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한 손, 더 추한 침묵

박해현 문학전문기자 2018. 2. 22. 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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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추행 논란 문화계 거물들, 한마디 않고 숨어
이윤택의 사과는 '리허설까지 한 연극' 드러나
성추문 논란의 당사자들. 위부터 시인 고은, 연출가 오태석·이윤택.

"단 한 번이라도 책임 있는 어른의 모습을 보여 달라."

연극계 거물에게 성추행당한 한 여성 피해자의 절규가 대중의 목소리로 메아리치고 있다. 성추문 논란으로 비난받고 있는 원로 시인 고은(85), 원로 연출가 오태석(78), 유명 연출가 이윤택(66), 배우 조민기(53) 등이 사태 발생 이후 보여온 무책임한 태도와 언행 때문이다. 고은과 오태석은 여전히 침묵하고 있고, 이윤택은 공개 사과했으나 "진정성 없는 거짓 사과"에 "리허설까지 한 연극이었다"는 사실까지 폭로돼 후폭풍이 거세다. 조민기는 "명백한 루머다. 법적 대응도 불사하겠다"고 맞서다 배우 송하늘의 실명 폭로가 이어지자 하루 만에 "경찰 조사에 임하겠다"며 돌아섰다. '왕'이라 불릴 만큼 연극계와 교육 현장에서 절대 권력을 행사해 온 이들이 잇단 성추행 폭로에도 "제왕적 권위로 뭉개고 넘어가려는 오만"이라는 비난이 쏟아지는 이유다.

최영미의 시 '괴물'로 성추문이 불거진 고은 시인은 논란이 불붙은 지 2주가 지나도록 아무런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노벨 문학상 후보로까지 거론되며 온 국민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아온 원로 시인의 책임 있는 모습이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시인협회장을 지낸 문정희 시인은 본지와 통화에서 "고은 시인과 문단은 더 이상 침묵해선 안 된다"며 "여성 몸을 성의 도구로 여기는 행동에 대해 문단이 침묵하고 방조해 거짓과 부정을 키웠다"고 비판했다. 문 시인은 고은 시인이 표지 인물로 나온 '문학사상' 1월호에 산문 '침묵을 깬 사람들'을 발표, '미투(Me too) 운동은 거스를 수 없는 물결이고, 사방에 얼음장 깨지는 소리가 상쾌하다'고 썼다.

연출가 황이선 등 연극계 성추행 피해자들의 연이은 폭로로 비난받고 있는 오태석도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오태석과 그가 대표를 맡고 있는 극단 목화는 21일 현재 전화 연결이 전혀 되지 않는 상황이다.

40대 여성 연극 연출가 A씨는 "오태석 선생은 이 일을 어물쩍 넘기셔서는 안 된다. 어떤 방식으로든 사과해야만 연극계 어른이었던 그분의 명예와 작품성을 최소한이라도 지켜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윤택은 지난 19일 공개 사과하고 자신이 속한 연희단거리패를 해체했지만 "강제적 성폭행은 없었다"고 해명한 것이 피해자와 여론의 더 큰 공분을 사고 있다. 같은 극단 소속 연출가 오동식이 21일 "공개 사과조차 리허설을 거친 연극이었다"고 폭로해 비난은 일파만파로 커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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