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미, 백화점식 요구 쏟아내며 FTA 개정 '압박'

구교형 기자 2018. 2. 21.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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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디지털교역·약가·화평법 등 다양한 의제 동시다발 제기
ㆍ자동차·투자자 소송 쟁점 신속 협상 기대했던 정부 ‘당혹’

“트럼프 규탄” 민중당 당원들이 20일 서울 종로구 미국대사관 앞에서 열린 ‘한국지엠 군산공장 폐쇄 규탄 정당연설회’에서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이 지난달 31일부터 이틀간 서울에서 열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2차 개정협상에서 디지털교역과 약가제도, 화학물질등록평가법(화평법) 등 다양한 의제를 꺼낸 것으로 확인됐다. 자국 이익을 극대화할 수단으로 여러 이슈를 동시에 올려 압박하려는 포석으로 보인다. 당초 자동차 무역불균형 같은 한정된 협상을 예상한 정부는 당황한 모습이다.

20일 산업통상자원부 등의 말을 종합하면,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2차 개정협상에서 개인정보 국외이전 시 사전동의 요건 완화와 글로벌 혁신신약 약가정책의 국내외 차별 요소 제거, 화평법 적용 시 국내 중소기업에 대한 차등 지원 시정 등을 요구했다.

또 미국은 “공정거래위원회가 우리 기업의 방어권을 침해하고 있다”며 ‘참고인 교차신문권’과 ‘증거자료 접근권’ 등 이른바 ‘퀄컴 구제규칙’ 도입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 같은 미국의 ‘백화점식 문제제기’에 대응하느라 정부 측은 2차 개정협상 당시 금융위원회와 보건복지부, 환경부, 공정위 등 주무부처 과장들이 협상장에 나왔다.

미국 요구대로 개인정보 국외이전 시 사전동의 요건이 완화되면 외국계 금융회사를 통해 내국인 정보가 지금보다 더 쉽게 국외로 빠져나갈 위험이 있다. 이렇게 되면 개인정보의 주인인 국민의 권리를 보호할 정부 의무가 지켜지지 못할 수가 있다. 전산화된 개인정보에 대해 각국은 ‘충분한 보호장치’를 유지해야 한다고 명시된 1990년 유엔총회 결의로 채택된 ‘유엔인권지침’과도 상충될 소지가 있다.

2012년 한·미 FTA 체결 이후 한국을 상대로 한 의약품 수출을 크게 늘린 미국은 이번 개정협상에서 추가 요구사항을 내놨다. 국내 보건의료에 기여한 신약 가격을 내리고 심사기간도 단축해주는 정부의 ‘글로벌 혁신신약 우대정책’도 문제 삼았다. 곧 “한국 제약사에 유리한 정책”이라고 공세를 편 것으로 전해졌다. 이 혜택을 받으려면 국내에서 임상시험을 실시하는 등의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이 부분이 미국 제약사에 대한 역차별이란 주장이다. 또 ‘가습기 살균제’ 사건 이후 제정된 화평법에 따라 국내외 기업 모두 화학물질 관리자료를 정부에 등록해야 한다. 이 제도 시행 초기 국내 중소기업의 어려움을 덜기 위해 등록 절차를 간소화시켜준 점도 미국에 시빗거리가 됐다.

당초 미국의 자동차 무역불균형 해소와 한국의 투자자-국가분쟁해결제도(ISDS) 개선 요구를 양대 쟁점으로 신속한 협상을 바랐던 정부는 당혹한 기색이 역력하다. 김양희 대구대 경제학과 교수는 “미국이 해마다 ‘국가별 무역장벽 보고서’를 발표할 때 한국을 상대로 지적해온 단골 메뉴들을 한·미 FTA 협상장에 모두 내놓은 것 같다”면서 “자동차 분야에서 최대한 실익을 거두기 위한 협상 카드일 수 있는 만큼 피해 범위를 최소화하도록 협상에 임해야 한다”고 말했다.

<구교형 기자 wassup0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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