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연의 색다른 인터뷰]김경수 "문 대통령 가끔 만나..그분 지금 가장 큰 고민은 남·북·미 관계"

박주연 기자 2018. 2. 23. 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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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더불어민주당 김경수 의원

김경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19일 서울 삼청동의 한 한옥 찻집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며 웃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관으로 곁을 지켰던 그는 문재인 대통령의 의중도 누구보다 잘 꿰뚫고 있는 ‘복심’으로 통한다. 김기남 기자

“오맛!” 지난 19일 김경수 더불어민주당 의원(51)을 본 서울 삼청동 찻집의 20대 여종업원이 얼굴까지 발개지며 비명을 질렀다. 폴짝폴짝 뛰며 ‘팬’이라고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관’으로 주로 기억돼온 그가 젊은 세대에게 인기가 있을 줄은 생각지 못했다. 김 의원은 싫지 않은 듯 “허허허…” 웃으면서도 수줍어했다.

김 의원은 노 전 대통령만큼이나 문재인 대통령의 의중도 잘 꿰뚫고 있는 ‘복심’으로 통한다. 대선 경선 기간에 문 대통령의 대변인으로 일한 그는 대선 선거운동 때는 문 대통령을 24시간 ‘밀착 수행’하는 역할을 맡았다. 문 대통령 당선 후에도 잠시 수행·보좌역을 했다. 두 명의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한 시간은 그에게 ‘행운’인 동시에 ‘아픈 기억’이기도 할 것이다.

‘문 대통령의 가장 큰 고민이 뭐냐’는 질문부터 던졌다. 1초도 안돼 “지금은 남북관계, 북·미관계, 한반도 평화가 1순위이고 두 번째가 최저임금을 비롯한 경제문제로 국민들이 먹고사는 문제일 것”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어떻게 그렇게 잘 아시나요. 대통령을 볼 기회가 많거나 전화통화라도 자주 하나 봅니다.

“허허허… 뭐… 가끔 뵙죠. 구체적으로 드릴 말씀은 아닌 것 같고, 허허허….”

-노 전 대통령과 문 대통령은 외견상 성격이 정반대로 보이는데, 어떤가요.

“오히려 비슷한 면이 많아요. 두 분 모두 시대의 요구나 사명에 대해 본인이 감당해야 할 상황이 오면 거부한 적이 없고 온몸으로 받아 안으셨으니까요. 문 대통령님은 대학 때부터, 노 대통령님은 사회운동에 뛰어든 후부터 쭉 정치인생을 그렇게 걸어오셨잖아요. 그러면서도 공감과 소통능력이 다른 지도자들에 비해 탁월하신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두 분 모두 비서진, 참모진에게도 늘 존대하고 하대를 안하셨어요. 제게도 경수씨, 김 비서관 이렇게 부르시죠.”

-문 대통령은 대선 후보시절 우유부단한 이미지가 강했잖아요.

“사람 잘못 본 거죠. 전형적인 외유내강형입니다. 거꾸로 좀 따뜻해 보이는데 냉정한 면도 있으세요.”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정상회담을 제안했어요. 성사되면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에 이은 3번째 정상회담인데, 우리 정부가 어떤 태도를 취하고 어떤 실리를 얻어야 할까요.

“문 대통령님도 말씀했지만 저도 서두를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차근차근 주변국들과 남북관계나 북한의 비핵화 문제 등을 협의해 나가야 하고 국민들과도 보조를 맞춰야 해요. 대통령님이 정상회담에 필요한 여건을 하나하나 만들어가면서 추진하실 것으로 봐요. 다만 정상회담이 추진되면 비핵화를 포함한 한반도 평화문제뿐 아니라 남북경제협력 문제도 논의해야겠죠. 한국경제의 활로이기도 하니까요.”

그는 이 대목에서 북한의 급격한 시장화를 설명하며 “(북한 상황이) 중국 개혁개방의 초기 단계와 같다. 우리나라가 북한의 시장화를 어떻게 활용할지 중장기적으로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과 러시아가 실익을 챙기고 있거든요. 실제로 최근 북한 광산개발에 36개 투자 건이 있었는데 그중 33건을 중국이 차지했어요. 계속 그렇게 방관할 순 없는 것 아닙니까. 잘 준비해서 남북평화가 곧 경제로도 이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해요.”

-2030 젊은층에서는 통일과 북한에 대해 기성세대와는 다른 인식을 가진 것으로 나타나고 있어요. 평창 동계올림픽 남북 단일팀 구성과 동시 입장을 둘러싸고도 세대 간 인식 차가 드러났죠.

“이명박·박근혜 정부 10년간 남북관계가 단절됐고, 북한에 대해서도 숙청 등 부정적 내용이 끊임없이 보도됐어요. 그래서인지 젊은층의 반북(反北)의식이 강한 것 같아요. 북한과 교류하면, 우리도 힘든데 또 퍼주기만 하는 것 아니냐는 박탈감이 있을 수 있죠. 북핵에 대해선 비판적으로 접근하되, 북한과의 관계 개선과 경제협력이 남한경제에 활로가 돼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해낼 수도 있다는 인식이 국민들 사이에서 높아져야 해요. 언론의 역할이 중요해요.”

-젊은층과 소통이 잘 되십니까.

“노력하고 있어요. 주로 페이스북, 트위터 같은 SNS가 통로죠.”

문재인 정부를 흔히 ‘노무현 정부 2기’라고도 한다. 참여정부의 중심이던 ‘386’은 이제 ‘586’이 되어 정치의 중심부로 다시 소환됐다.

-참여정부에 들어간 386들의 시행착오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당시에 있었죠. 참여정부에서 일한 386들의 경험과 시행착오가 지금 정치를 하는 데 도움이 되는 부분들이 있나요.

“참여정부에서의 경험이 현 정부의 국정운영에 여러모로 도움 되죠. 가령 참여정부 때는 청와대와 국정을 담당하는 세력이 관료들에게 너무 휘둘리는 게 아니냐는 비판도 많이 받았어요. 하지만 현 정부는 관료들이 어떤 특성을 갖고 있는지 참여정부에서의 경험을 통해 이미 파악했기 때문에 그들을 일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아요. 또 권력기관 개혁이 실패했을 때의 후과를 우리가 뼈저리게 경험했어요. 그래서 중요한 개혁은 정권 초기 힘이 있을 때 많이 진전시켜놔야 한다는 것을 문 대통령님이 실제로 몸으로 보여주고 계신 것이죠.”

권력기관 개혁 실패의 ‘후과’라는 말이 의미심장하다. 2009년 5월 노 전 대통령의 서거 배후에는 이명박(MB) 정부의 국정원과 국세청, 검찰이 있었음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게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의 단초가 된 국세청의 태광실업 표적 세무조사(2008년)다.

-검찰, 국세청, 국정원 개혁의 절박성을 누구보다 참담하게 절감했기 때문에 문 대통령이 개혁에 속도를 낸다는 얘기로 들려요.

“참여정부 때는 로드맵을 짜고 제도화하는 데 2~3년씩 걸렸어요. 그러다 보니 정권 중반을 넘겨서 관련 법안을 국회에서 통과시켜야 하는데 여소야대에다 국민 지지도도 떨어져 있어 개혁을 추진할 동력이 부족했죠. 우리나라 국회나 정치권은 민주적인 지도자가 일을 해나가기엔 갈등과 대립이 너무 심해요. 그것을 돌파할 수 있는 국민적 지지가 없으면 개혁 추진이 어렵다는 것을 우리는 참여정부 때 뼈저리게 느꼈죠. 그 마음이 지금 추진 중인 정부 개혁에 투영돼 있다고 봐야죠.”

-MB 관련 비리 수사에 대해 야당에서는 정치보복이라고 해요.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을 지켜본 사람으로서 누구보다 고통스럽게 다가올 말인 것 같은데….

“태광실업 세무조사와 같은 일도 불완전한 권력기관의 개혁과 민주주의에 대한 아무런 철학이 없는 정치 지도자가 결합해 만든 최악의 결과예요. 적폐청산은 불공정한 특권이라는 잘못된 구조와 관행을 바로잡는 일입니다. 그러려면 과거의 잘못은 밝히고, 그 잘못에 따라 책임질 사람은 책임지게 해야 재발하지 않죠.”

참여정부에서 대통령을 보좌하고 문 대통령 당선을 도운 측근인, 이른바 ‘3철’ 중 전해철 의원을 제외한 이호철 전 민정수석과 양정철 전 홍보기획비서관(양비)은 문 정부에서 어떤 공직도 맡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양비와 이호철 전 비서관은 언제 정치에 복귀할까요.

“노 대통령님 때부터 함께한 문 대통령님 주변 참모들의 특성 중 하나는 자기가 뭐가 되느냐가 아니라, 문 대통령님의 성공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거예요. 노 대통령님의 서거를 지켜봤으니까요. 양비는 대선이 끝나자마자 문 대통령님과 사적으로 가깝고 (대선기간) 열심히 뛴 분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나를 포함해 우리가 뒤로 빠져줘야 대통령이 성공할 수 있다’고 설득했어요. 그것을 자기의 역할로 생각한 사람이에요. 그분들이 공직에 나가는 순간 특혜라는 공격을 받을 테니까요. 이호철 선배는 기본적으로 자유인이에요. 두 분 다 문 정부 동안에는 같은 입장을 견지할 것으로 봐요.”

-대통령이 외롭겠어요.

“외로울 겨를이 없으실 거예요. 청와대 진용이 잘 꾸려진 것 같아요. 노 대통령님이나 문 대통령님은 시스템에 의한 운용을 중요하게 생각하세요. 예를 들어 권력구조 개혁이라면 주요 협의 상대는 민정수석이 되는 것이고 여러가지 정부 정책 등은 정책실장과 각 수석들, 장관들이죠. 토론을 통해 의견을 만들어가기 때문에 박 정부 때처럼 청와대의 모든 것을 상의하는 최순실 같은 사람은 없어요(웃음). 박 정부와는 격이 다르죠.”

-임종석 비서실장이 청와대에서 역할을 잘하고 있다고 보십니까.

“시행착오가 없을 수야 없겠죠. 비서실장의 제일 중요한 역할은 청와대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거예요. 연세 많으신 정책실장과 안보실장이 계시는데 젊은 비서실장이 그분들과 호흡을 맞춰 각자의 역할을 잘해내야 해요. 그런 면에서 임 실장은 탁월해요. 청와대 내부에서 어떤 갈등이나 잡음이 문제된 적이 없었잖아요.”

-대통령의 탁현민 행정관에 대한 애정이 커서, 실세 왕행정관이라는 말까지 돌던데요.

“탁 행정관의 역할이 필요한 거죠. 문 대통령님이 과거 청와대도 경험해봤고 지금 청와대 구조도 그렇고, 기존 청와대 문화가 끊임없이 대통령을 국민들로부터 고립시키잖아요. 어떻게든 극복해보고 싶어서 ‘광화문 대통령 시대’를 열겠다고 공약하신 거예요. 또 아주 일상적인 대통령 행사나 여러 일정도 국민과 함께 하고 싶어 하세요. (탁 행정관은) 그 일을 누구보다 잘할 사람이에요. 탁 행정관을 두고 종전 여러가지 문제와 상황들이 불거졌지만 본인이 해명할 것은 해명하고 사과할 것은 사과했으니, 대통령님이 쓰시겠다고 하면 인사권을 그분에게 맡겨두는 게 맞지 않을까요.”

-김 의원이 ‘주군’을 잘 만나서 국회의원도 하고, 경남지사 차출 이야기도 나오는 것이라는 시각도 있어요.

“하하하… 일리 있는 얘기예요. 어떤 주군과 일하는가가 참모로서는 중요하죠. 제게는 세 가지 선택기준이 있어요. 역사의식에 기반을 둔 시대정신과 민주주의에 대한 확고한 철학, 그리고 공감과 소통능력이에요. 어려운 사람을 보면 자기의 일로 느낄 수 있는 측은지심이 정치인의 기본인데 이 세 가지 자질을 갖춘 두 대통령님을 모시고 함께 일했어요.”

지방선거, 부산·경남서 승리 중요 출마 판단기준은 문 정부의 성공

요즘 김 의원을 둘러싼 정치권의 최대 관심은 6·3 지방선거에 경남지사로 출마하느냐 여부다. ‘초선이 의원직을 중도 사퇴하고 지방선거에 나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원칙론만 반복할 뿐, 공식적 입장 표명은 미루고 있기 때문이다.

-대체 언제 결정할 생각인가요.

“원칙적 생각엔 변함이 없어요. 다만 부산·경남이 워낙 중요한 지역이니까 중앙당이나 지역에 계신 분들이 2~3월 지나고 적절한 시기에 선거를 어떻게 치를 것인지 의견을 모으지 않겠어요?”

-마음은 출마하고 싶지 않다는 건가요.

“판단 기준은 어떤 선택이 문 정부에 도움이 되느냐예요. 지방선거 이후부터 다음 총선까지가 국정운영 2기인데, 이 2기에 권력기관 개혁 등 국회 통과를 거쳐야 하는 여러 개혁 과제들이 모여 있어요. 야당과의 협치를 통해 법안을 통과시켜 문 정부의 개혁을 공고히 만들어나가는 게 정권 성공에 대단히 중요한 과제예요. 당내협치 부대표의원인 저의 역할이 중요하죠. 한편으론 YS(김영삼 전 대통령)의 ‘3당 합당’ 이후 보수의 철옹성이던 부산·경남에서의 승리도 중요해요. 출마 여부는 함께 논의하고 결정할 생각이에요.”

김 의원은 1967년 경남 고성 출생으로 진주에서 초·중·고교를 다녔다. 서울대 인류학과 진학 후 총학생회 학술부장을 맡아 학생운동에 뛰어들었고, 3번 구속됐다. 졸업 후 1년가량 월간지 기자생활을 하다가 1994년 국회의원 정책비서로 정치권에 첫발을 들여놓았다.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 선거대책위원회를 시작으로 노무현 당선자 비서실, 대통령직인수위를 거쳐 청와대 국정상황실 행정관, 연설기획 비서관을 지냈다. 2008년 2월 노 대통령 퇴임과 함께 봉하마을로 내려가 마지막까지 노 전 대통령의 곁을 지켰다.

학자 꿈꿨지만 대학 가서 깨져 광주항쟁 비디오 본 게 결정적 공정·공생, 공평·정의가 정치 목표

-원래 꿈은 뭐였나요.

“부모님은 법관이 되기를 원하셨지만 저는 인류학에 관심이 많았어요. 시대적 상황만 아니면 학자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그 꿈이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산산조각 났어요. 광주항쟁 비디오를 본 게 결정적이었어요. 제가 침묵하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것이고, 그러면 나의 아이들이 똑같은 고통을 겪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그것은 제가 아버지로서 죄를 짓는 일이라고 생각해 가만히 있을 수 없었어요.”

은퇴하면 봉하마을로 내려가서 노무현 대통령과 하려던 일 할 것

-노 전 대통령이 퇴임 후 봉하로 같이 내려가자고 했을 때 바로 답하지 못했다고 하던데….

“선배들과 상의는 했죠. 보통은 대통령이 퇴임하면 서울 사저로 가는데, 노 대통령님은 지방으로 가시는 것이었으니까요. 선배들은 만류했어요. 40대 초반에 봉하로 가기보다는, 서울에 남아 정치적으로 해야 할 일을 하는 게 좋지 않겠느냐는 이유였죠. 하지만 50대에는 시골로 가겠다는 로망이 좀 앞당겨진 것이라고 저는 생각하기로 했어요. 무엇보다 대통령님과 함께한다는 게 큰 메리트였고요. 집사람이나 아이들도 좋아했어요.”

-노 전 대통령 서거 후에도 봉하에 남아 유지를 받드는 일을 했는데, 김 의원이 빠진 봉하마을 프로젝트는 어떻게 되는 건가요.

“지금 노무현재단과 봉하재단에서 기념사업을 하고 있고 노무현대통령기념관도 올해 착공해요. 친환경 생태마을 가꾸기는 영농법인 봉하마을이라는 법인이 만들어져서 이어가고 있고요. 봉하마을 현지에 대통령님 유지를 이어가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요. 저도 비록 바깥에 나와있지만 필요한 일들은 돕고 있고요. 제가 정치를 언제까지 할지 모르지만 은퇴하면 돌아가서 대통령님과 하려 했던 일들을 할 겁니다.”

-권양숙 여사는 어떻게 지내세요.

“사저로부터 마을쪽으로 50m 안쪽에 사택을 새로 지어 이사하신 후 많이 밝아지셨어요. 늘 빨간 목장갑을 끼고 정원을 가꾸고 집을 손대시느라 분주하세요. 혼자 계시긴 한데, 딸도 자주 오가고 건호씨도 왔다갔다하고요. 가만히 놔두면 되는데 심심하면 노 대통령님을 공격하는 사람들 때문에 힘드신 거죠.”

그는 말할 때 손짓을 크게 하는 습관이 있었고, 말은 논리정연했다.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 부인 김정순씨(51)가 찻집으로 찾아왔다. 다음 일정이 부부동반 모임이라고 했다. 부인 김씨는 집에서 가져온 백설기를 접시에 담아 남편과 기자 앞에 슬며시 내놨다.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노 전 대통령의 고향 김해를 지켜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정치를 시작했다고 했는데, 정치인으로서 어젠다는 뭐냐’고. 그는 “공존과 공생, 공평과 정의가 구현되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박주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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