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 '첫 단추' 안전진단부터 '마지막' 부담금까지 전 과정 옥죈다

김기중 2018. 2. 21. 0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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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성 평가 비중 20→50%로 상향

정부, 집값 잡기 강력 대책

조건부 재건축 판정 받은 경우엔

시설안전공단 적정성 검토 의무화

국토교통부가 20일 발표한 ‘재건축 안전진단 기준 정상화 방안’으로 사실상 재건축 원천 봉쇄가 예상된다. 이에 따라 서울에서만 10만3,822가구가 강화된 재건축 안전진단 기준의 적용을 받게 될 전망이며 양천구 목동과 노원구 상계동, 송파구 등지의 주요 재건축 단지들이 타격을 받게 됐다. 사진은 재건축이 추진되고 있는 목동 아파트 단지 전경. 연합뉴스

정부가 아파트 재건축 사업의 첫 관문인 안전진단 기준을 대폭 강화한다. 재건축을 해야 할 정도로 구조상 심각한 문제가 있는 지 따지는 안전성 평가의 비중을 20%에서 50%까지 높여 재건축 남발과 자원의 낭비를 막겠다는 취지다. 정부가 준공 후 부과되는 재건축 초과이익환수 부담금(최대 8억4,000만원)을 예고한 데에 이어 재건축 사업의 시작인 안전진단 기준까지 옥죄면서 재건축 사업은 사실상 모든 과정에서 규제가 강화되는 양상이다. 집값 급등의 주범인 재건축 시장에 제동을 걸겠다는 정부의 강력한 의지다.

국토교통부는 20일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재건축 안전진단 기준 정상화 방안’을 발표했다. 김흥진 국토부 주택정책관은 “그 동안 안전진단 절차와 기준이 너무 완화된 탓에 재건축 사업 추진의 필요성을 결정하는 본래의 기능이 훼손되고 형식적인 절차로만 운영됐다”며 “더 이상의 부작용을 막기 위해 과도하게 완화된 규정을 정상화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선 재건축 안전진단 평가항목별 가중치에서 구조안전성 항목의 비중이 대폭 높아진다. 현재 안전진단 평가항목별 가중치는 구조안전성 20%, 주거환경 40%, 시설노후도 30%, 비용분석 10% 등으로 구성돼 있다. 그러나 앞으로는 구조안전성이 50%로 높아지는 반면 주거환경은 15%로 축소된다. 시설노후도 항목도 25%로 조정된다.

구조안전성 비율은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5년 40%에서 20%로 크게 낮아졌다. 안전에 문제가 없어도 층간 소음이나 에너지효율 등 주거환경 평가를 통해 주거 여건이 불편하다고 판단되면 재건축이 가능하게 된 계기다. 이후 대부분의 재건축 추진 단지는 통상 3,4개월의 예비ㆍ정밀 진단을 거쳐 무리 없이 안전진단을 통과하곤 했다.

그러나 이번에 구조안전성 비율이 노무현 정부 시절(2006년) 수준인 50%로 다시 높아지면서 구조적으로 안전에 큰 결함이 없는 한 재건축 사업은 상당히 어려워질 전망이다. 시장에선 재건축 사업의 성패를 결정하는 첫 단추인 안전진단 문턱을 높인 것은 재건축 연한을 상향 조정하는 것보다 더 강력한 규제란 평가도 나온다. 재건축 연한을 채운다고 해도 건물에 구조상 위험이 없다면 재건축을 추진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다만 주거환경 항목에서 최하 등급인 E등급을 받게 되면 다른 평가항목과는 상관없이 곧 바로 재건축할 수 있도록 예외조항을 뒀다. 국토부 관계자는 “주차공간이 극단적으로 부족하거나 층간소음이 매우 심각한 상태라면 구조적으로 안전해도 재건축할 수 있도록 한 것”이라며 “E등급은 100점 만점에 20점 이하를 받는 수준으로 실제 사례는 많지 않다“고 말했다.

안전진단 판정 결과 중 ‘조건부 재건축’의 실효성도 강화된다. 통상 재건축 단지가 안전 진단을 받을 경우 100점 만점에 55점(A~C등급)을 넘으면 재건축을 할 수 없고 유지ㆍ보수만 가능하다. 30~55점(D등급)이면 조건부 재건축, 30점 미만(E등급)이면 재건축 판정을 받는다. 조건부 재건축은 아파트를 허물고 다시 지어야 할 치명적 결함은 없지만 그냥 두기도 애매한 상태다. 이 경우 지자체장은 지역 여건과 주민 여론 등을 고려해 재건축 시기를 조정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동안 조건부 재건축 판정을 받은 단지 대부분은 시기 조정 없이 곧바로 재건축 사업을 추진해 왔다. 실제로 2015년 이후 안전 진단을 받은 아파트의 96%가 조건부 재건축 판정을 받고도 재건축이 진행됐다. 유지ㆍ보수 판정을 받은 아파트는 2%에 불과했다. 조건부 재건축은 사실상 재건축 판정이었던 셈이다.

이에 국토부는 앞으로 조건부 재건축 판정을 받은 경우 시설안전공단 등 공공기관의 적정성 검토를 거치도록 의무화하기로 했다. 시장ㆍ군수가 안전진단 시행 여부를 결정하는 단계인 ‘현지조사’도 한국시설안전공단이나 한국건설기술연구원 등 전문기관이 참여해 조사의 전문성과 객관성을 높일 수 있도록 했다.

안전진단 이전 단계에서 지자체가 아파트의 안전진단 시행 여부를 판단하는 ‘현지조사’에도 공공기관이 참여하게 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현재 현지조사는 관할 지자체 공무원이 현장을 육안으로 살피거나 설계도서를 검토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어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았다. 이에 따라 시설관리공단 등 전문가가 함께 현장조사를 할 수 있는 근거조항은 만든 것이다. 다만 의무사항은 아니다. 이와 함께 국토부는 포항 지진 등을 감안해 이미 안전상 문제가 확인된 건축물은 추가 안전진단 없이 재건축을 추진하도록 허용하기로 했다.

국토부는 강화된 재건축 안전진단을 반영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개정안’과 ‘안전진단 기준 개정안’을 21일 입법ㆍ행정 예고할 예정이다. 이르면 3월 말 개정안이 시행된 후 처음으로 안전진단을 의뢰하는 단지부터 개정 기준이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시장ㆍ군수의 현지조사를 통해 안전진단 실시가 결정됐다 하더라도 새 기준 시행일까지 안전진단 의뢰가 이뤄지지 않았다면 강화된 기준의 적용을 받는다.

개정된 안전진단 기준이 시행되면 재건축 사업이 ‘첫 단추’인 안전진단부터 이전보다 훨씬 어려워지고 수익성도 떨어지게 되는 효과를 낳게 된다. 국토부는 이미 집값 급등의 주범을 강남권 재건축 시장으로 보고 재건축 분양신청 단계에서 주택도시보증공사(HUG)를 통한 분양가 규제와 관리처분계획인가 시 외부 공공기관 검증 절차를 의무화한 바 있다. 또 착공에 앞서 지자체를 통해 이주시기를 조정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준공 후에는 재건축 초과이익환수 부담금도 부과한다. 재건축 시장으로 몰리고 있는 투기 수요를 차단하기 위해 사실상 재건축 사업 전 과정에서 전방위 압박에 나선 것이다.

김현미 국토부 장관이 이미 운을 뗀 재건축 연한(현재 준공 후 30년)을 높이는 방안이 공식 발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국토부 관계자는 “재건축 가능 연한에 대해서도 현재 다각적으로 검토 중”이라며 “전문가와 지자체 등과 협의해 방안을 모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기중기자 k2j@hankookilbo.com(mailto:k2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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