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짓인 줄 알지만 어쩔 수 없다" 미국에 부는 '방탄 책가방' 열풍

박용필 기자 입력 2018. 2. 23.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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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미친 짓인 줄 알지만 어쩔 수 없다, 적어도 조금은 더 안심이 될테니…”

미국 마이애미에서 한 학부모가 자녀에게 ‘방탄 책가방’을 사주면서 22일(현지시간) 영국 BBC에 한 말이다. 이 학부모는 지난 14일 플로리다 남부 파크랜드에서 벌어진 총기 참사 소식을 접하고 나서 112달러(약 12만원)짜리 ‘방탄 책가방’을 8살 난 쌍둥이 자녀에게 사줬다.

쌍둥이는 이번주부터 방탄 소재 때문에 3㎏이 넘는 방탄 책가방을 메고 등하교를 하고 있다. 학부모는 “총기참사 소식을 접한 뒤 망설임 없이 구입했다”며 “내 아이에게도 비슷한 일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돼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었다”고 했다.

킴 졸시악 인스타그램

이는 유별난 사례가 아니다. 유명인들까지 구매에 동참하고 있다. 미국의 리얼리티쇼 스타 킴 졸시악은 최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자녀를 위해 구입한 방탄 책가방을 직접 소개했다. 이런 제품을 판매한 적이 없었던 플로리다의 대형 슈마마켓들의 물품 목록에는 이번주부터 방탄 책가방이 등장했다. 이미 팔고 있던 몇몇 상점들에선 물품이 동이 났다. 관련 제품을 생산·판매하는 회사 중 하나인 콜롬비아 ‘맥아머’사 미국 지사는 동이 난 재고를 아직까지 보충하지 못하고 있다.

방탄 책가방은 2012년 코네티컷주 샌디훅 초등학교에서 벌어진 총기난사 사건으로 6~7세 아동 20명과 어른 6명이 사망한 이후 등장했다. 맥아머 관계자는 “당초 아동 대상 제품은 만들지는 않았으나 해당 사건 이후 한 협력사의 제안으로 시판하게 됐다”고 했다. 제품은 성공적이었다. 플로리다주 22개 매장을 비롯해, 조지아, 텍사스, 캘리포니아, 뉴욕 등지에서 팔리고 있다.

방탄 책가방뿐 아니라 방탄 책가방과 세트를 이루는 ‘방탄 조끼’도 있다. 교사들을 위한 ‘방탄 서류가방’도 등장했다. 펼치면 방패로 사용이 가능한 방탄 서류가방은 “총기 난사 사건에서 교사들이 몸으로 아이들을 보호하는 것을 보고 생각해 낸 제품”이라고 맥아머 관계자는 설명했다.

방탄 배낭. 게티이미지코리아

그러나 이같은 제품들의 실제 효과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플로리다 국제대학 아동심리학과의 린제이 말로이 교수는 “이런 제품들이 불티나게 팔리는 이유에 대해 같은 엄마로써 이해는 되지만, 이 제품들이 실제로 죽음과 부상으로부터 아이들을 지켜줄 수 있다는 증거는 없다”고 했다.

말로이 교수는 또 관련 제품들이 아이들의 정서에 미칠 악영향도 우려했다. “이 책가방을 메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은 자신이 얼마나 안전에 취약한 상태인지를 떠올리고, 위협에 대한 과도한 걱정과 신경과민에 시달릴 수도 있다”고 했다.

총기 규제를 반대하는 진영에서조차 이 방탄 제품들은 고려대상이 아니다. 버지니아 대학의 청소년 폭력 통제 프로그램 책임자 듀이 코넬 교수는 “총기 참사를 막는 최선의 방법은 예방”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방탄 책가방’ 열풍이 부는 것에 대해 BBC는 “계속된 참사로 사람들은 미국의 예방 시스템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며 “일련의 (예방)실패를 목격한 미국의 학부모들은 이제 스스로, 실행 가능한 범위에서, 자녀들을 지키기 위해 무언가를 하기 시작한 것”이라고 했다.

<박용필 기자 phi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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