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과 싸우다가 '괴물'이 된 한국 남자 이야기

이희동 입력 2018. 2. 23.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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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오찬호의 <그 남자는 왜 이상해졌을까?> 를 읽고

[오마이뉴스 글:이희동, 편집:최은경]

지난달 29일 서지현 검사가 <JTBC 뉴스룸>에 나와 성추행과 관련된 인터뷰를 할 때에도 그것은 다른 나라 이야기인 줄 알았다. 검찰이라는 조직이 워낙에 권위적이고 상명하복이 심하니 으레 그러려니 했다. 어쨌든 미투 운동은 나와는 상관없겠거니.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나의 페이스북 타임라인이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마을공동체와 사회적경제와 관련되어 있던 투게더광산나눔문화재단 강위원 상임이사의 성추행 사건이 다시금 재조명 되면서부터였다. 90년대 학생운동을 하면서 누구보다 민주주의를 많이 외쳤을 그가 성추행을 했다는 사실에 많은 사람들이 절망하고 분노했다.

그러더니 며칠 전에는 미투 운동의 여파가 아내에게까지 미쳤다. 자신이 속해 있던 연극계의 대표적인 연출가 이윤택씨의 성추행이 드러나면서부터였다. 아내는 괴로워했다. 자신의 선후배가 연관되어 있는 그 상황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며 자괴감을 토로했다. 박근혜 정부 당시 블랙리스트에 포함되고 세월호 관련된 연극도 열심히 했던 그가 또 다른 괴물이었다는 사실에 아내는 큰 충격을 받은 듯했다.

왕년의 민주투사도, 시대를 대표하는 연출가도 미투 운동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우리 사회. 스스로에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과연 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성추행을 했던 사실은 없었던가? 가부장적인 사회 분위기에 휩쓸려 별 생각 없이 아무렇지도 않게 약자의 가슴에 대못을 박은 적은 없었던가?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예전에 봤던 책 한 권이 떠올랐다. 오찬호 사회학자가 쓴 <그 남자는 왜 이상해졌을까>는 책이었다. 저자는 글에서 한국 남성들이 일상에서 어떻게 괴물이 되어 가는지, 그리고 그것이 왜 우리 모두를 힘들게 하는지 보여준다. 

군대, 괴물의 탄생

 그 남자는 왜 이상해졌을까?
ⓒ 동양북스
저자는 한국의 남성을 이야기하며 가장 먼저 군대를 언급한다. 한국 사회가 마초적이고 가부장적인 것에는 군대의 역할이 매우 결정적이라고 지적한다. 군대에서 다시금 '남성다움'을 배우고, 그 '남성다움'이 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가 소제목으로 올린 군대와 관련된 글귀만 봐도 우리는 그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내가 배워야 할 건 군대에서 다 배웠다', '군대에서 배운 대로만 하면 돼', '자네, 군대는 갔다 왔나?', '감히 너희가 군대를 아느냐?', '군대니까 어쩔 수 없다?'

과연 병역의 의무를 다한 대한민국 남성 중 저 질문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이가 얼마나 될까? 우리는 남자들이 군대를 갔다 오면 '사람'이 된다고 이야기하지만, 그것은 사람이 아니라 '괴물'일 가능성이 높다. 나보다 약한 사람을 봐도 측은지심을 느끼지 못한 채, 맹목적으로 남성성을 강조하는 괴물이다.

"군대의 논리에 대한 거부감을 겉으로 드러냈다가 몇 번의 집단적 폭력을 경험한 이들이 적응을 결심하면 무서워진다. 약한 모습 다시 보이면 끝장날 수 있다고 마음먹었는지 자신을 괴롭혔던 사람보다 더 악질적으로 변한다. 괴물의 탄생이다." ? 76p

"군대를 거쳐 가는 이들은 세상 이치의 '역', 즉 오답을 정답으로 배운다. 용서를 구하는 자가 없는 곳에서의 피해자는 가해자 응징이 불가능한 분노를 본인이 가해자가 되면서 보상 받는다." ? 76p

군대라는 조직에 적응하기 위해 차라리 괴물이 되어 버리는 사람들. 혹자들은 이 괴물들이 개인의 문제일 뿐이라며, 군대에는 문제가 없다고 하지만 이는 비겁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결국 조직의 문제이며, 구조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소원수리'를 하고 정신교육을 하면 뭐하는가. 여전히 한국 군대는 사회에서 고립된 섬이며, 그 안에서 장군은 사병을 노예 부리듯 취급하기 일쑤다. 아직까지 전혀 변하지 않은 우리의 군대문화. 그러니 남성들이 군대에서 남자다움을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괴물로 재탄생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당연히 해결될 문제가 좀처럼 뿌리 뽑히지 않는 이유는 '명백한 잘못'을 주변에서 '용인'해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군대 내 폭력 문제는 '애초에 폭력적 성질을 타고난' 아무개의 성격 파탄이 문제가 아니라 이를 막지 못한 '구조'에 그 책임을 물어야 마땅하다." ? 55p

"폭력이 즉각적으로 제어되지 않는다면, 혹은 발생했더라도 합리적으로 처벌되지 않는다면, 나아가 시간이 지나서 이를 '향수'의 차원에서 긍정해버린다면 처음의 폭력은 '그 이상의 폭력'으로 진화한다." - 56p

괴물을 잉태하는 한국 사회

이와 같은 괴물은 군대에만 존재하지 않다. 괴물은 군대처럼 폐쇄적이고 수직적인 조직에서 쉽게 잉태된다.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이 당연시 되고, 개인보다 집단이 중시되다 보면 타인의 고통, 특히 약자에 대한 폭력이 쉽게 용인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아직 우리 사회에 그런 조직이 많다는 사실이다. 군사정부 하에서 압축 성장을 이룬 만큼 한국은 전형적인 병영국가로서 사회 전체가 군대문화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여전히 상명하복이 중요시되며, 개인의 다른 의견은 제시하기 어렵다. 남성들은 군대를 제대해도 여전히 남성다움을 강요받으며 '개저씨'로 진화해간다.

"개인들 중 사회적 콤플렉스가 심할수록 이러한 '집단의 권위'에 주체할 수 없는 파도처럼 휩쓸려 간다. 이들은 생애 처음으로 집단 속에서 뿌듯함을 느끼며 더 나아가 자신의 존재 가치를 인정해준 이 집단을 지키기 위해 평소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과감한 행동을 서슴없이 보여준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공동체의 유지', '공동체의 질서'라는 이름으로 정당화 한다." - 112p

"한국 사회에서 남자들은 '폭력을 참아가면서', '수치심을 느끼면서' 남성이 되어간다. 그래서 한국에서 말하는 '진짜 남자'는 폭력에 둔감하다." ? 115p
 이윤택 전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이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30스튜디오에서 열린 성추행 사실에 대한 사과 기자회견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다.
ⓒ 이정민
이는 괴물에 맞서 투쟁하던 조직도 예외가 아니다. 아니, 오히려 괴물이 탄생할 가능성이 높다. 괴물과 싸우면서 괴물을 닮아가며, 괴물과의 싸움을 명분으로 조직 내의 다양성을 탄압하기 때문이다. 과거 80년대 운동권이 그랬고, 최근 불거지고 있는 연희단거리패 역시 같은 맥락이다.

외부적으로는 진보적인 이야기를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그 누구보다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인 인물들. 그들은 이 시대가 만들어낸 괴물들로서, 최근 일어나고 있는 미투 운동은 바로 이와 같은 괴물들에 대한 반발이다. 사회가 민주화되면서 오랫동안 쌓여있던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인 적폐들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이밖에도 다양한 사례를 들어 대한민국 남성들이 얼마나 마초적이고 가부장적인지 증명한다. 명절이 되면 가부장이 되고, 예쁜 여자 앞에서만 초능력을 발휘하며, 운전 중에 '김 여사'만 발견하면 거품을 무는 남성들의 이야기. 하나같이 대한민국 남성들의 보편적인 이야기이니만큼 부끄러움은 나의 몫이다. 

부디 많은 남성들이 이 책을 통해 자신을 되돌아보길 바란다. 미투 운동은 여성만의 것이 아니라 가부장 사회에서 같이 힘들어 하고 있는 우리 모두를 위한 운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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