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로사의 신콜렉터]영화 '다운사이징' -크기가 작아진 인간, 그 욕망도 작아졌을까

이로사 칼럼니스트 2018. 2. 23. 17:09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경향신문] 수년 전부터 과학자들은 지구의 지질시대를 ‘인류세’로 새롭게 명명할 것인지 논의 중이다. 이전까지 지구의 지질시대는 소행성 충돌, 화산 분출 등 지구 시스템에 명백하고 지속적인 지질학적 변화를 일으켜 종의 멸종을 불러온 사건을 기준으로 분류됐다. 현재는 신생대의 마지막 시기인 홀로세가 1만1000년째 진행 중이다. ‘인류세’는 이제 인류 그 자체를 지질학의 동인으로 이해해야 할 때가 왔다는 주장이다. 이전에 거대한 화산 폭발과 운석 충돌을 그렇게 이해했던 것처럼.

영화 <다운사이징>의 한 장면. 꿈을 접고 고향으로 돌아와 지루한 삶을 살던 폴(맷 데이먼)은 ‘다운사이징’한 동창을 만난다.

이것은 심오하고 문제적인 이행이다. 인류 최대의 적은 인류이며, 인류는 다름 아닌 ‘생성 중인 화석’으로서 자신을 직시해야 하는 중대한 시점에 와 있는 것이다. 이대로라면 지구의 여섯 번째 대량멸종이 진행될 것이며, 인류라고 멸종을 피할 방법은 없다.

영화 <다운사이징>은 현재 재앙의 원인인 인구 과잉을 해결하기 위한 “인도적이고 실용적이며 모두에게 적용 가능한 유일한 해결책”으로 ‘생체축소술’을 제시한다. 2744분의 1 비율로 인간을 ‘다운사이징’하는 것이다. 이 기술을 적용하면 180㎝의 사람이 12.9㎝로 줄어든다. 일부 어패류를 제외한 거의 모든 동식물에 시술할 수 있고 어떤 부작용도 없다. 작아진 인간은 더 적은 에너지와 자원을 사용하고 적은 폐기물을 배출할 것이며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현저히 줄어들 것이다. 한정된 땅에서 한정된 자원으로 살아가야 하는 인간에게 이보다 야심차고 간단한 해결책이 있을까?

■유토피아는 없다

물론 복잡한 현실에서 새로운 기술이 적용되는 과정은 그렇게 간단치 않다. 기술을 개발한 과학자는 지구와 환경을 위한다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현실적으로 사람들을 다운사이징 시술로 끌어들이는 동력은 그런 게 아니다.

주인공 폴 사프라넥(맷 데이먼)은 한때 명문 의대에 다녔지만 병환 중인 노모를 돌보느라 고향으로 돌아와 정육공장에서 작업치료사 일을 하고 있다. 여전히 자신이 태어난 오래된 집에서 아내와 함께 살고 있는 그는 줄곧 일했지만 이제 막 학자금 대출을 갚았을 뿐이다. 새집으로 이사하기 위해 신청한 대출은 거절당한다. 그에게 ‘다운사이징’ 시술은 인생을 바꿀 획기적인 기회처럼 느껴진다. 동창회에서 만난, 이미 다운사이징 시술로 소인이 된 친구는 과자 상자에 걸터앉아 폴에게 말한다.

“다운사이징은 인생을 리셋할 수 있는 기회야. 경제적 부담이 사라지는 거지. 우리 부부는 지금 왕족처럼 산다고.”

말하자면 실제로 많은 이들을 ‘다운사이징’의 세계로 이끄는 것은 경제적인 이유다. 사이즈는 상대적인 것이다. 굳이 내가 가진 재화를 늘리려 애쓸 필요가 없다. 간단히 내가 작아지기만 하면, 훨씬 더 크게 살 수 있다. 300평짜리 대저택을 6만3000달러(약 6800만원)면 구입할 수 있는 세계, 알레르기 방지에 플래티넘 세팅 다이아몬드 팔찌·귀걸이·목걸이 세트가 83달러(약 9만원)밖에 안되는 세계, 15만달러(약 1억6000만원)의 자산이 1250만달러(약 135억원)로 뻥튀기되는 세계가 눈앞에 있다. 제 몸을 작게 만들지 못할 이유가 뭐란 말인가?

다운사이징한 사람들의 도시로 가는 이동수단.

그렇게 폴이 다운사이징을 감행해 입주한 곳은 소인 도시 중에서도 최고급 서비스를 제공하는 ‘레저랜드’다. 이웃이 된 세르비아 출신의 고급사치품 밀수업자 두샨(크리스토프 왈츠)의 말은 소인 도시에 입주하는 이들의 욕망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다운사이징 붐으로 전 세계에 소인 도시가 생기는 걸 보며 사업의 기회가 온 걸 알았지. 그들이 왜 작아지려는 걸까 곰곰이 생각해봤어. 지구와 환경을 위해서? 웃기지 말라고 해. 부자들만 누리던 걸 가지려고 그러는 거야.”

소인 세계는 현실 자본주의 사회의 문제를 그대로 갖고 있다. 폴의 아내는 함께 시술을 받다가 도망쳐 소인이 되기를 거부하고, 폴은 홀로 소인이 된 채 이혼을 하고 관계를 잃은 고독한 삶을 산다. 세계적으로 다운사이징 기술은 악용돼 이스라엘인이 팔레스타인인을, 아프리카 독재자들은 반대자를 소인으로 만들어버린다. 미국에서는 다운사이징으로 불법이민자들과 잠재적 테러리스트들이 미국 국경을 불법적으로 넘어 입국하는 것이 용이해졌음을 경고하고 나선다. 일부 사람들은 소인들이 세금도 적게 내면서 돈과 일자리까지 빼앗는다며 보통 사람들과 똑같은 권리를 누려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던 중 폴은 베트남 정부에 의해 강제 ‘다운사이징’되어 추방된, 베트남의 환경운동가이자 반체제 인사 녹 란 트란(홍차우)을 만나 소인 세계에도 여전히 존재하는 터널 밖 빈민의 삶을 마주하고, 가치관의 변화를 겪는다(영화가 그 과정을 잘 연출해냈느냐의 문제는 차치한다).

■가능한 최선의 세계

<다운사이징>의 소인 세계를 보며 유재영의 단편소설 <아주 작은 세계>를 떠올렸다. 여기에도 비슷하게 지구 환경을 위해 생체를 10억분의 1로 축소하는 ‘더 작은 세계 프로젝트’가 등장한다. 이것은 <다운사이징>의 소인 세계보다 훨씬 더 작은 세계다.

이로사 칼럼니스트

우주 개발사 갈락시아스에서 청소부로 일하는 주인공 구드욘센은 아내 덕과 함께 갈락시아스에서 진행하는 ‘더 작은 세계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로 한다. 다만 자금이 부족해 아내 덕과 아이가 먼저 그곳으로 간다. 10만명이 입주한 이 세계는 볼링공보다 작은 스노볼 형태로 회사 내 보관실 선반 위에 고요히 놓여 있다. 이후 갈락시아스는 다른 우주 개발 프로젝트로 눈을 돌리고 더 작은 세계 프로젝트는 중단된다. 스노볼의 세계는 잊혀질 위기에 처한다. 구드욘센은 덕과 아이가 살고 있는 스노볼을 구출해 회사를 빠져나온다. 그는 벌써 6~7년째 스노볼, 그러니까 “하나의 세계”를 애지중지 들고 다니며 돌보고, 그곳으로 들어갈 방법을 찾으며 폐허의 도시를 떠도는 중이다. 소설을 본 뒤 뇌리에 남는 것은, 신이 잊은 작은 세계를 고이 들고 다니는 무력한 한 인간의 이미지다. 그가 서 있는 현실의 공간 역시 아무리 쓸어도 탁자 위에 모래가 쌓이고, 철광석이나 석유로 술을 바꿔 먹는, 이미 신이 잊은 세계의 끝과 같은 곳이다.

구드욘센에게 스노볼의 안쪽은 보이지 않는다. 개발사는 그곳을 “모두가 꿈꾸던 유토피아” “최소한의 크기로 최대 행복을 이룰 수 있는 곳”이라고 말했고, 그와 아내가 합일에 이른 삶 역시 레고 모듈러와 같은 한정된 세계에서의 ‘최소한의 삶’이었다. 그러나 그가 그토록 소중히 보살피는 이 작은 세계의 내부는 어쩌면 <다운사이징>에서처럼 현실의 모순이 그대로 반복되는 또 다른 지옥인지 모른다. 더구나 그가 포기하면 그 세계는 금방이라도 간단히 사라져버릴 것이다.

그가 그 작은 세계를 끝까지 지켜낼 수 있을지, 그곳으로 들어가는 방법을 찾아내 용케 아내와 아이를 되찾는다고 해서 그 세계가 지속가능한지, 그때도 지금의 구드욘센처럼 그곳을 잘 돌볼 ‘신’이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그럼 어쩌자는 것인가? 소설 속에서 시리아 난민들을 배에 싣는 일을 돕다가 승객들에게 가짜 구명조끼를 입히라는 지시를 거부한 뒤 브로커의 손가락을 자르고 나와버렸다는 빌리는 “(더 작은 세계 프로젝트에 참여할) 기회가 있었다면 어떻게 했겠나”라는 물음에 이렇게 답한다. “다를 거 있겠나. 여기 똑같이 앉아 있겠지.”

인간 삶의 지속은 세계의 지속을 전제로 하지만, 인간의 삶이 상실된다면 세계의 지속 역시 무의미하다. <다운사이징>에선 종말론을 믿는 소인 히피 공동체가 지구 환경이 안정될 때까지 수천년간 살 수 있는 지하공간으로 들어가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 것이 정말 해결책일 수 있을까? 폴이 “저 지하 공간 아래가 인류 생존의 유일한 기회”라며 그들을 따라가려 하자, 녹은 바깥에 있는 진짜 삶을 보라고 말한다(다만 이 베트남 여성은 내면이 없는 종이 인형처럼 보이며 타입화한 인종을 재현한 혐의가 짙은 인물이다).

신이 인간을 잊었다면, ‘심오하고 문제적인 이행’의 목격자인 인간은 지금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다. 문제는 ‘다운사이징’이 아닐 것이다. 결국 이 세계의 지속성 문제는 인간의 크기가 해결해주지 않을 테니까.

<이로사 칼럼니스트>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