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개소문 사후처럼 첩보력이 내부 향하면 나라 망해요"

2018. 2. 22.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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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짬] ‘사기’ 전문가 김영수 이사장

김영수 한국사마천학회 이사장이 13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김영수(59) 한국사마천학회 이사장은 중국 고대 역사서인 <사기> 전문가로 불린다. 중학교 교사를 하다 뒤늦게 대학원 공부를 하던 1987년 <사기>를 만났다. 그리고 31년이 흐른 지금껏 이 책과 저자 사마천에 몰두하고 있다. <사기> 공부를 위해 1996년 시작한 중국 답사 여행은 모두 170차례나 된다. 지금도 두 달에 한번쯤 중국을 찾는다. <사기>를 주제로 한 외부 강의도 한 달에 4~5차례 한다. 2010년 첫 책을 내놓은 <사기> 번역(전 12권)은 최종 마무리까지 7년쯤 더 필요할 것이라고 했다. 올해 상반기에 4번째 번역서가 나온다.

최근엔 중국 최초의 간첩 연구서로 꼽히는 <간서>를 번역, 해설한 <비본 간서―가장 오래된 첩자 이야기>를 펴냈다. 그를 지난 13일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났다.

19세기 중엽 인물인 주봉갑이 쓴 것으로 알려진 <간서>는 중국 하나라에서 청나라까지 4천년에 걸친 간첩 활동 사료를 모아 정리한 책이다. <손자병법>에 나오는 다섯 가지 간첩 유형(사간, 생간, 반간, 향간, 내간)에 따라 나눠 서술했다. 김 이사장에 따르면 <간서>에 인용된 참고서적은 <사기> <삼국지> <한비자> 등 모두 44권이다.

그는 1993년 학술지 <군사>에 ‘고대 첩자고’란 이름의 첫 간첩 논문을 썼다. 2006년엔 김유신과 을지문덕의 첩보술을 다룬 역사서 <역사를 훔친 첩자>를 펴냈다.

“석사 논문 주제가 ‘고구려 초기 대외 관계’였어요. 고대사를 하다 보니 <사기> 조선열전에 주목했죠. 사기에는 첩자 얘기가 굉장히 많아요. 또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7세기는 삼국이 생존을 위해 매우 치열하게 첩보전을 합니다. 수·당까지 가세한 국제 첩보전이었죠. 이런 내용을 파고들어 첫 간첩 논문을 썼지요.” 그는 이번 책 서문에서 자신이 논문을 쓴 93년부터 지금껏 간첩을 주제로 한 역사 분야 논문 발표나 단행본 출간 소식이 들려오지 않는다고 아쉬워했다.

궁금한 점을 먼저 물었다. 첩보전 승리의 요건은? “국가 내부의 정치안정입니다. 또 지도자가 정보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것이죠. 그리고 시스템을 갖춰야 합니다.” 그는 “정보가 있으면 주도권을 갖게 되고 외부의 충격에 대처할 능력이 생긴다”고 했다. “신라의 삼국통일엔 김유신의 첩보조직이 결정적이었죠. 을지문덕 살수대첩도 고구려 첩보망이 뛰어나 가능했죠.”

그렇다면 지금 이곳은? “첩보력이 내부로 향할 때 망합니다. 지난 10년 국가정보원이 한 게 이 짓이죠. 국민 감시로 내부를 흔들었어요. 우리 정보는 밖으로 새나갔고요. 책을 내기로 맘먹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죠. 역사적으로 장성은 밖에서 무너진 적이 없어요. 내부에서 문을 열어줘 망했죠.” 예를 하나 들었다. “연개소문 사후 아들들이 첩보망을 동원해 권력투쟁을 합니다. 그리고 고구려가 안에서 무너졌죠.”

그는 중국 지도자 시진핑이 2013년 취임할 때 생태를 ‘국정목표’로 강조하더니 지난해 생태가 중국의 ‘국정 5대 지표’가 되었다면서 국정원이 이런 정보를 앞서 파악했더라면 국내 기업들에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란 말도 했다.

현대 정보전에 가장 잘 대응하는 국가는? “중국이죠. 유학생을 전세계에 보내고 있고 이들의 귀국률도 높아요. 세계의 핵심 인재를 끌어들일 수 있는 여건을 잘 갖추고 있어요.”

87년부터 ‘사기’와 사마천 심취
20여년 동안 중국 답사만 170차례

중국 최초 간첩서 ‘간서’ 번역
“고대사 연구하다 간첩 논문까지
첩보전 승리 요건은 내부 정치안정
한신 배수진, 가장 성공적 첩보전”

역사상 간첩을 가장 잘 활용한 나라는? “한신은 조나라에 첩자를 보내 얻은 정보로 배수진 전략을 펼쳐 승리하죠. 수적 열세를 극복한 이 전투로 초-한 전쟁의 물줄기가 바뀝니다. 공자의 제자 자공은 노나라를 구하러 다섯 나라를 찾아가 외교전을 펼쳐 이 나라들의 정치 지형을 바꾸고 뜻을 이루죠.”

그는 지금 전남 영광에서 살고 있다. 99년 영산원불교대 정교수로 임용된 뒤 5년 만에 스스로 그만뒀단다. “내가 가르칠 전공 과정이 없어 교양만 담당했어요. 학교에 미안하기도 해서 사표를 냈어요.” 그는 옛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사기>에 매달리면서 박사를 포기했죠. 후회는 없어요.”

간서 한국어 번역본 표지.

그는 31년 <사기> 공부를 이렇게 회고했다. “처음엔 조선열전으로 만났고 그 뒤엔 방대한 역사책이란 점에 주목했죠. 지금은 사마천이란 역사가에 심취한 상태입니다. 사마천은 사기 글자 수가 52만6500자라고 책에 밝혔어요. 권력자 비판이 많이 들어간 자신의 책을 누군가 훼손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글자 수까지 밝힌 것이죠.”

지금은 사마천의 삶에 빙의됐다는 말까지 했다. “사마천은 초나라 시인 굴원의 죽음을 ‘돌을 품고 스스로 멱라수에 가라앉았다’고 묘사해요. ‘빠져 죽었다’는 것보다 훨씬 비장하고 장렬하죠. 불과 5~6년 전에야 이 대목이 눈에 들어왔어요. 짜릿한 감동이었죠. 굴원의 작품과 인격을 이해하고 또 현장을 찾아 탐문한 뒤 나름대로 굴원에 대한 이야기를 한 것이죠. 나도 10년 전 굴원이 자살한 멱라수를 가 봤어요. 뛰어내릴 데가 없더군요.”

한신에 대한 묘사를 보면서는 “역사가는 기록의 나열만으로 책임을 다하는 게 아니라 자기 이야기를 할 줄 알아야 한다는 점을 깨닫는다”고 했다. “한신은 한 왕조의 역적입니다. 하지만 사마천은 직접 한신 고향을 찾아 탐문해요. 그리고 소설적 재구성을 통해 한신의 모반 기록에 독자들이 의문을 갖게 만들어요. 한신이 자신을 모욕한 건달들에게 나중에 오히려 상을 주었다는 대목 등에서 그런 느낌을 받죠.”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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