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켈 후계자 찍었다..당 사무총장에 '미니 메르켈' 지명

김성탁 입력 2018. 2. 21. 04:24 수정 2018. 2. 21. 06:32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55세 여성 크람프-카렌바우어 자를란트주 총리 발탁
메르켈도 사무총장 출신..인맥 쌓아 총리로 가는 루트
최저임금 찬성하고 동성결혼 반대해 좌우파 모두 호감
"기민당은 중앙의 정당" 메르켈의 유산 승계 적임자

우여곡절 끝에 연정을 성사시키고 4연임 시작을 앞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자신의 유력한 후계자를 지명했다. 지난해 총선 부진에 이어 장기간 연정 협상을 거치며 당내에서 ‘포스트 메르켈' 시대를 준비하자는 목소리가 나오던 시기다. 메르켈이 자신의 정치적 유산을 지켜줄 인물을 직접 골랐다는 평가가 나온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왼쪽)가 당 사무총장에 자신의 정치적 유산을 계승할 적임자인 안네그레트 크람프-카렌바우어 자를란트주 총리를 지명했다. '미니 메르켈'로 불린다. [AP=연합뉴스]
메르켈 총리는 지난 19일(현지시간) 자신이 속한 기독민주당 사무총장에 안네그레트 크람프-카렌바우어 자를란트주 총리를 지명했다. 크람프-카렌바우어는 ‘미니 메르켈'(작은 메르켈)로 불릴 정도로 메르켈의 정치적 성향과 잘 맞는 인물이다. 그는 메르켈 총리의 최측근인 페터 타우버의 후임으로 오는 26일 전당대회에서 정식 선출된다.

올해 55세인 크람프-카렌바우어는 프랑스 국경 근처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뒤 자를란트주 자르브뤼켄 대학에서 정치학과 법학을 전공했다. 그가 정치적 경력을 쌓는 동안 광산기술자인 남편 헬무트가 세 아이를 집에서 양육했다. 도시 주를 빼면 독일에서 가장 작은 주인 자를란트의 총리를 2011년부터 맡고 있다. 1981년 기민당에 입당했다.

주총리는 내각 장관과 같은 직급이지만 당 사무총장은 그런 공식 대우를 받지 않는 자리다. 하지만 마인츠대 융겐 팔터 교수는 “집권당 사무총장 자리는 연방 정계에서 경력을 쌓는데 결정적인 도약대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에 말했다. 네트워크를 쌓고 권력 기반을 다지며 당내 입지를 다질 수 있어서다.

메르켈 총리는 물론이고 대연정에 합의한 사회민주당의 새 대표인 안드레아 날레스 등 독일의 주요 정치인들은 모두 소속 정당의 사무총장을 거쳤다. 그만큼 메르켈의 뒤를 이어 독일 총리직에 오를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남서부 국경 주에 있던 크람프-카렌바우어를 독일 정계의 조정실로 메르켈이 불러낸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다고 FT는 소개했다. ‘AKK’라는 약칭으로 불리는 크람프-카렌바우어는 기민당 내에서 좌파와 우파 모두에게 두루 호감을 얻고 있다.

좌파는 그가 최저임금과 노동인권을 지지해온 것을 높게 평가한다. 우파는 그가 전통적인 가족관을 옹호하고 동성결혼에 반대한 것에 흡족해하고 있다. 그는 지난해 터키의 개헌투표와 관련해 해외 찬성표를 모으려고 터키 정치인들이 독일에서 캠페인을 벌이겠다고 하자 단호하게 반대하기도 했다. 우파가 좋아하는 입장을 취한 것이다.

메르켈 총리는 특히 우파로부터 너무 좌향좌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에 따라 메르켈은 이를 상쇄하면서도 자신의 노선을 이해하고 지켜줄 인물을 후임으로 지명하는 ‘신의 한 수'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지난해 3월 자를란트주 선거를 승리로 이끈 안네그레트 크람프-카렌바우어 총리에게 꽃다발을 주고 있따. [EPA=연합뉴스]
크람프-카렌바우어는 이런 측면에서 좌우 진영을 화합시킬 적임자로 낙점을 받은 것이다. 그는 메르켈이 가장 큰 공격을 받는 난민 포용 정책에 찬성했었다. 동시에 난민들이 독일의 가치관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계속 강조해왔다. 겉모습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난민들이 범죄를 저질러 독일인들이 반감을 표하자 실제 나이를 측정할 수 있는 엑스레이 테스트를 일부 난민을 대상으로 시행하는 결단력을 보였다.

대립하는 입장을 화합시키는 능력이 빼어난 점도 메르켈이 그를 선호하는 요소라고 FT는 전했다. 자를란트주는 석탄과 철강업이 기반인 산업지대였지만 공장이 문을 닫고 실업자가 급증하며 ‘서독의 빈민촌'으로 전락했다. 하지만 크람프-카렌바우어는 대규모 부채를 줄이기 위해 가혹한 재정삭감을 시행하면서도 노조나 비정부기구 측과 밀접하게 대화하며 충격을 줄였다. 지역 신문 자르브뤼커차이퉁은 “그는 언제나 모두를 협상의 자리에 포함하려 노력했고, 그 결과 반발이 줄었다"고 평했다. 지난해 지지율 조사에서 그는 80%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 같은 경쟁력은 지난해 선거에서 2012년보다 5.5%포인트 높은 40.7%의 득표율을 거두며 해당 주에서 기민당이 승리하게 만든 원동력이 됐다. 당시 베를린은 크람프-카렌바우어의 성과에 깜짝 놀랐고, 그는 곧바로 떠오르는 인물 대접을 받았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오른쪽)와 안네그레트 크람프-카렌바우어 자를란트주 총리. [AP=연합뉴스]
메르켈 총리는 크람프-카렌바우어를 지명한 자리에서 “오랫동안 자를란트 주총리의 팬이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최근 몇주 동안 메르켈은 어떻게 그를 정계에서 더 큰 역할을 맡게 할지 구상했다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포스트 메르켈의 선두주자로 주목을 받게 된 크람프-카렌바우어는 당을 좌우 어느 쪽으로 움직일 것이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는 “그런 편협한 내용에는 관심이 없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당 재건 논의 과정에 모두를 포함시키겠다. 기민당은 중앙의 정당으로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 차례 임기 동안 우파 정당 총리로서 좌파 정책을 발 빠르게 수용하면서 오늘날의 중도적 색채를 만들어온 메르켈 총리는 크람프-카렌바우어 옆에서 그를 바라보며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런던=김성탁 특파원 sunty@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