의 사례가 알려지면서 비판이 거세졌다. 이 자원봉사자는 격리된 이후 한동안 식사조차 받지 못했는데, 조직위 측에서 제대로 보고가 이뤄지지 않은 탓이었다. 일각에선 조직위가 세계적인 행사를 치르면서 법에 규정된 의무조차 제대로 지키지 못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자원봉사법 제14조에 따르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자원봉사활동이 안전한 환경에서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할 의무가 있다.

자원봉사에 대한 인식이 다소 왜곡돼 있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순수한 마음으로 나서는 자원봉사자도 많지만, 자원봉사를 입시나 취업을 위한 '스펙쌓기'의 기회로 여기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 경우 '대가를 바라지 않고 돕는다'는 자원봉사의 원칙이 깨져 갈등의 불씨가 생길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그래픽=이지혜 디자이너

실제로 지난해 11월 서울시자원봉사센터가 평창동계올림픽 서울지역 자원봉사자 508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24세 이하가 전체의 90.87%에 달했다. 취업을 준비할 시기에 있는 청년들이 대거 몰린 것이다.

자원봉사 지원 신청은 취업에 도움이 된다고 여겨지는 분야들에 집중됐다. 2016년 10월 조직위가 집계한 자원봉사 신청 결과에 따르면 490명을 모집하는 '통역' 직종에 8131명이 몰려 경쟁률이 16.6대 1에 달했다. 시상과 방송 직종도 경쟁률이 각각 11.7대 1, 8.37대 1이었다. 반면 교통안내 직종은 지원자가 미달됐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지망과 다른 직종에 배정되는 자원봉사자가 나타날 수밖에 없었다는 지적이다.

◇요리하러 갔더니 무 손질만…해법은?

전문가들은 평창올림픽에서만 이런 문제가 나타나는 건 아니라고 설명했다. 이철선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사회서비스연구센터장은 "우리나라 자원봉사의 문제는 입시와 연관이 돼 있다는 점"이라며 "자원봉사가 시간으로 입시에 적용이 되다보니 '대가'라는 인식이 생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센터장은 자원봉사가 구조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자원봉사가 없으면 운영 자체가 불가능한 곳이 적지 않다 보니 자원봉사자들의 생각과 다른 수고를 요구하게 돼 다툼이 생긴다는 것이다.

이 센터장은 조리학이 전공인 한 고등학생을 사례로 들었다. 이 고등학생은 장애인들에게 음식을 대접할 생각으로 시설에 나갔다가 하루 종일 무만 썰어야 했다. 이에 실망한 학생은 그 다음부터 이런 종류의 봉사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러나 시설 입장에서 보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조리사 인력은 부족한데 예산은 한정돼 있다 보니 고등학생에게 무 써는 일을 시켜야 했다는 것이다. 이 센터장은 평창올림픽 자원봉사자들의 불만도 이 같은 예산 부족이 근본 원인이었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 센터장은 이런 문제는 법이 아닌 교육과 구조개선으로 풀어나갈 문제라고 제언했다. 민간의 자율영역인 자원봉사에 강제력을 들이대는 것은 부적절하고 자원봉사의 취지에도 반한다는 것이다. 이 센터장은 "자원봉사 활동을 시작하기 전 몇시간 교육을 받는다고는 하지만 그 정도로 자원봉사란 어떤 것인지, 돕고 베푼다는 것에 대한 인식이 자리잡기는 어렵다"며 "의식부터 바뀌어야 하는데 (자원봉사에 대한) 교육이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김종훈 기자 ninachum24@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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