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진단 후폭풍]②국토부, 무리한 '소급적용' 논란..줄소송 우려

국종환 기자 2018. 2. 23.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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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안전진단 신청한 단지에도 강화되는 규제 소급적용
대법원 "개인이해 침해하는 행정법규 소급적용 불허"
지난해 말 기준 재건축 연한(30년)을 충족한 목동 신시가지 아파트 단지. 2018.2.20/뉴스1 © News1 이승배 기자

(서울=뉴스1) 국종환 기자 = 국토교통부가 '재건축 안전진단 강화대책'을 추진하면서 자치구의 행정결정까지 뒤엎는 무리한 소급적용으로 문제가 되고 있다. 법원은 국민의 이해와 관계있는 행정법규 시행 시 소급적용을 불허하고 있어 향후 소송전으로 번질 경우 후폭풍이 예상된다.

23일 일부 자치구에 따르면 국토부의 안전진단 강화대책 소급적용에 대한 민원이 이어지고 있다.

국토부는 재건축 안전진단 평가항목 중 구조안전성 비중을 50%로 확대하는 내용 등을 담은 '안전진단 기준 일부개정 고시안'을 21일 행정예고했다. 재건축단지 입장에서는 연한(30년)을 다 채우더라도 붕괴 우려가 없으면 재건축 기회를 얻기 어려워졌다.

국토부는 이번 행정예고 기간을 21일부터 다음 달 2일까지 열흘로 정했다. 행정절차법상 행정예고 기간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20일 이상 두게 돼 있지만 국토부는 막판에 안전진단 신청이 몰릴 것을 우려해 이를 당겼다. 3월 중순 전에 새 제도가 시행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다.

문제는 국토부가 대책을 서둘러 진행하면서 무리하게 소급적용을 했다는 것이다. 국토부는 대책 시행일 기준으로 안전진단 기관에 진단 '의뢰'가 이뤄지지 않은 단지들은 모두 강화되는 기준이 적용된다고 밝혔다. '의뢰'에 대해선 구청이 안전진단기관에 입찰공고(용역 발주)를 내는 수준이 아닌 기관을 선정해 '계약까지 체결'한 상태라고 정의했다.

안전진단은 주민동의서 징구(동의 10% 이상)→안전진단 신청→안전진단 실시 결정(시장·군수)→안전진단 의뢰(시장·군수→안전진단기관)→안전진단 실시 등의 순으로 이뤄진다. 구청에 안전진단 신청이 들어오면 이미 행정절차는 진행되는 것이다.

노원구 에 위치한재건축 추진 단지들의 모습 © News1

통상 구청의 안전진단 실시 결정이 내려진 뒤에도 업체 입찰공고를 내고 계약을 맺기까지 최소 한 달 이상이 소요된다. 대책이 3월 중순 전 시행될 것을 감안하면 이미 안전진단을 신청해 행정절차가 진행 중인 단지라도 소급적용에 따라 강화되는 기준을 적용받게 된다. 특히 예비안전진단(현지조사)를 거쳐 구청으로부터 안전진단 실시 결정 통지를 받은 단지도 업체와 계약을 맺지 못했으면 새 기준을 적용받는다.

실제 송파구 '아시아선수촌아파트'의 경우 대책 발표 전인 지난달 구청의 현지조사 후 안전진단 실시 결정을 받았다. 지난 21일 진단업체 선정을 위한 입찰공고를 냈는데 대책 시행일 전까지 계약을 못 맺으면 강화되는 규제를 적용받는다.

노원구 '태릉우성아파트'도 지난달 구청의 안전진단 실시 결정을 받은 뒤 진단비용(약 1억4000만원)을 마련하는 상황에서 날벼락을 맞았다. 단지 한 주민은 "이미 구청의 안전진단 결정을 받아 당연히 되는 줄 알았다"며 "아무래도 강북이다보니 주민들이 적지않은 진단비를 모으느라 시간이 걸렸는데 무산될 수 있다니 난감하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자치구 한 관계자도 "주민들로부터 안전진단 신청을 받은 때부터 행정절차는 시작되는 것"이라며 "행정결정이 내려진 단지까지 모두 소급적용하는 것은 잘못된 행정"이라고 지적했다.

국토부는 이에 대해 새 기준 적용을 '안전진단 신청'으로 두면 막판에 신청이 몰릴 수 있어 '안전진단 의뢰'로 잡았다는 입장이다. 엄격한 대책 집행을 위해 소급적용이 불가피했다는 것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구청에서 결정이 돼 진단비를 마련 중이더라도 시행일까지 계약을 맺지 못하면 소급적용돼 강화된 규제를 따라야 한다"고 밝혔다.

현재 우리 법원(대법원 판례 2004다8630 등)은 행정법규의 소급적용에 대해 법치주의 원리에 반하고 개인의 권리·자유에 부당한 침해를 가한다며 인정하지 않고 있다. 국민의 이해에 직접 관계가 없거나 오히려 이익을 증진하는 경우 등에 한해서만 예외로 허용할 뿐이다. 재건축 안전진단 강화대책은 단지 주민들의 이해와 연결되고 이해를 침해할 수도 있는 규제로 인식돼 예외적용이 어렵다는게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국토부가 막판 신청이 몰리는 것을 막으려는 의도는 이해하지만 기존 신청단지를 배려하지 못한 것은 아쉽다"며 "소송전으로 번질 경우 후폭풍이 상당할 것으로 우려된다"고 말했다.

jhk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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