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보그와 결합한 인간은 영생을 누리게 될까
특이점이 오면 세상은 어떻게 바뀌나
[박상준의 사이언스&퓨처-4] 밴드 음악을 하면서 키보드를 맡은 사람이라면 신시사이저 중에서 '커즈와일(kurzweil)' 제품을 알 것이다. 야마하나 롤랜드, 코르그가 세계 키보드 시장을 점유하고 있지만, 커즈와일은 1983년에 독보적인 기술력을 보여주며 혜성처럼 나타나서 핑크 플로이드나 장 미셸 자르, 드림시어터 같은 세계적인 뮤지션들이 이용한 바 있다. 신시사이저는 흔히 전자음악을 대표하는 악기로 알려져 있으나 피아노 등 아날로그 악기들의 소리도 거의 그대로 만들어내는데, 커즈와일은 처음 세상에 나왔을 당시 합성된 기계음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던 다른 제품들과는 달리 깜짝 놀랄 만한 완성도로 피아노 음색을 재현해 화제가 되었다.
이걸 만든 사람이 음원 칩을 독자적으로 개발한 레이 커즈와일이다. 그런데 그는 음악가가 아니라 컴퓨터 과학자이자 미래학자다. 커즈와일은 커즈와일 키보드 사업을 한국의 영창악기에 매각한 뒤 인공지능 및 포스트휴먼, 즉 인간의 미래상에 대한 저작들을 연이어 내면서 지금은 '특이점(singularity)'이론의 대가가 되었다. 특이점이란 '기술적 특이점'을 줄여서 부르는 말인데, 간단히 말해서 과학기술의 발전이 계속되면 어느 순간 인류는 그걸 따라잡을 수 없게 되는 때가 온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바둑이라는 분야에서 알파고가 인간을 추월했듯이 다른 모든 분야에서도 인공지능이 인간을 압도하게 되면 인류는 더 이상 과학기술에 대한 통제권을 가질 수 없게 돼 기계와 결합하는 사이보그가 되느냐 마냐의 기로에 서게 된다.
이 점에서 커즈와일은 매우 적극적인 특이점주의자다. 그는 2045년께면 인간이 기계(컴퓨터)와 결합해 영생을 누릴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바로 '공각기동대' 같은 영화들에서 묘사하는 미래상처럼.
과연 그런 전망이 현실로 나타난다면 세상은 어떻게 바뀔까? 이와 관련해서 SF작가 테드 창이 2000년에 '네이처'지에 발표한 '인류 과학의 진화'라는 단편은 의미심장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작품 속 배경이 되는 미래에 우리 구인류는 '메타인류'와 공존하고 있다. 그런데 메타인류의 지적 능력은 우리가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수준이다. 메타인류는 생물학적으로 우리의 후예이긴 하지만 그들의 두뇌는 '디지털 신경 전이'라는 기능이 있어서, 이를테면 정보의 습득과 처리를 슈퍼컴퓨터 수준으로 할 수 있는 것이다. 세월이 갈수록 우리와 메타인류의 격차는 점점 벌어져서 결국은 문화적으로 사실상 단절되기에 이른다. 우리는 메타인류의 지식이나 기술을 이해조차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제대로 소통할 수도 없게 된다.
그런 세상이 되면 결국 우리와 같은 구인류는 도태되는 것 아닌가 하는 불안한 마음이 들 수밖에 없다. 지금 시대에 '컴맹'이 제대로 된 사회생활을 하기가 힘든 것처럼, 특이점이 온 뒤에 구인류의 안위가 어떻게 될지는 사실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커즈와일을 비롯한 여러 특이점주의자들은 미리 그런 상황을 대비해서 관련 법안이나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특이점이론 그 자체에 회의적인 사람도 많이 있다. 모든 게 다 관련 학계와 업계의 홍보 마케팅일 뿐이라는 극단적인 비판도 있고, 설령 특이점이 온다 하더라도 앞으로 몇백 년은 지난 뒤일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인간이 사이보그화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대두되는 과학 윤리 문제라든가 사회의 보수적 관성 등을 감안하면 신인류의 탄생 과정이 매끄럽지만은 않을 것이다. 아무튼 21세기가 끝날 즈음에는 세상의 모습이 지금과는 많이 달라져 있을 가능성이 높은 것 같다.
그런데 특이점이론에 따른 신인류 탄생 시나리오는 장거리 우주여행에 서광을 비추는 것이다. 최근 관측천문학의 발달로 제2의 지구 후보가 되는 외계 행성들이 속속 발견되고 있지만 빛의 속도로 날아가도 최소한 몇 년에서 몇십 년이 걸린다. 현재의 과학기술로는 최소 몇천 년을 날아가야만 한다. 이렇듯 항성 간 우주여행은 우리와 같은 구인류에게는 도저히 넘기 힘든 장벽이지만 신인류라면 얘기가 달라지는 것이다. 다음에는 우주여행을 하는 다양한 방법에 대해 이야기해 보기로 한다.
[박상준 서울SF아카이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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