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자본금 15억' 요건 미달 수두룩.. 상조회사 100개 문닫을판

김아사 기자 입력 2018. 2. 24.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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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1월 대규모 시장개편 불가피
공정위, 소비자·업체 상생안 마련
폐업 땐 소비자만 피해
회비로 받은 돈 50% 은행 예치 규정 안지켜.. 작년 적발된 곳만 40여개
공정위 "대형 업체들이 소비자 회비 절반만 받고 폐업한 업체 대신 서비스"

지난 7일과 14일 10개 대형 상조 회사 임원들이 공정거래위원회 회의실에 둘러앉았다. 상조 업계는 협력이 없는 곳으로 통한다. 1982년 일본식 장례 서비스를 들여온 부산상조개발이 첫 영업을 시작한 지 36년이 흘렀지만, 업체가 난립하며 무분별한 경쟁이 이뤄져 온 탓에 소통이나 연대가 적다. 흔한 사업자 협력 단체도 없다. 최근엔 경쟁의 정도가 심해져 안마 의자, 냉장고 등과 상조 서비스를 함께 파는 결합 상품을 내세우며 고객을 뺏고 뺏기는 일도 잦아졌다. 이런 상조 업계 관계자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대부분 초면인 이들은 처음엔 명함도 교환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픽=이철원

이들의 관심사는 현재가 아닌 1~2년 후의 시장. 상조업은 시장의 전면적 개편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국회는 지난 2016년 1월 상조 회사의 난립을 막기 위해 최소 3억원이던 자본금을 15억원으로 늘리도록 법을 개정했다. 단번에 자본금을 증액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업계의 사정을 감안해 3년의 유예기간을 뒀다. 내년 1월까지 자본금 15억원을 맞추지 못한 회사는 문을 닫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현재 운영 중인 162개 회사 중 자본금 15억 이상인 곳은 20곳. 최대 100곳 이상이 폐업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소비자들 입장에선 자신이 회비를 납입하는 상조 회사가 망하면 큰 손해를 본다. 지난해 9월 기준으로 상조 업체에 가입한 회원은 502만명, 이들이 맡긴 돈(선수금)은 4조4866억원에 달한다. 남은 업체 입장에서도 대규모 폐업은 상조업 자체의 신뢰를 흔들어 가입자 수가 급감하는 등의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이날 모인 이들 중 일부는 뾰족한 해결책이 없는 상황에서 현상 유지가 최선이라 여긴 공정위가 한발 물러나지 않을까 하는 낭만적 기대를 품고 있었다.

불가피한 대규모 폐업

상조 회사는 회원을 모집한 뒤 이들로부터 매월 일정액의 회비를 받고 회원 가족이 사망하면 장례식에 필요한 물품과 인력을 제공한다. 5~6년 전까지 상조업은 유망 사업 중 하나로 주목받았다. 노령 인구가 증가하는 데다 소비자들이 맡긴 돈에 대한 관리가 헐거워 돈벌이가 된다는 인식이 강했기 때문이다. 비슷한 성격인 보험의 경우 위험 자산에 대한 투자 등 자산 운용 규제가 많지만, 상조업은 규제가 없다. 이 때문에 도중에 폐업 신고를 한 뒤 잠적해버리는 경우도 허다했다. 2012년엔 현재 운영되는 회사의 2배가량인 300개 이상 업체가 난립하기도 했다.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의 몫이었다.

국회는 소비자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상조 회사에 낸 돈 중 50%는 돌려받을 수 있도록 법을 개정했다. 자본금을 3억원에서 15억원으로 늘려 우량 업체만 남기도록 법을 개정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그렇다 해도 소비자 입장에선 업체가 문을 닫으면 낸 돈의 절반만 돌려받을 수 있기 때문에 큰 손해다. 최악의 경우엔 이마저도 불가능하다. 일부 상조 회사가 소비자로부터 받은 돈 중 50%를 은행에 예치해야 한다는 규정을 지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2016년 폐업한 국민상조의 경우 선수금 940억원 중 예치한 돈이 채 100억원이 되지 않았고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전가됐다. 지난해 이를 지키지 않아 공정위가 적발한 곳만 40여곳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대부분 상조 회사는 몸집 불리기에 열중하고 있다. 최근 상조 업체들은 고가의 가전 기기를 결합 상품으로 내세워 소비자들을 유혹하고 있다. 포털이나 소셜 미디어에는 월 2만~3만원만 내면 대형 TV나 양문형 냉장고, 노트북을 받을 수 있다는 광고가 넘쳐난다. 한 업체에 상담 신청을 해보니 상조 부금과 가전제품 할부금을 합해 월 2만4900원을 200회 내면 고급 가전제품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상담원은 만기 시에 이 돈을 모두 환급받을 수 있으니, 가전제품을 그냥 사는 것은 바보 같은 일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 역시 업체가 문을 닫으면 소비자 피해로 연결될 가능성이 크다.

소비자·업체 상생안 마련한 공정위

자본금 증액의 법 개정 취지를 충족하면서도 돈을 낸 소비자의 피해가 없게 하는 방법은 없을까. 관련 당국인 공정위는 고민 끝에 아이디어를 냈다. 대형 업체들이 소비자들이 낸 돈 중 보전받는 50%의 돈만 받고, 폐업한 업체 대신 상조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종의 '상조 보장 서비스'를 하는 것이다. 이미 만기로 돈을 모두 낸 소비자는 상조 서비스를 받을 때 보전받은 50%의 돈만 그대로 내면 되고, 돈을 내는 중이었다면 장례가 발생할 때 보전받은 50%의 돈과 기존 계약에서 남은 불입금을 지불하면 된다.

대형 업체들이 절반만 돈을 받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셈이어서 손해 같지만, 현재 고객 뺏기를 하며 과열된 시장에서 마케팅 비용이나 고객 증대 효과 등을 감안하면 그렇지 않다는 게 공정위 판단이다. 업계 역시 전체 고객 수 감소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보고 있다. 소비자 피해를 없애면서 업계도 보호하는 절충안인 셈이다.

세종시와 서울을 오간 회의 끝에 10개 대형 업체 중 프리드라이프, 교원라이프, 좋은라이프, 라이프온, 경우라이프, 휴먼라이프 등 6개 업체가 우선 참가해 서비스를 제공하기로 했다. 공정위는 소비자들이 6개 업체 중 어느 업체에 연결해도 문제가 없도록 공통 상품을 개발할 계획이다. 홍정석 공정위 할부거래과장은 "제도가 시행되기 전에도 폐업한 상조 회사로 인한 피해자들이 나올 수 있어 2016년 1월 관련법 개정 후 손해를 본 이들도 모두 구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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