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단독] 성추행이 만연한 연극계.. "폐쇄적 문화가 원인"

손재호 강주화 조민아 기자 입력 2018.02.22. 19:55 수정 2018.02.22. 23:58

연극연출가 겸 극작가 이윤택(66)씨의 성폭행 파문으로 시작된 '미투(#MeToo)' 운동이 연극계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연극 스태프로 일한 최모(28·여)씨는 "3년 전 일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고 토로했다.

최씨는 얼마 전 연극 일을 그만뒀다.

연극배우 이모(28·여)씨도 과거 한 남성 연출가에게 성희롱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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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증언 봇물.. 한두 극단만의 문제 아니다

“감독이 모텔로 끌고가려다 빠져나오자 욕설 퍼부어
해외공연 땐 남자배우가 ‘어떤 팬티 입나 볼까’ 희롱”

오태석 초빙교수 수업 배제… 고은 원로시인 작가회의 탈퇴

연극연출가 겸 극작가 이윤택(66)씨의 성폭행 파문으로 시작된 ‘미투(#MeToo)’ 운동이 연극계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여러 극단의 성폭력 피해자들이 국민일보에 증언했다. 이들은 폐쇄적 구조 속에서 일상에 만연한 성폭력을 경험했다고 주장했다.

연극 스태프로 일한 최모(28·여)씨는 “3년 전 일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고 토로했다. 회식 후 함께 버스정류장으로 가던 극장 감독 A씨가 자신을 억지로 모텔로 끌고 가려 했던 것. 가까스로 빠져나와 버스에 오른 최씨에게 A씨는 욕설을 퍼부었다. 최씨는 “(A씨가) 결혼 준비 중이라 경계할 생각을 못했다”며 “아직도 어린 스태프들을 상대로 그런 짓을 하는 게 아닌지 걱정”이라고 했다. 그는 또 “해외공연 때 베란다에 널린 속옷을 보고 한 남배우가 ‘우리 OOO 어떤 팬티를 입나 볼까’라고 했다”며 “방문을 잠그고 문을 의자로 막고 잤다”고 덧붙였다. 최씨는 얼마 전 연극 일을 그만뒀다.

다른 스태프 B씨(29·여)는 5년 전 유명 남성 배우 C씨에게 성추행과 성희롱을 당했다고 밝혔다. B씨는 “집에 데려다주겠다는 말에 C씨의 차를 탔는데 강제로 입맞춤을 당했다”며 “너무 놀란 내게 C씨는 ‘술 마셔봐. 마시면 생각이 달라질 걸’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연극배우 이모(28·여)씨도 과거 한 남성 연출가에게 성희롱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타이트한 연습복을 입고 있던 이씨에게 연출가는 “엉덩이 한 번 쳐봐도 되냐”고 웃으며 말했다. 이씨는 “본인은 장난으로 한 말일지 몰라도 매우 불쾌했다”고 했다. 이씨는 또 “체형이 통통한 다른 동료에게는 남배우들이 수시로 ‘너는 여자로 안 느껴진다’고 놀렸다”고 했다.

피해 사실을 증언한 여성들은 한목소리로 연극계의 폐쇄적 문화가 이번 사태를 낳았다고 주장했다. 연극계 배우나 스태프 대부분이 학연·지연으로 얽혀있다 보니 피해를 당해도 참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연극계 내부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연극계는 인맥이 중요한 곳”이라며 “한번 찍히면 아예 퇴출을 당하기 때문에 여성들이 피해를 입고도 아무 말 못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연기자는 성추행과 성희롱도 감수해야 한다고 강요하며 이를 묵인하는 풍토도 문제다. 이윤택씨의 경우도 극단 내에서 당연한 듯 받아들여졌고 문제가 생겨도 쉬쉬해와 피해자가 늘어나고 성폭력의 수위도 높아졌다. 배우 이씨는 “선배들 사이에선 예술을 위해서라면 연출자가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강하다”고 말했다.

학계가 현장을 비판하거나 견제하는 역할을 하기보다 같은 문화를 공유하면서 밀고 끌어주는 관계인 점도 문제다. 오태석(78) 서울예대 초빙교수의 사례처럼 연극을 가르치는 교수들 역시 연극계 선후배 사이인 경우가 많다보니 학교 자체가 기성 연극인의 왜곡된 성문화를 젊은 연극인들에게 강요하는 통로가 되기도 한다. B씨는 “일부 교수는 그런 문화를 묵인할 뿐 아니라 대물림이라도 하듯 부추긴다”며 “학교에서 작품을 만들 때도 성추행과 성희롱이 벌어진다”고 말했다. B씨는 “그런 사람들이 학교를 졸업하고 프로가 되면 더 심한 행동을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울예대는 22일 성추행 논란에 휩싸인 오태석 초빙교수를 수업에서 배제하고 조만간 해임 등 인사 조치를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국작가회의는 성추행을 시인한 이윤택씨와 원로시인 고은(85)씨 제명 여부를 다음 달 10일 논의키로 했다고 발표했다. 고씨는 발표 직후 작가회의 측에 탈퇴 의사를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손재호 강주화 조민아 기자 sayho@kmib.co.kr

삽화=이은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