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워치] 그날 흘렸던 나의 눈물은 늙지 않았다..성폭력에 저항, 사회의 변화를 요구하다

김민정 2018. 2. 23.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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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50세대의 '늦은 미투' 왜]
예전엔 조직서 생존 우려 적당히 함구했지만
시대의 변화로 '용기 있는 고백' 반향 일으켜
상존하는 '사회의 성차별'에 적극 대응 나서
[서울경제] “회식하면 노래방 가는 게 코스였죠. 노래 부르고 탬버린 흔드는 게 일이었어요. ‘도우미들 노래해 봐’라는 제 귀를 의심할 만한 말도 ‘윗분’들로부터 제법 들었죠. 한번은 인상 쓰며 불쾌한 감정을 내비쳤더니 ‘무슨 일 있느냐’고 되묻더군요. 본인이 내뱉은 말이 뭐가 문제인지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던 거죠. 그게 10여년 전 일이네요.” (중소 제조기업에 다니다 퇴사한 박윤주(가명·41)씨)

“불쾌한 신체접촉이 많았죠. 격려한답시고 옆에 앉은 제 허벅지를 툭툭 친다거나 하는 행위 같은 거죠. 반복되는 불쾌함에도 제대로 얘기 한번 못했어요. 정색하고 말하면 ‘왜 그리 예민하냐’는 반응이 당연히 뒤따르던 때였죠. ‘예민한 게 아니라 하지 말아야 하는 걸 얘기하는 거’라고 지금이라면 맞받아칠 용기라도 있었을 텐데, 그땐 혼자서 불쾌한 감정을 삭히는 게 다반사였죠.” (중견기업 관리자급 직원 허인혜(가명·47)씨)

불과 20여년 전 ‘성희롱’이라는 단어 자체조차 생소했던 시절, 조직 내 불합리한 처사도 적당히 수용하고 숨죽여야 했던 4050세대 여성들이 당당히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들은 사회 전방위로 퍼지고 있는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운동의 구심점이 됐다. 획일적 권위주의와 남성 중심 문화가 깊숙이 자리 잡았던 과거에는 조직에서 살아남기 위해 ‘적당한 함구’가 이들에게는 필수 덕목(?)이었다.

“그 ‘적당한 함구’가 결국 스스로 방관자가 됐다는 것 아니냐”는 일각의 일침도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현상은 “이제는 변했고, 더 변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대한 공감대 형성이다. 조직 내 수적 열세도 이전보다는 나아졌고 사회적 지위도 어느 정도 확보한 이들은 이제 자신의 목소리가 더 이상 공허한 메아리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반향을 일으킬 만한 지지와 자신감을 등에 업고 사회의 변화를 요구하게 된 것이다.

개인 간에 해결해야 할 사적 문제로 치부됐던 성적 발언과 불쾌한 행동이 법적 소송까지 가능한 사회문제라는 인식을 심어준 것은 겨우 24년밖에 되지 않았다. 한국 법원에서 최초의 성희롱 판례가 나온 것은 지난 1994년 4월. 서울대 화학과 실험실에서 1년간 계약직으로 근무하던 우모 조교는 관리책임자인 신모 교수로부터 ‘불필요하거나 난처한’ 신체접촉을 당하거나 성적으로 불쾌한 발언을 계속해 들어온 것에 항의했다가 재임용 대상에서 제외됐다. 이에 우씨는 담당 교수와 서울대 총장, 대한민국을 피고로 5,000만원의 손해배상을 제기했다. 1심에서는 3,000만원의 배상 판결이 내려졌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성희롱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6년간의 긴 법정 소송 끝에 결국 최종 배상금액 500만원이라는 판결이 내려졌다. 우 조교 사건은 상사에 의한 여직원 성희롱을 인권침해이자 처벌이 뒤따르는 범죄로 규정한 첫 판례였다.

당시 우씨는 1심 재판을 앞두고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이 사회의 마지막 보루로 여겨지는 대학에서조차 그런 일이 일어나는데 다른 어딘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나는 내가 어떤 직업을 얻어도 성희롱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할 거라는 생각을 했다. (중략) 그래서 나는 성희롱과 정면대결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나의 각오와 결의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

우씨의 의미 있는 행보 이후 시대는 변했고 인식의 변화는 미약하게나마 일어났다. 하지만 ‘만만치 않은 상대’에 대한 성범죄 피해자의 용기 있는 고백은 생각만큼 활발하게 이어지지 못했다. 여전히 사회 전반의 성 관념에는 성차별적 요소가 내재돼 있었고 권력의 요직을 남성들이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개인의 노력으로 불합리를 바로잡고 벽을 허물기에는 부딪히는 장벽이 너무도 공고했다.

매출 200억원대의 정보기술(IT)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김미숙(50) 대표 역시 ‘미투’ 운동 확산을 보면서 15년 전 기억을 떠올렸다. 2000년대 초반 경제가 살아나면서 벤처캐피털(VC) 회사들이 몰려 있던 서울 강남은 불야성이었다.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인적 네트워크 쌓기가 활발했고 네트워크의 연결고리는 주로 저녁 자리에서 만들어졌다. 청년 사업가로 당당하게 나간 자리였지만 밤새 이어지는 술자리에서 남성 투자자들과 짝지어 춤을 춰야만 했다. 허리를 감싸는 불쾌한 행동에도 아무 말을 못했다. 김 대표는 “투자자와 창업자 간 관계는 동등하기 어렵다”며 “여성 창업자는 투자자와 창업자 대부분이 남성인 환경에서 이중으로 성희롱을 참아내야만 했다”고 털어놓았다.

실제로 직장여성 중 70% 이상이 한 번 이상의 성희롱 피해를 경험하고 있다는 실태조사가 해마다 발표되고 있다. 그러나 누구도 자신의 피해를 선뜻 알리지 못했다.

지난해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직장인 1,150명을 대상으로 한 성희롱 관련 연구에서도 이러한 사실은 잘 드러난다. 성폭력과 성적 언동을 포함한 성희롱 피해를 겪은 후 대처한 조치를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54%가 “특별한 조처를 하지 않고 내버려뒀다”고 답했다. “특별한 조처를 하지 않고 내버려뒀다”는 응답자들이 밝힌 이유의 45.6%가 “상대와의 관계를 생각해서”였다. 또 이유의 36.3%는 “대응을 해도 별로 달라질 것 같지 않아서”, 30.6%는 “신고하면 직장에서 불이익을 받을 것 같아서”라고 답했다. 진형혜 한국여성변호사회 사무총장은 “피해자의 뒤늦은 고백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며 “조직이 나를 끝까지 보호해주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과 체념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물론 사회 일선에서 활동하고 있는 4050세대 여성 사회인들은 이제 ‘적당한 함구’가 아닌 불합리를 개선하기 위해 목소리를 당당히 내야 할 때라고 입을 모은다. 진 사무총장은 “가해자의 범죄 강도를 높이는 것은 침묵과 방관”이라며 “이는 곧 가해자에게 권력·상하 지위를 피해자가 결코 거스르지 못할 것이라는 잘못된 자신감을 심어주는 격”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잇따르는 뒤늦은 고백이 고백으로 그치지 않도록 불합리를 바로잡고 사회가 계단식 상승을 이뤄낼 수 있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민정·백주연기자 jeo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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