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았던 아이들
━ 현예슬의 만만한 리뷰(25) 영화 ‘아무도 모른다’ [※스포일러가 있으니 주의하세요]
오랜만에 찾아뵙겠습니다. 오늘 고른 영화는 1988년 일본 도쿄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스가모 아동 방치 사건’을 모티브로 연출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아무도 모른다' 입니다.
이삿짐 직원에게 부탁하면 될 걸 다소 의아한 상황에서 모두가 떠나고 난 뒤, 집에 남겨진 두 사람과 가방. 그때 가방이 요동치기 시작합니다. 뭐지? 갑자기 호러물로 전환되는 건가 싶을 때 가방에서 나오는 건 바로 어린 여자아이와 남자아이입니다.
이 외에도 다른 사람들의 눈을 피해 집으로 들어온 아이까지. 총 4명의 아이와 엄마. 5명이 한 가족입니다. 그런 이들에겐 집에서 생활하기 위한 규칙이 있는데요. 첫째, 큰 소리를 내지 않는다. 둘째, 밖에 나가지 않는다. '큰 소리를 내지 않는다'는 층간소음이 문제가 될 수 있으니 그럴 수 있다 쳐도, '밖에 나가지 않는다'라니. 뭔가 이상하죠? 이런 규칙들만 들어봐도 이 가족이 평범한 가족이 아님을 느낄 수 있습니다.
어느 날 엄마는 아키라에게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 고백합니다. 이에 “또?”라고 대답하는 아키라에게서 이 상황이 전에도 몇 번 있었음을 짐작하게 하죠. 어쩌면 아키라는 이때부터 닥쳐올 불행을 감지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얼마 후 엄마는 여분의 돈과 함께 ‘크리스마스 때는 돌아올게.’라는 말만 남기고 떠나버립니다. 하지만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봄, 여름이 돼서도 엄마는 돌아오지 않습니다. 이때부터 이들의 처절한 ‘삶’이 시작됩니다.
마땅히 보호받아야 할 아이들의 기본적인 일상이 점점 무너져 내리는 걸 보면서 관객들은 하나같이 '엄마가 부모로서 책임이 없다' 또는 '아이들이 불쌍하다'는 등의 생각과 동시에 어른으로서 미안함과 부끄러움 등의 감정을 느끼실 겁니다.
하지만 영화 속 아이들은 너무나도 담담합니다. 오랜 시간 동안 부재중인 엄마를 누구 하나 원망하지 않고, 아이들에게 흔한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습니다. 분명히 슬픈데 울지 않는 아이들, 그래서 이 영화가 더 슬프고 참담하게 느껴진 건 아닐까요.
장남인 아키라 역을 맡은 야기라 유야는 이 영화를 통해 칸 국제영화제 최연소 남우주연상을 받는 쾌거를 얻었습니다. 당시 심사위원이던 세계적인 거장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은 "영화제 기간 동안 많은 작품을 보았지만, 마지막까지 기억에 남는 건 아키라의 표정뿐이었다."라는 극찬을 하기도 했죠.
폭행의 이유는 막내딸이 배고픔에 컵라면을 훔쳐 먹었다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이때 장남은 방안에서 게임을 하고 있었다고 했지만, 평소에는 친구들과 함께 폭행에 가담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고요.
때로는 현실이 영화보다 더 잔인할 때가 있습니다. 아니 더 많을지도 모르겠네요.
■ 아무도 모른다
현예슬 hyeon.yese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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