쿨하고 담담하게.. 죽음의 문화가 변한다

변희원 기자 2018. 2. 21.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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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시대 '문화적 화두' 된 죽음.. 영화·웹툰·출판계서 다루며 흥행
우주장·버섯수의, 장례문화도 변해
"죽음을 염두에 둔 삶이 더 행복"

올겨울 극장가의 승자는 '신과 함께―죄와 벌'과 애니메이션 '코코'였다. 각각 1440만, 343만 관객을 동원했다. 둘 다 죽음과 사후(死後) 세계를 다뤘다. 웹툰 '죽음에 관하여'는 조회 수 1위로 연재를 마쳤다가 독자 요청으로 재연재를 시작했다. 출판계에서도 '어떻게 죽을 것인가' '숨결이 바람 될 때'에 이어 서울대병원 허대석 교수가 펴낸 '우리의 죽음이 삶이 되려면'이 큰 호응을 얻었다. '개똥밭을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속담이 있을 만큼 삶에 강한 애착을 보였던 우리 사회에서 죽음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있다.

◇우주장, 서재형 납골당을 아십니까?

일본 대기업 고마쓰의 전(前) 사장 안자키 사토루(81)는 지난해 11월 담낭암 진단을 받은 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40여년 동안 신세 진 이들, 퇴임 뒤 여생을 같이 즐긴 이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며 생전 장례식을 열겠다고 밝혔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최근 "출생이나 결혼처럼 죽음도 개인 취향에 따라 계획하는 유행이 생겼다"고 보도했다. 북유럽에서는 친환경 장례식이 유행이다. 종이나 대나무로 관을 만들거나 우주에서 유해를 뿌리는 '우주장'이 그 예다. 2013년 '죽음을 위한 디자인' 전시회 1위를 한 한국 교포 예술가 이재림씨 작품은 수의에 버섯 포자를 넣어 시신이 자연 분해되도록 했다. 영국에는 취미에 따라 악기나 골프공 같은 그림을 관에 붙여주는 맞춤 업체가 생겼다. 미국에는 관에 원하는 문양을 그려주는 아티스트들이 인기다. 최근 분당에 세워진 한 납골당엔 고풍스러운 서재와 카페가 있다. 고인의 유품과 장례식 방명록을 책처럼 만들고 유족이 이를 카페에서 볼 수 있게 했다.

풍선에 유해를 담아 우주로 보내 뿌리는‘우주장’. /Mesoloft

한국에선 지난 4일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된 것을 계기로 변화가 눈에 띄게 늘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자는 20일 현재 1만191명. 아직 초기 단계라 시행착오가 많지만 '연명 치료 중단'에 대한 공론의 장이 열렸다. '웰다잉' 교육도 활발하다. 최영숙 대한웰다잉협회장은 "올해 1월 웰다잉 강좌 수강생이 지난해 동기 대비 열 배 정도 늘었다. 수강생 연령대도 40~60대까지 확대됐다"고 전했다.

◇죽음을 염두에 둔 삶이 행복하다

필리프 아리에스가 쓴 '죽음의 역사'에 따르면 죽음을 금기시하게 된 건 20세기 초 급격한 산업사회에 돌입한 미국에서 시작했다. 풍요에 대한 열망이 커질수록 삶은 칭송받고, 죽음은 저주받는다. 사회에서 죽음을 기피하니 사람들은 집이 아닌 병원에서 홀로 죽는다. 한국 병원 내 임종 비율도 70% 이상으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영국 런던 북부에서 열린‘장례 박람회’에서 관람객들이 재생지로 만든 관‘에코팟(Ecopod)’을 보고 있다. 최근 북미와 유럽에서는 땅속에서 분해가 잘되는 친환경 관이 인기를 끌고 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죽음에 대한 태도가 변화한 것은 고령화와 연관 있다. 일본에서는 죽음을 준비하는 문화 '종활(終活·슈카쓰)'이 이미 10조원대 산업으로 성장했다고 NHK가 보도했다. 배우자나 자식 없이 노후를 보내는 노인이 많아진 것도 이유다. 미리 장례 절차나 재산, 주변 정리를 준비해 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북미와 유럽에서 인기를 끈 책 'The Art of Swedish Death Cleaning'('내가 내일 죽는다면')에 따르면 죽음을 염두에 두고 살아가는 것은 삶에 활기를 준다. '데스 클리닝'이란 죽음을 대비해 살면서 미리미리 물건을 버리거나 기부하는 것을 말한다.

'신과 함께'나 '코코'에서도 관객들은 죽음의 긍정적인 면을 봤다. '코코'를 본 한 20대 남성 관객은 "차갑게만 느껴졌던 죽음이 의외로 따뜻했다. 때로는 죽음이 삶을 다독일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감상평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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