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절한 매세지와 '삐따기' 감성, 가수 강산에 한국 록에 한획을 긋다

홍장원 2018. 2. 23.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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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사춘기 가수 강산에

[스쿨 오브 락-46] 1963년생. 부산 출신의 모범생이던 그는 경희대 한의학과에 진학했을 정도로 공부를 잘했다. 한국 나이로 32세인 1993년, 30대의 나이에 데뷔한 그는 50대 중반이 넘은 지금도 여전히 젊고 자유분방한 이미지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요즘에는 방송에서 더 찾아볼 수 없은 인물. 가장 한국적인 록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가수 강산에가 주인공이다.

아직도 대중의 머릿속에는 '강산에'하면 떠오르는 몇 곡의 명곡들이 있다. 시작부터 그의 등장은 범상치 않았다. 1993년 '...라구요'라는 앨범 제목으로 데뷔하는 그는 동명의 타이틀곡으로 조용히 인기를 얻어간다. 실향민의 절절한 감정이 담겨있는 가사는 그의 가족 스토리가 담긴 것이다. 그의 고향은 거제시다. 문재인 대통령과 동향이다. 문 대통령의 부친 고(故) 문용형 씨는 함경남도 흥남 출신이다. 흥남시 공무원으로 남부러울 것 없이 살던 문씨는 한국전쟁 발발 이후 공산당에 들어오라는 압박을 견디다못한 문씨가 1950년 12월 흥남 철수 때 배를 타고 월남하는 길을 택하면서 거제에 정착한다.

강산에의 가족도 같은 경로로 거제에 들어왔다. 어린이였던 강산에는 그의 부모님으로 부터 이제는 갈수 없는 고향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의 얘기를 자주 접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가슴 깊히 아로새겨진 그리움의 정서는 시와 같은 가사로 표현되어 가수 강산에를 인기가수 반열로 이끈다.

강산에 1집

<라구요>
두만강 푸른물에 노젓는 뱃사공을 볼수는 없었지만
그 노래만은 너무 잘 아는건 내 아버지 레파토리
그 중에 십팔번이기 때문에 십팔번이기 때문에
고향 생각나실때면 소주가 필요하다 하시고
눈물로 지새우시던 내아버지
이렇게 얘기했죠 죽기전에
꼭 한번만이라도 가봤으면 좋겠구나 라구요

눈보라 휘날리는 바람찬 흥남부두 가보지는 못했지만
그 노래만은 너무 잘 아는건 내 어머니 레파토리
그 중에 십팔번이기 때문에 십팔번이기 때문에
남은 인생남았으면 얼마나 남았겠니 하시고
눈물로 지새우시던 내어머니
이렇게 얘기했죠 죽기전에
꼭 한번만이라도 가봤으면 좋겠구나 라구요

이 앨범에 실린 '할아버지와 수박', '예럴랄라' 등 노래도 적잖은 인기를 끌었다. 사실 음악은 그 나라의 정서를 가장 잘 표현할 때 빛을 발할 수 있는 점이 있다. 조국 아일랜드의 정서를 담아낸 '크랜베리스'나 가장 미국적인 감성으로 무장한 '이글스'가 아일랜드와 미국을 넘어 전 세계 지지를 받은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는 상투적인 문구가 허언이 아닐 수 있다는 얘기다.

'록'이라는 장르가 서구로부터 기인한 것이기 때문에 이전까지 한국 록은 서양 것을 잘 베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경우가 많았다. 영어로 가사를 쓰거나(이것이 잘못되었다는 얘기가 아니다), 사회 비판적인 가사를 꼭 써야 한다거나 하는 것들이다(필연적으로 당연한 얘기기도 하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말이 있듯이 뭔가를 잘하려면 일단 잘하는 사람의 것을 베껴야 한다).

강산에의 새 앨범은 한국 록이 서양의 콤플렉스를 벗어던진 첫 신호탄이기도 했다. 한국적인 정서를 담뿍 담아 노래해도 생경하지 않을 만큼 자신감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어딘지 모르게 판소리 느낌에 닿아 있는 강산에의 목소리는 이 같은 느낌을 더 극대화시키는 촉매제였다.

첫 앨범 성공에 자극받은 강산에는 바로 이듬해 두 번째 앨범을 낸다. 1994년, 한국 나이로 33세. 젊지만 마냥 어리다고 보기에는 힘든 나이였다. 도발적인 앨범 제목은 '나는 사춘기'. 사춘기의 감성으로 노래를 만들고 부르겠다는 강산에 의중이 담긴 타이틀이다. 한국 대표 '힐링송'으로 불리는 '넌 할 수 있어'가 담긴 바로 그 앨범이다.

<넌 할 수 있어>
후회하고 있다면 깨끗이 잊어버려 가위로 오려낸것 처럼 다 지난 일이야
후회하지 않는다면 소중하게 간직해 언젠가 웃으며 말할 수 있을 때까지
너를 둘러싼 그 모든 이유가 견딜수 없이 너무 힘들다 해도
너라면 할수 있을꺼야 할수가 있어
그게 바로 너야
굴하지 않는 보석같은 마음있으니

후략

후배 가수들 입을 통해 수없이 따라 불러지며 많은 이에게 꿈과 희망을 준 가사가 돋보인다. '굴하지 않은 보석 같은 마음'이란 표현은 지금 들어도 참신하고 감동적이다. 이 앨범에 실린 '아웃사이더'는 앨범 타이틀과 썩 대구를 이루는 곡이다. 강산에는 '넌 할 수 있어'에서 깨지고 부서지는 젊은이를 잔잔하게 위로하면서 한편으로 '아웃사이더'를 통해 더 가열차고 건방지게 도전하라고 청년들을 도발한다. 너희들은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는 충고였다.

<아웃사이더>
모자라고 부족하지만 변명하진 않겠어
가슴이 타오른다 달려가고 싶을뿐 그 누구도 막을 수는 없어

그 누구에게라도 등만은 보이고 싶질않아
하늘을 마음껏 훨훨 날으는 새 살아있다는 것이야

초대받지 못한 현실속에 넋두리만은 싫어
내게도 사랑이 너에게도 사랑이 그것만이 전부인거야
익숙해진 외로움도 의미를 주진 못해 이해를 바라진 않아 나는 나를 믿을뿐

이말한번 생각해봐 새장속의 새들이라면 이미 죽어 버린거야
이말한번 생각해봐 새장속의 새들이라면 이미 죽어 버린거야
아웃사이더 아웃사이더

후략

후렴구에 반복적으로 제시되는 '이말한번 생각해봐 새장속의 새들이라면 이미 죽어 버린거야'라는 가사는 큰 울림을 준다. 어느 시대에나 10·20대는 외롭고 힘들고 두렵고 방황하는 시기다. 하지만 그럼에도 새장 안으로 들어가 굴욕적으로 살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며 '삐딱하게 살 것'을 요구한다. 강산에 역시 한의학을 전공해 안락하게 살 수 있는 길을 스스로 버리고 30대가 넘어서 데뷔하는 늦깎이 가수 인생을 걸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젊은이로 살고 있다. '이해를 바라진 않아 나는 나를 믿을뿐'이란 가사에서는 세상 시선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신감과 내면의 충만함이 그대로 읽힌다. '스스로를 젊다'고 굳게 믿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긍정의 에너지다.

'아웃사이더'에서 느껴지는 강산에의 삐딱함은 2년 후에 나온 '삐따기(1996년)'란 앨범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전작인 '나는 사춘기'가 나온 1994년과 새 앨범이 나온 1996년 사이는 압축성장으로 이뤄진 한국 사회의 부조리함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형 사고가 2건이나 터졌다. 1994년 멀쩡하게 보였던 성수대교가 무너진 데 이어 1995년 삼풍백화점이 붕괴되는 참혹한 현실에 직면한다. 붕괴 직전까지 차가 다니고 사람들이 쇼핑하던 공간이 폭격을 맞은 것처럼 사라지는 상황에 한국 사회는 절망하고 분노했다. 당시 한국 사회가 느낀 충격이 새 앨범 '태극기'란 곡에 담겨 있다.

<태극기>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이고 있습니다
하늘 높이 아름답겐지는 몰라도
대한 독립 만세때 부터 펄럭이고 있습니다
오늘도 시청 앞에 걸린 저 태극기

삐딱하게 걸린 널 보고 있으니까
왠지 나를 보고 있는거도 같은데
우리 앞을 지나가는 저 많은 사람중에
왠지 우리와는 상관없는 소외감

나는 그래도 내가 만든 삐따기야
하지만 너는 우리가 만든 삐따기

바람이 부는대야 어쩔수 없겠지만
절대로 삼풍(三風)은 또 불지 않았으면

이비가 오는대야 어쩔 수 없겠지만
절대로 태우(太雨)는 또 오지 않았으면

여기서 나온 '삼풍'이 바로 삼풍백화점을 지칭하는 말이다. 책임론이 불거지는 전직 대통령의 이름을 가사에 넣기도 했다. 하지만 이 앨범은 1집과 2집만큼의 메가톤급 인기를 끌지는 못했다. 그러나 바로 다음 앨범에서 강산에 사상 최고로 히트에 성공한 곡이 나온다. 1998년 나온 앨범 '연어' 타이틀곡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이 주인공이다. 강에서 바다로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를 험난한 삶의 갈래로 비유한 이 곡은 적잖은 사람에게 위로를 줬다. 지금까지도 널리 불리는 강산에의 대표곡이다.

사실 강산에는 기술적인 측면에서 노래를 엄청나게 잘하는 가수는 아니다. 그가 가진 음역과 목소리는 발성의 기준으로 볼 때 성대를 고도로 훈련시켜 내는 형태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가장 한국적인 느낌을 잘 살리면서 메시지를 절절하게 전달하기로는 그의 목소리에 필적할 만한 상대를 찾기 힘들다. 가수 윤도현의 초기 목소리가 강산에와 비슷한 것 역시 우연이 아니다(물론 윤도현은 앨범이 나올수록 다채로운 목소리로 무장해 데뷔 초기와 노래를 부르는 방식이 다소 바뀌었다).

강산에의 추천곡은 앞서 거론한 대다수의 곡들이다. '라구요' '넌 할 수 있어' 등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만한 노래들이다. 강산에는 지금까지도 활발하게 현역 활동을 하고 있다. 1998년 앨범 '연어' 이후에도 2011년까지 라이브 앨범을 합쳐 5장의 앨범을 더 냈다. 그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언제나 위로가 된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도 '꼰대'느낌이 나지 않는 그만의 젊음, 호기심 넘쳐 보이는 장난스러운 웃음은 많은 이의 롤모델이다.

[홍장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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