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메르세데스-벤츠 vs BMW..승부 낼 수 없는 이유

오현주 입력 2018.02.21. 00:12 수정 2018.02.21.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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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개 글로벌 명품 브랜드 '닮은 꼴 힘' 분석
기술·디자인·마케팅·가치..4개 유전자 있어
'생존 정글서 목숨 걸고 지켜낸 족보'로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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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불멸의 법칙
허두영|296쪽|들녘
명품을 명품답게 만든 데는 4가지 유전자가 작용한다는 게 저자 허두영의 주장이다. 명품은 우월한 성분을 품고 태어났다는 것인데, ‘압도적인 기술’과 ‘혁신적인 디자인’은 당연하고 ‘선도적인 마케팅’과 ‘보편적인 가치’까지 얹어 진화하더라고 했다(이미지=이데일리 디자인팀).

[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퀴즈 하나 풀고 시작하자. 세계 최초로 자동차 로드쇼를 시원하게 벌인 이는 누구? 도둑이다. 독일 남서부 만하임에 사는 젊은 주부와 그이의 두 아들. 그런데 신상을 캐보니 어처구니가 없다. ‘벤츠’를 만든 카를 벤츠(1844∼1929)의 부인 베르타 벤츠가 아닌가 .

자초지종은 이랬다. 1888년 ‘벤츠 여사’는 남편에게 ‘친정 간다’는 메모를 남기고 가출을 감행했다, 남편 차를 끌고. 운전이라곤 해본 적도 없다. 게다가 어린 두 아들까지 태운 상태. 연료가 떨어지자 근처 공업용 가솔린을 채워 넣었다. 냉각수가 필요하면 시냇물을 넣고, 점화선이 엉키면 속옷고정끈으로 바로잡고, 브레이크가 닳자 구두 가죽밑창을 덧대고. 이날 106㎞쯤 되는 거리를 가는 데 무려 12시간이 걸렸다는데, 어지간히 시선을 끌었나 보다. 그새 ‘세 도둑’이 이상한 괴물을 타고 거리를 활보했다는 기사가 신문에 인쇄됐으니. 최초의 자동차 장거리 여행, 최초의 여성운전자, 최초의 현장정비, 최초의 도로교통법 위반 등.

덕분에 자동차 개량에만 빠져살던 남편은 순식간에 대전환을 맞는다. 나무바퀴 세 개로 굴러가는 ‘말 없는 마차’가 왕복 194㎞를 주행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판매요청이 밀려든 거다. 기술에 집착해 판매를 재던 남편의 우유부단에서 가산탕진의 위기를 막아낸 아내의 지상 최대 ‘로드쇼’. 바로 벤츠 역사의 시작이었다.

여기서 대충 끝났다면 130년 뒤인 오늘까지 이어지는 드라마는 없다. 알다시피 ‘메르세데스-벤츠’는 19∼20세기를 털어 자동차부문에선 가장 혁신적이라 할 세 인물의 ‘합체’다. 벤츠의 ‘브랜드’가 고틀리프 다임러가 만든 로고 ‘세 꼭지 별’을 달고 엔진디자이너 빌헬름 마이바흐가 탄생시킨 ‘메르세데스’로 주행. 이 구조를 다져둔 뒤 메르세데스-벤츠는 ‘최초’ 행진을 이어간다. 안전띠와 에어백에, 충격흡수장치까지. “최고가 아니면 만들지 않는다”는 다임러의 호기가 세상을 뒤집은 것이다.

굳이 과거사를 장황하게 들춰낸 건 ‘명품’에 혹해서다. 30여년 간 과학저널리스트로 활약했던 저자가 헤집은 ‘특별한’ 명품세계가 궁금했다. 루이비통, 샤넬, 에르메스, 구찌, 버버리, 카르티에 등 전통명품에다가 금속공예 알레시, 화장품 시세이도, 컴퓨터 애플, 오토바이 할리데이비슨까지 붙였다. 저자가 보려 한 건 누구나 알고 싶어하는 바로 그거다. 수없이 출현한 유사상품에도 꼿꼿할 수 있었던 건? 세계의 부와 명성을 싹쓸이한 요소는? 입은 비싼 사치품이라 비난하지만 끝내 눈을 돌리지 못한 건?

의외로 저자의 답은 하나의 가지에 매달려 있다. 명품은 우월한 성분을 품고 태어났다는 것인데. 다시 말해 성공요인을 변수로 유전자검사를 했더니 DNA가 딱 일치하더란 거다.

△명품에도 유전자 있다?…명품 망하지 않는 이유

혈통이 달랐다. 출신배경도 달랐다. 그래서 태생이 다른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형제 간으로 판명된 거다. 라이벌관계인 메르세데스-벤츠와 BMW 얘기다.

‘말을 대체하는 장치’가 초기 벤츠를 요약한다면, ‘전투기의 심장을 단 머신’은 BMW다. 실제 1차대전 당시 BMW는 항공전에 투입한 전투기의 엔진을 땅으로 끌어내렸다. 처음은 자동차 대신 오토바이였다. 권투선수들이 주먹을 교환하듯 피스톤을 움직인다는 ‘박서엔진’을 장착한 오토바이 R32를 1923년 내놨다. 그 뒤로 6년 뒤에야 BMW는 비로소 첫차를 선보인다. 인정을 받은 건 자동차경주대회에서다. 1933년 BMW 328이 시속 166㎞로 우승하며 대접받기 시작했다. 그런데 전투기엔진이 BMW의 전유물은 아니었다. 메르세데스-벤츠 역시 세상에서 가장 빠른 슈퍼카를 만들자고 전투기에서 엔진을 떼어냈다. 1939년 최고 시속 750㎞짜리로 제작한 T80이다.

비단 엔진 때문만은 아니다. 저자는 이들의 형제관계를 은근히 드러내는데, 근거는 역시 DNA다. 명품에는 4가지 유전자가 있다고 했다. ‘압도적인 기술’과 ‘혁신적인 디자인’은 당연하고, ‘선도적인 마케팅’과 ‘보편적인 가치’까지 얹어야 한다는 거다. 왕좌를 놓고 엎치락뒤치락하는 메르세데스-벤츠와 BMW가 끝까지 승부를 내기 어렵다면 그 까닭은 여기서 찾으면 쉽다. 브랜드는 다르다지만 잘빠진 디자인이 품은 엔진이, 획기적인 마케팅이 깔아둔 가치가 이토록 닮은 데야. 유전자가 공진화하면서 진화를 주도한다는 건 같은 브랜드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닌 거다.

△한 가지 요인으로 일가 이룬 브랜드는 없다

저자의 배경 때문인지 책은 상당 부분 기술에 기울어 있다. 우선 명품 브랜드의 창업자 대부분이 기술자 출신인 데 주목했다. 루이 비통은 목수였고 가브리엘 샤넬은 재봉사였다. 티에리 에르메스는 마구상, 루이 카르티에는 금속세공사, 토머스 버버리는 포목상이었다는 거다. 결국 기술 없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창업성공기는 없다는 얘기다.

틀린 말은 아니다. 루이비통은 텀블러 잠금장치를 개발해 안전과 독창성 둘 다를 겨냥했다. 살바토레 페리가모는 신발바닥에 장심을 받쳐 몸무게 압력을 잡아냈다. 샤넬은 전쟁통에 저지란 소재를 찾아내 여성을 코르셋에서 빼냈다. 그럼에도 저자는 달랑 기술 하나로 일가를 이루진 못한다고 못 박는다. 기술을 예술로 바꾸는 디자인을 들고 명품을 알아보는 계층을 공략해 스토리텔링을 만들어내는 가치를 전달했단 거다. 한마디로 이거다. “명품 유전자는 호사스런 궁전에서 극비리에 전승하는 가문의 암호가 아닌 생존의 정글에서 목숨 걸고 지켜낸 족보다.”

△제1법칙 ‘고인 물처럼 보이되 끊임없이 흐를 것’

책은 명품의 지난한 세월을 풀어냈다. 고달팠던 과거사를 들춰내며 그들도 힘들었다고 공감대를 자극한다. 가격으로 기죽이는 공식을 제외한 접근도 선방했다. 하지만 고심해서 뽑았을 4가지 유전자가 명품만의 DNA라는 걸 똑 부러지게 빼내는 데는 영 허술했다. 치열한 승부세계가 바꿔놓는 명품시장을 살피는 데도 인색했다. 가령 우아하고 고상한 디자인에 알록달록 색을 넣고, 죽어도 포기 안 할 듯했던 매장도 모바일에 양보하는 최근의 새로운 전략 말이다.

어쨌든 중요한 한 가지는 관철했다. 구찌가 내세운 ‘가격은 잊어도 품질은 기억한다’, 버버리가 믿은 ‘인생에서 좋은 건 변하지 않는다’는 철학 말이다. 빙 돌았지만 명품의 제1법칙으로 향하는 길은 냈다. 고인 물처럼 보이되 끊임없이 흐를 것!

오현주 (euanoh@e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