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켈 후계자 찍었다..당 사무총장에 '미니 메르켈' 지명
메르켈도 사무총장 출신..인맥 쌓아 총리로 가는 루트
최저임금 찬성하고 동성결혼 반대해 좌우파 모두 호감
"기민당은 중앙의 정당" 메르켈의 유산 승계 적임자
우여곡절 끝에 연정을 성사시키고 4연임 시작을 앞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자신의 유력한 후계자를 지명했다. 지난해 총선 부진에 이어 장기간 연정 협상을 거치며 당내에서 ‘포스트 메르켈' 시대를 준비하자는 목소리가 나오던 시기다. 메르켈이 자신의 정치적 유산을 지켜줄 인물을 직접 골랐다는 평가가 나온다.
올해 55세인 크람프-카렌바우어는 프랑스 국경 근처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뒤 자를란트주 자르브뤼켄 대학에서 정치학과 법학을 전공했다. 그가 정치적 경력을 쌓는 동안 광산기술자인 남편 헬무트가 세 아이를 집에서 양육했다. 도시 주를 빼면 독일에서 가장 작은 주인 자를란트의 총리를 2011년부터 맡고 있다. 1981년 기민당에 입당했다.
주총리는 내각 장관과 같은 직급이지만 당 사무총장은 그런 공식 대우를 받지 않는 자리다. 하지만 마인츠대 융겐 팔터 교수는 “집권당 사무총장 자리는 연방 정계에서 경력을 쌓는데 결정적인 도약대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에 말했다. 네트워크를 쌓고 권력 기반을 다지며 당내 입지를 다질 수 있어서다.
메르켈 총리는 물론이고 대연정에 합의한 사회민주당의 새 대표인 안드레아 날레스 등 독일의 주요 정치인들은 모두 소속 정당의 사무총장을 거쳤다. 그만큼 메르켈의 뒤를 이어 독일 총리직에 오를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남서부 국경 주에 있던 크람프-카렌바우어를 독일 정계의 조정실로 메르켈이 불러낸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다고 FT는 소개했다. ‘AKK’라는 약칭으로 불리는 크람프-카렌바우어는 기민당 내에서 좌파와 우파 모두에게 두루 호감을 얻고 있다.
좌파는 그가 최저임금과 노동인권을 지지해온 것을 높게 평가한다. 우파는 그가 전통적인 가족관을 옹호하고 동성결혼에 반대한 것에 흡족해하고 있다. 그는 지난해 터키의 개헌투표와 관련해 해외 찬성표를 모으려고 터키 정치인들이 독일에서 캠페인을 벌이겠다고 하자 단호하게 반대하기도 했다. 우파가 좋아하는 입장을 취한 것이다.
대립하는 입장을 화합시키는 능력이 빼어난 점도 메르켈이 그를 선호하는 요소라고 FT는 전했다. 자를란트주는 석탄과 철강업이 기반인 산업지대였지만 공장이 문을 닫고 실업자가 급증하며 ‘서독의 빈민촌'으로 전락했다. 하지만 크람프-카렌바우어는 대규모 부채를 줄이기 위해 가혹한 재정삭감을 시행하면서도 노조나 비정부기구 측과 밀접하게 대화하며 충격을 줄였다. 지역 신문 자르브뤼커차이퉁은 “그는 언제나 모두를 협상의 자리에 포함하려 노력했고, 그 결과 반발이 줄었다"고 평했다. 지난해 지지율 조사에서 그는 80%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 같은 경쟁력은 지난해 선거에서 2012년보다 5.5%포인트 높은 40.7%의 득표율을 거두며 해당 주에서 기민당이 승리하게 만든 원동력이 됐다. 당시 베를린은 크람프-카렌바우어의 성과에 깜짝 놀랐고, 그는 곧바로 떠오르는 인물 대접을 받았다.
포스트 메르켈의 선두주자로 주목을 받게 된 크람프-카렌바우어는 당을 좌우 어느 쪽으로 움직일 것이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는 “그런 편협한 내용에는 관심이 없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당 재건 논의 과정에 모두를 포함시키겠다. 기민당은 중앙의 정당으로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 차례 임기 동안 우파 정당 총리로서 좌파 정책을 발 빠르게 수용하면서 오늘날의 중도적 색채를 만들어온 메르켈 총리는 크람프-카렌바우어 옆에서 그를 바라보며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런던=김성탁 특파원 sunty@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