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전투기 연료통에 헬기 창문까지 뚝 .. 참고 참는 아베 왜

서승욱 2018. 2. 22.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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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달간 사고 7건 .. 일본 사회는 잠잠
북한 위협 커지자 '동맹의 비용' 인식
"일본 기지 70% 이상 오키나와 집중
수도서 미군 접한 한국과 정서 달라"

#1. 20일 오전 8시40분. 일본 혼슈 최북단인 아오모리(靑森)현 미사와(三沢) 기지를 1분 전에 이륙한 F-16 전투기의 엔진 부근에 불이 붙었다. 미군 조종사는 관제소와 연락을 취한 뒤 주 날개 밑에 있는 연료 탱크 2통을 오가와라(小川原) 호수에 투하했다. 긴급 착륙 전에 기체의 무게를 줄이기 위한 조치였다. 전투기는 8시42분 기지에 비상 착륙했다. 길이 4.5m, 직경 1m, 무게 215kg(연료를 비웠을 때)의 연료탱크 2통이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진 것이다. 탱크가 떨어진 위치 호수엔 10척 가량의 바지락잡이 어선이 조업 중이었다. 특히 낙하 지점과 불과 200m 떨어진 곳에서도 배가 있었다. 한 어민은 “하늘에서 무엇인가가 떨어져 15m 이상의 물기둥이 생겼다. 내 아내는 더 가까운 어선에서 바지락을 선별 중이었는데, 맞았으면 죽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베 총리는 “미군에게 철저한 안전관리와 원인 규명, 재발 방지를 강하게 요구하겠다”고 말했다.

#2. “팡~.”

지난해 12월 13일 10시10분. 오키나와(沖縄)현 기노완(宜野湾)시 후텐마(普天間) 미군 기지에 접해있는 초등학교 교정에 미군의 대형 수송헬기 CH-53E의 창문이 갑자기 떨어졌다. 7.7kg 무게의 창이 떨어진 곳과 당시 운동장에서 체육 수업 중이던 학생들까지의 거리는 불과 13m 정도였다. 하마터면 학생들의 생명을 빼앗아갈 뻔했던 사태에 학생과 학부모, 교사들은 할 말을 잊었다.

지난해 말부터 미군 헬기와 전투기로 인한 사고가 일본 전역에서 줄을 잇고 있다. 물론 미군 기지 70%가 밀집돼 있는 오키나와에서의 사고가 가장 많다.

지난달 6일엔 오키나와현 우루마(うるま)시 이케이(伊計) 섬 동쪽에 미군 UH-1 헬기가 불시착했다. 이틀 뒤인 8일엔 같은 현 요미탄(讀谷)의 폐기물 처분장에 AH-1 공격형 헬기가 떨어졌다. 그로부터 10여일뒤인 23일엔 역시 오키나와현 도나키(渡名喜) 섬에 AH-1 헬기가 불시착했다.

주민들 중에 숨지거나 다친 사람은 없었지만 그때마다 오키나와현 전체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또 지난 9일엔 미군 헬기의 환기구 부품(무게 약 13kg)이 이케이 섬에서 발견됐다. 미군이 8일 부품 낙하 사실을 파악해놓고도 일본 측에 연락조차 하지 않았다는 게 오키나와현의 주장이다. 결국 오키나와현 의회는 21일 “오키나와는 미국의 식민지가 아니다”라는 결의문까지 발표했다. 하지만 이처럼 분노를 뿜어내는 오키나와현에 비해 일본 정부의 대응은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다.

지난해 말 헬기의 창문이 학교 운동장에 떨어진 사고 때도 일본 정부의 대응은 부실하기 짝이 없었다. 미군은 당시 “해당 초등학교 상공 비행은 최대한 피하겠다”고 했지만 불과 한달 뒤 헬기 3대가 이 학교 상공을 비행한 사실이 들통났다.

불과 두 달여만에 비슷한 사고가 6~7건이 터져도 일본 정부와 사회는 잠잠한 편이다.

오쿠조노 히데키(奧園秀樹) 시즈오카현립대 국제관계학과 교수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북한의 핵과 미사일 도발 상황, 중국을 안보적·군사적 측면에서 견제할 수밖에 없는 현재 일본의 입장에선 어떠한 경우라도 동맹국인 미국과의 관계가 흔들려선 안 된다는 인식이 퍼져 있다”고 진단했다.

북핵 등 안보 위협이 점점 증대되는 상황에서 아베 정권과 일본 사회가 미군의 존재와 그로 인한 각종 사고를 일종의 ‘동맹의 비용’으로 여겨 참고 또 참고 있다는 것이다.

오쿠조노 교수는 “일본 전체 면적의 1%도 안되는 오키나와에 미군 기지의 70% 이상이 집중돼 있다”며 “수도 한복판에 미군 사령부가 있어 미군의 존재를 피부로 느꼈던 한국인들에 비해 일본인들은 오키나와를 제외하곤 미군의 존재를 그렇게 무겁게 느끼지 못한다”고 말했다. 미군을 보다 가깝게 접했던 한국인들이 일본인에 비해 미군 관련 사고나 범죄 등에 정서적으로 더 민감할 수 있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도쿄=서승욱 특파원 ss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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