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이 곧 '인류 進化의 조감도'

기자 2018. 2. 23. 11: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화석 증거로 복원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프리카누스의 얼굴(왼쪽)과 네안데르탈인을 복원한 얼굴. 인류 문명은 ‘얼굴의 문명’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다. 어떤 생명체도 인간의 얼굴처럼 다양한 정보를 주고받을 수 없다. 을유문화사 제공
여우는 긴 주둥이처럼 포유류의 특징이 잘 드러나는 얼굴을 가지고 있는 반면 인간은 여타 포유류와 구별되는 얼굴을 하고 있다. 침팬지는 포유류와 인간의 얼굴이 혼합된 특징이 나타난다.

얼굴은 인간을 어떻게 진화시켰는가 / 애덤 윌킨스 지음, 김민수 옮김 / 을유문화사

5억년전 척추동물 등장하며

얼굴 가진 생명체들 생겨나

두뇌·감각기관·신경체 모여

먹잇감 효율적으로 찾게 발달

인간 얼굴, 더욱 독특한 진화

두개골 커지며 주둥이 없어져

표정 통해서 섬세한 의사소통

고도화된 사회성… 種 차별화

“모든 얼굴 중에서 인간의 얼굴이 가장 특이하다.”

‘얼굴은 인간을 어떻게 진화시켰는가’에서 유전학자이자 진화생물학자인 저자 애덤 윌킨스가 말한다. 얼굴이란 무엇인가. 생물학적으로 볼 때, 얼굴은 “눈과 입이 있는, 동물 머리의 앞면”을 말한다. 먹이를 섭취하는 입이 있고, 시각과 후각과 미각을 담당하는 기관이 있음을 고려하면, 얼굴이란 본래 한 생명체가 먹이를 찾는 데 도움을 주는 각종 기관을 모아놓은 기관이다.

하지만 생명의 역사에서 얼굴은 특이한 현상에 속한다. 지구상에는 수많은 생명체가 있지만, 얼굴이 있는 생명체는 절지동물(갑각류와 곤충이 포함된다)과 척추동물(어류, 양서류, 파충류, 조류, 포유류가 포함된다)뿐이다. 저자는 지구의 역사에 얼굴이 등장한 분기점을 5억 년 전, 원시 척삭동물에서 턱뼈가 없는 작은 어류로 진화할 때, 즉 최초의 척추동물이 출현했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얼굴의 등장은 사냥과 관련이 깊다. 가만히 있으면서 또는 느리게 이동하면서 물을 빨아들여 필요한 영양분을 섭취하는 해삼이나 말미잘 같은 여과섭식 생물체와 달리, 초창기 척추동물들은 적극적으로 먹이를 찾아 나서는 데 적합한 기관들을 발현시킴으로써, 불리한 환경에서도 생존 확률을 높이는 데 성공했다. 움직이는 데 필요한 지느러미, 먹이를 삼키기에 적합한 입, 먹잇감을 효율적으로 찾아내는 감각기관, 이 감각기관에서 수집한 정보를 처리하는 발달된 신경계 등이다. 이러한 신경처리 시스템이 더 원활히 작동하려면, 감각기관이 가까이 모여야 하고 한가운데 두뇌가 위치하면 좋다. 이것이 바로 얼굴의 기본 구조다. 인간의 얼굴도 큰 차이는 없다. 이 기본형에 나중에 먹이를 처리하는 데 유능한 턱이 덧붙으면, 사소한 변화는 있을지언정 현재의 인간에 이르는 진화의 계통도가 사실상 완성된다.

그런데 얼굴에 대한 인간의 관심은 상상을 초월한다. 인류 문명을 ‘얼굴의 문명’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다. 1만 년 전쯤에 인류의 주요 문명이 시작된 후 지금까지 인간은 얼굴에 대한 기이한 매혹을 줄곧 표현해 왔다. 인류 최초의 체계적 학문 중 하나인 ‘관상학’을 생각해 보자. 아직도 믿는 이가 적지 않은 이 학문은 얼굴을 통해 한 사람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다는 믿음 없이는 생겨나기 어렵다. 얼굴을 보면 한 사람이 살아온 궤적, 현재의 온갖 상태, 심지어 미래의 운명까지도 알 수 있다는 이 독특한 발상은 동서양에서 모두 수천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얼굴을 아는 것이야말로 한 인간을 이해하는 지름길이라는 이 특이한 발상에서 우리는 왜 그다지 어색함을 느끼지 못할까. 만약에 얼굴이 먹이 획득에 유리한 기관에 그친다면, 인간이 자신과 타자의 얼굴에 신경 쓰는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헛발질에 불과할 뿐이다. 하지만 서두에 인용한 대로, 인간의 얼굴에는 다른 생명체에서는 눈에 띄지 않는 아주 특이한 성질이 있다. 이 점이야말로 인간이 얼굴에 열광하는 진화론적으로 필연적인 근거가 된다. 비록 관상학과는 아무 상관이 없을지 몰라도 말이다.

형태론적으로 볼 때, 인간의 얼굴에는 주둥이가 없다. 얼굴에서 앞쪽으로 튀어나온 턱 부분이 없다는 점에서 여우는 인간과 다르고 침팬지와 같다. 인간의 턱은 돌출돼 있지 않기에, 얼굴에 털이 없어진 상태와 어울려 입으로 다양한 표현을 할 수 있게 됐다. 인간의 얼굴에는 또 다른 형태적 특징이 있다. 이마가 있기에 인간의 얼굴은 다른 생명체와 달리 수직 구조를 이룬다. 이마가 생겨나며 두개골에 여유 공간이 늘어났고, 인간의 두뇌는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그 결과 어떻게 됐을까.

얼굴의 진화에서 또 다른 비약이 출현한 것이다. 얼굴은 먹이 획득 기관일 뿐만 아니라 “매우 정교하고 민감한 의사소통의 도구”이기도 한 것이다. 침팬지, 고릴라 등과 같은 우리의 유인원 사촌들과 비슷한 표정을 짓는다. 기쁠 때, 슬플 때, 놀랄 때, 두려움에 떨 때의 표정은 별다른 학습 없이도 알아챌 수 있다. 심지어 개나 고양이 같은 동물도 얼굴을 통해 감정을 표현한다.

하지만 어떤 생명체도 인간의 얼굴처럼 다양한 정보를 송수신할 수 없다. 인간의 얼굴은 “개인과 세상에 대한 정보를 모으는 효율적인 수집가이자, 자신의 감정과 의도를 동료들에게 놀라울 정도로 뛰어나게 전달하는 정보의 전달자”다. 우리는 표정을 통해 말하지 않고도 의사를 전달할 수 있고 거짓말하면서도 진실을 전달할 수 있다.

저자에 따르면, 얼굴을 다채롭게 사용하는 인간의 능력은 ‘인간의 사회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사회적 상호작용이 활발한 돌고래나 코끼리가 거울에 비친 자신을 알아보듯, 인간도 사회적 상호작용에 맞춰 얼굴의 개체적 차이를 실현하고 얼굴 근육을 진화시켜 다양한 표현을 할 수 있게 됐다. 역으로 얼굴로 획득한 섬세한 표현들은 인간의 사회성을 더욱더 고도화함으로써 인간을 다른 종과 차별화한다. 그렇다면 얼굴이야말로 인류 진화의 역사를 한눈에 보여주는 진화의 조감도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책을 통해 비로소 우리는 인간의 얼굴에 대한 과학적 이해를 담은 좋은 조감도 하나를 가졌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672쪽, 2만5000원.

장은수 출판평론가·순천향대 초빙교수

[문화닷컴 바로가기|문화일보가 직접 편집한 뉴스 채널|모바일 웹]

[Copyrightⓒmunhwa.com '대한민국 오후를 여는 유일석간 문화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구독신청:02)3701-5555/모바일 웹:m.munhwa.com)]

Copyright © 문화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