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안데르탈인은 그림을 못 그려서 멸종했나

이영완 과학전문기자 2018. 2. 22.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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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심리학자 주장에 학계 논란]
- "네안데르탈인은 그림 못 그린다"
뇌는 작지만 측두엽 발달 한호모 사피엔스만이 사냥하는 동굴 벽화 남겨
- "네안데르탈인도 벽화 그렸다"
스페인 카스티요 벽화의 손도장, 최소 4만년 전 작품으로 추정
네안데르탈인이 그렸을 가능성

인류 진화사 연구에서 네안데르탈인과 호모 사피엔스의 그림 능력을 둘러싼 논란이 일고 있다. 네안데르탈인은 약 3만 년 전 멸종한 인류의 사촌이다. 몸이나 머리가 인류 직계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보다 더 컸는데 왜 먼저 사라졌을까. 미국 UC 데이비스의 심리학자인 리처드 코스 교수는 네안데르탈인이 그림을 그릴 수 없었기 때문에 멸종했다는 이색적인 주장을 했다. 그림을 그리려면 시각과 운동을 일치시켜야 하는데 네안데르탈인의 뇌는 그런 수준에 미치지 못했다는 것이다. 반면 반대 진영에서는 네안데르탈인이 그렸을 것으로 추정되는 동굴벽화도 있다고 반박한다. 과연 누가 더 그림을 잘 그렸을까.

3만 년 전 프랑스 쇼베 동굴에 그려진 사자 그림. 호모사피엔스는 창을 던지는 사냥을 오래한 덕분에 시각과 운동을 일치시키는 능력이 발달해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는 주장이 나왔다. /UC데이비스

◇창 던진 덕분에 사피엔스만 화가 진화 코스 교수는 국제학술지 '상상 문화에 대한 진화 연구 저널'에 프랑스 쇼베 퐁 다르크 동굴 벽화를 분석한 연구논문을 발표했다. 이 동굴벽화는 약 3만 년 전에 호모 사피엔스가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코스 교수는 벽화에 있는 사자 그림처럼 생생한 모습을 그리려면 머리에 떠오른 심상(心象)대로 손을 움직이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 능력이 창이 날아가는 궤적을 상상해보고 그것에 맞게 팔을 휘두르는 능력과 일치한다고 주장했다. 바로 호모 사피엔스만이 가진 능력이란 것이다.

호모 사피엔스는 4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이주했다. 그전까지 수십만 년 동안은 아프리카 초원에서 사냥을 하며 살았다. 초원은 탁 트인 곳이라 사냥감에 가까이 가기 어렵다. 할 수 없이 먼 곳에서 창을 던져야 한다. 코스 교수는 "호모 사피엔스는 창을 던지면서 시각적 상상력과 팔 동작을 일치시키는 능력이 발달했고, 덕분에 동굴 벽화를 그릴 수 있었다"고 밝혔다.

반면 네안데르탈인은 유라시아의 숲에서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덜한 동물들에게 가까이 다가가 창으로 찔러 사냥했다는 것. 코스 교수는 "네안데르탈인도 사냥감에 대한 단기 기억이 가능했겠지만 이를 손으로 옮겨 그림을 그릴 수준까지는 뇌가 발달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사실 뇌는 네안데르탈인이 더 컸다. 호모 사피엔스의 직계 후손인 오늘날 인류의 뇌 용량은 평균 1400㏄이지만, 네안데르탈인은 1600㏄에 이른다. 그럼에도 호모 사피엔스만이 동굴 벽화를 그릴 수 있었던 것은 뇌 모양이 달랐기 때문이라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시각과 운동을 일치시키는 능력은 뇌 측두엽이 관장한다. 코스 교수는 호모 사피엔스 뇌가 네안데르탈인보다 더 공 모양에 가까워서 측두엽이 더 발달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지난달 독일 막스 플랑크 연구소 과학자들은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스'에 발표한 논문에서 "호모 사피엔스의 뇌가 단계적으로 둥글어졌으며, 이 과정에서 특히 측두엽이 크게 발달했다"고 밝혔다.

코스 교수는 호모 사피엔스의 동굴 벽화는 사냥 기술을 전파하는 수단이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사냥할 때 본 동물을 그려놓고 사냥의 성공을 비는 동시에 어디를 어떻게 공략해야 잡을 수 있는지 정보를 나누는 수단이었다는 것이다. 결국 정보력의 차이가 호모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의 운명을 갈라놓은 셈이다.

스페인 카스티요 동굴벽화에 남은 손도장. 연대 측정 결과 최소 4만800년 전의 벽화로 밝혀져 네안데르탈인이 그렸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사이언스

◇"네안데르탈인도 벽화 그렸다" 반론도 하지만 이번 연구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네안데르탈인의 동굴벽화도 있다는 것. 지난 2012년 영국 브리스틀대 앨리스테어 파이크 교수는 사이언스에 "스페인 엘 카스티요 동굴벽화를 덮은 방해석 박막은 최소한 4만800년 전에 생성됐다"고 발표했다. 당시 연구진은 "벽화가 수천 년 전에 그려졌고 이후 방해석 막이 생겼다고 볼 수 있다"며 "네안데르탈인이 벽화를 그린 주인공"이라고 주장했다. 그전까지 가장 오래된 동굴벽화는 이번에 코스 교수가 분석한 쇼베 동굴벽화였다.

연구진은 당시 우라늄 연대측정법을 이용했다. 동굴벽화는 황토 같은 광물성 무기물 물감으로 그린 것이 대부분이어서 탄소연대측정법이 통하지 않았다. 연구진은 동굴 벽면에 물이 새어들면서 생긴 방해석 막에서 우라늄을 추출했다. 우라늄은 시간이 지나면서 일정한 속도로 방사선을 방출하고 토륨으로 변한다. 따라서 우라늄과 토륨의 비율을 알면 연대를 측정할 수 있다. 인류 진화사의 미스터리를 풀 열쇠가 그림 감정에 달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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