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건축은 70점" 건축계 수장의 자성론

이상빈 기자 2018. 2. 23. 0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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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건축 무대에서 한국은 100점 만점에 아직 70점 수준 밖에 안됩니다. 건축계가 위기를 돌파하고 국제 무대에서 도약하기 위해선 정말 정신차려야 해요.”

지난 21일 한국건축가협회 31대 수장(首長)에 올라 3월 1일부터 2년간 협회를 이끌게 될 강철희 회장(종합건축사사무소 이상 대표, 홍익대 건축도시대학원 교수). 그는 땅집고와 가진 단독 인터뷰에서 회장에 오른 기쁨보다 걱정이 앞선다는 말부터 꺼냈다. 한국건축가협회는 1957년 설립한 건축인 단체로 대한건축사협회와 국내 건축인 모임의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다. 강 회장은 지난 2년간 한국건축가협회 수석부회장을 맡기도 했다.

홍익대 건축도시대학원 연구실에서 만난 강철희 한국건축가협회 회장. /심기환 인턴기자

강 회장은 한국 건축계가 큰 위기에 처했다고 말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건설업이 본격적인 하향세를 타고 시장이 어려워지면서 건축가들은 일감 하나 따내기조차 점점 어려워지는 상황이라는 것. 이유가 뭘까. 그는 “우리 스스로 자초했다”고 자성했다.

무슨 말일까. 그의 설명은 이랬다.

“호황기에 일감이 많다보니 건설사 요구에 따라 비용 맞춰주기에 급급하고 현실에 자족하기 시작했어요. 이런 상황에선 그야말로 찍어내기에 급급한 건축 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건축 선진국은 전혀 다릅니다. 설계가 끝나고 짓다가도 아니다 싶으면 다시 설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건축주 입장에서는 비용을 30~50% 더 들이더라도 건축가가 건축의 최종 책임을 지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죠.”

국내 현실은 다르다. 건축 디자인은 건설의 종속 변수라는 인식이 강할 뿐더러 일반인들이 건축을 바라보는 시선 역시 성숙돼 있지 않다는 것이다.

강 회장은 이런 이유로 한국 건축은 전 세계 무대에서 점수로 치면 100점 만점에 70점 정도에 그치고 있다고 평가했다. 심지어 아시아에서 일본은 물론 중국보다도 앞서 있다고 말하기 어렵다고 자성한다. 그는 “우리 건축이 호황기를 거치면서 기본기엔 충실하지만 더 높은 곳으로 가기 위한 문턱을 넘는데는 실패했다”고 했다.

강 회장은 "우리 건축이 해외로 눈을 돌려야 한다"고 역설했다. 사진은 그가 설계한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 에티오피아 국립경기장. /종합건축사사무소 이상 제공

그 이유에 대해 강 회장은 “한국 건축은 아직 겁이 많다”며 “커뮤니케이션 문제와 현실에 안주하려는 태도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결국 한국 건축은 연구가 부족하다보니 세계 무대에선 한국 건축이 새로운 게 별로 없다고 느끼고, 이는 경쟁력 저하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강 회장은 “1950~60년대 이후 단절된 우리나라 고유의 건축 언어를 찾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이유도 꼽았다. 건물을 문화나 예술, 기술의 종합체로 보지 않고 투자 수단으로만 보는 문화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그는 “이제부터라도 건축은 기성품(ready-made)이 아니라 맞춤 제작(order-made)이 돼야 한다”며 “임기 중 돈보다는 가치를 우선시하는 건축 문화를 만들려고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취임 후 최우선 과제 중 하나로 한국 건축의 세계화를 꼽았다. 한국 건축가가 해외로 나가 배우는 것만이 아니라 좀 더 조직적·적극적으로 해외에서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고 했다. 강 회장은 이제 세계에서 유일하게 남은 미개척 시장을 아프리카라고 했다. 그는 “선진국 업체들도 중국 시장은 힘들어 하고 있다”면서 “아프리카는 아직 블루 오션이라 할 만큼 시장이 넓다”고 했다. 실제로 그는 이미 몇 년전부터 중국과 아프리카 시장을 적극적으로 뚫고 있다.

중국 상해 푸단대 100주년기념 체육관. /종합건축소사무소 이상 제공

그는 한국 건축에 대한 정체성을 연구해 개성있는 작품을 만들어내는 경쟁력도 길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통해 임기 중 ‘건축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프리츠커상 수상자를 배출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동아시아에서 프리츠커 수상자가 일본은 6명. 중국은 1명인데 우리는 한명도 없다”며 “우리나라에도 재능있고 경쟁력 높은 건축가들도 있는데 안타깝다”고 말했다.

강 회장은 유능한 젊은 건축가와 대형 건설회사, 설계사무소를 짝지어 ‘2인 3각’ 하듯이 지원하는 방식을 제시했다. 그는 “협회 차원에서도 UIA(국제건축가연합)는 물론 미국건축가협회(AIA), 일본건축가협회(JIA) 등과 연례 미팅을 만들어 협력관계를 강화하고 국제 설계 무대에서도 영향력을 키워나갈 것”이라 했다.

건축계와 학계에서 덕망있는 인물로 꼽히는 강 회장은 건축계의 숙원 중 하나인 한국건축가협회와 대한건축사협회 통합을 이뤄낼 수 있는 적임자로 평가받는다. 실제로 그는 “두 협회를 통합하기 위해 회장이 된 것이나 다름없다”며 사명감을 드러냈다.

한국건축가협회와 대한건축사협회는 각각 1957년과 1965년 문을 연 건축계 주요 단체다. 건축사협회는 공인건축사 자격증을 취득한 사람들만 가입할 수 있고, 건축가협회는 건축사들 중에서도 일정 자격을 갖춘 건축사들과 학자, 건축장인 등으로 구성돼 있다. 그는 “건축사협회는 행정 쪽에, 건축가협회는 예술 쪽에 좀 더 가깝지만 애초엔 같은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그는 “설문조사 해봐도 60~70%는 통합하자는 것이 중론”이라며 “지난해 서울에서 세계건축대회를 개최하면서 대외적으로 많이 알려져 통합에 좋은 기회였는데 약간의 갈등으로 어긋나 아쉬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서울에서 열린 국제건축연맹(UIA) 총회·세계건축대회를 통해 건축계 통합 물살이 급진전됐지만 업계 내 풀리지 않은 갈등으로 결국 실패했다. UIA 2017 서울세계건축대회 포스터. /조선DB

하지만 그는 여전히 통합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그는 “남북 분단처럼 이 상황에 서로 익숙해져 있는데, 건축제도 개선이나 국제적으로도 한 목소리 내기가 어려워 건축문화 창달에 저해된다”고 지적했다.

국토교통부 산하 법정단체인 대한건축사협회는 회원수가 1만4000여명,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단체인 한국건축가협회는 5년 이상 건축 실무 경력에 작품 2개를 제출해 협회로부터 승인을 받아야 회원 자격을 얻으며 회원 수는 4000여명이다. 한국건축가협회 회원의 절반 가량이 대한건축사협회 회원인데다 두 단체의 활동 영역이 중복된다는 지적에 통합 필요성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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