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시간 단축]②外人 눈에 비친 한국 "주68시간 근무 어떻게 가능하죠?"

이승환 기자 입력 2018. 2. 21.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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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시간 노동은 저출산·생산성 저하 원인"
한해 과로사 최소 150명.."근로자 기본권 보장해야"

[편집자주] 한주 최장 근로시간을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하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2월 임시 국회에서 본격 논의되고 있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 멕시코에 이어 두 번째 근로시간이 많은 나라다. 최근 몇 년 간 근로시간 단축 논의를 했던 정치권은 번번이 합의에 실패하다가 지난해 말 큰 틀에서 잠정 합의에 성공했다. 다만 영세 자영업자의 경영 부담 등을 이유로 개정안에 반대하는 목소리는 여전하다. 개정안 논의가 본격화하면 '최저임금 인상'에 버금가는 거센 논란을 부를 것으로 예상된다. <뉴스1>은 근로시간 단축에 대해 직장인·기업인·정치인·학계가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심층 취재했다.

한국의 근로시간 단축 현안을 보도한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 기사(해당 기사 웹페이지 캡처) © News1

(서울=뉴스1) 이승환 기자 = "퇴근 후 한국인 아내와 보내는 시간이 가장 소중합니다"

영국 런던에 있는 중소 건축 회사에 다니는 직장인 그윈 휴(49)의 말이다. 영국인 그는 주40시간 근무 덕분에 이 '소중한 시간'을 누리고 있다.

평일 오전 8시 30분에 출근해 오후 5시 30분에 '칼퇴근'한다고 한다. 일을 마치고 집에 도착하면 아내와 요리를 하거나 영화·TV 프로그램을 본다. 휴의 한해 연봉은 5만 파운드(약 7500만원)로 영국인 평균(2만4600파운드·2015년 기준)보다 두 배 이상 많다.

서울에서 아내와 겨울 휴가를 보내고 있는 휴는 최근 <뉴스1>기자와 만나 "한국 사람들은 무언가에 늘 쫓기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하루 9~10시간씩 한주 68시간 근무하는 한국인 직장인이 있다고 하자, 그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대뜸 반문했다. "리얼리(진짜요)?"

푸른 눈을 가진 외국인이 괜히 '오버'를 하는 게 아니다. 영국에 사는 근로자의 연간 근로시간은 1676시간이다. 한국 2069시간보다 393시간 적다. 하루 8시간 근무라고 가정하면, 한국은 영국보다 한해 한달 반 가량(47.8일) 더 일한다.

선진국 출신들은 휴처럼 한국 직장인의 근로시간에 놀라는 경우가 적지 않다. "세계적으로 고용률이 70%가 넘는 국가 중에 한국처럼 연간 노동시간이 1800시간을 넘는 나라는 없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얘기가 과장이 아닌 것이다.

◇ 아직도 보릿고개 시절 근무시간 '웬 말'?

영국 주요 일간지 인디펜던트는 지난해 12월 '아시아에서 가장 과로하는 나라인 한국이 쉴 권리 보장을 위해 근로 시간 단축을 추진한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장시간 노동은 과거 한국 경제의 고속 성장 원동력으로 간주됐지만 현재는 저출산과 생산성 저하 등 사회적 문제의 원인으로 여겨진다"고 지적했다.

장시간 근무를 감당하던 과거 산업화 시대의 근로문화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산업화 시대에 대한 논란은 계속되지만 표면적으로는 한국 경제 성장에 기여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한창 실행 중이던 1963년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104달러(약 11만원)에 불과했다. 수출 금액은 8680만 달러(약 927억원)였다. 정부와 기업은 힘을 합쳐 수출 확대에 나섰고 근로자들은 생산 현장에서 미싱(재봉틀)을 돌렸다. 1970년 한국 근로자의 주당 평균 노동 시간은 51.6시간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통계 시스템이 제대로 자리 잡기 전이라 실제론 이 보다 더 많았을 것이란 분석이다.

고(故) 김수환 추기경은 생전 "1970년대 노동환경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열악했다"며 "농촌에서 올라온 앳된 소녀들은 먼지구덩이 작업장에서 장시간 노동에 시달렸다"고 밝혔다.

대신 한국 경제는 가파르게 성장했다. 1970년 ~ 80년대 합판·신발·의류에 이어 90년부터 휴대전화·반도체·자동차 수출이 크게 증가하면서 21세기 한국은 세계 12위 수준의 경제 강국이 됐다. 2016년 기준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과 수출액은 각각 2만7560달러, 4954억달러였다. 53년 전보다 200배, 5000배 이상 급증한 수치다.

지난해 9월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 앞에서 열린 과로사 근절 및 장시간 노동철폐 결의대회에 참석한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조합원들/뉴스1 © News1 성동훈 기자

◇ 합계출산율도 '꼴찌'…노동 패러다임 전환해야

그러나 기업의 장시간 근무와 군대식 조직문화 등은 산업화 시대의 유산으로 지목된다. 특히 과로는 근로자에게 죽음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근로복지공단 통계 자료를 보면 2016년 최소 150명이 과로로 목숨을 잃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업무상 과로사라고 '산재보험'으로 승인된 인원이다. 실제론 이 보다 더 많을 가능성이 높다. 한국의 합계출산율도 2016년 기준 1.25명으로 OECD 국가 중 최하위다. 합계출산율이란 여성 1명이 15~49세에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자녀 수다. OECD 회원국을 넘어 '전 세계 국가'로 기준을 잡아도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224개국 중 220위에 머물러 있다.

이병훈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21세기 들어서도 산업화 시대의 생산체제와 근로자 생활 스타일이 유지되면서 장시간 노동·저임금·낮은 생산성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며 "노동에 대한 사회적 인식(패러다임) 전환으로 기존보다 적게 일하는 대신 많은 임금을 보장해서 선진국처럼 근로자 삶의 질을 높이고 노동 생산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4차 혁명 시대를 맞아 산업계는 경영 체제 전반에 걸쳐 일대 전환을 도모하고 있다. 기업들은 잇따라 자동화 설비를 도입해 생산 체제를 바꾸고 사물인터넷(IoT)·빅데이터·클라우드 등 4차 혁명 시대 신기술을 선보이고 있다.

이와 함께 직원들의 성실성만큼 창의력을 중시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구글과 애플 등 선진국 기업들은 '오래 일하는 것'보다 '효율적으로 일하는 것'을 더 높이 평가한다. 신세계와 아모레퍼시픽 등 국내 기업들도 직원들의 업무 효율성을 강화하는 유연 근무제를 시행하고 있다.

산업화에 이은 민주화 실현으로 노동자 인권이 강조돼 근로기준법 개정 논의가 거듭되는 상황에서 사업주가 근로자에게 '과로'를 강요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는 지적이다. 더불어민주당 서형수 의원은 "생산 현장에 자동화 시스템이 도입되는 산업계 흐름 속에서 근로시간 단축은 노동자에게 건강권 같은 최소한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것"이라며 "근로시간 단축에 대한 시대적 요구가 높아 정부도 강력한 의지를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 News1 이은주 디자이너

mr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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