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강은 멀어졌지만..한국 아이스하키 이만큼 자랐다

김원 2018. 2. 20.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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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안진휘가 20일 강원도 강릉하키센터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아이스하키 남자 예선 플레이오프 대한민국 대 핀란드의 경기에서 골을 성공시킨 후 기뻐하고 있다. 2018.2.20/뉴스1
2014년 소치 겨울올림픽 동메달 팀 핀란드도 쩔쩔맸다. 하마터면(?) 대이변이 일어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언더독(승리 가능성이 낮은 약자)의 반란'을 꿈꾼 한국 남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의 올림픽 첫 도전이 아쉽게 막을 내렸다.

백지선(51·영어명 짐 팩) 감독이 이끄는 한국 대표팀은 20일 강릉하키센터에서 열린 핀란드(세계 4위)와의 평창올림픽 남자 아이스하키 8강 플레이오프에서 2-5(0-1, 2-2, 0-2)으로 패했다.

대한민국 브락 라던스키가 20일 강원도 강릉하키센터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아이스하키 남자 예선 플레이오프 대한민국 대 핀란드의 경기에서 첫번째 골을 성공시키고 있다. 2018.2.20/뉴스1
1피리어드 4분 42초 만에 선제골을 내준 한국은 2피리어드 초반 2골을 더 내주며 끌려갔다. 이대로 끝낼 수는 없었다. 점수가 0-3까지 벌어지자 한국 선수들은 독이 바짝오른 독사처럼 눈빛부터 달라졌다. 2피리어드 10분 6초 '1호 귀화 선수' 브록 라던스키(35)의 골에 이어 2분 만에 안진휘의 추가골이 터졌다.

안진휘의 골은 '사이다'처럼 시원했다. 안진휘는 신상훈의 패스를 그대로 내려쳐 골네트를 강하게 흔들었다. '핀란드 유학파'가 합작한 그림같은 골이었다. 지난 2013년 대한아이스하키협회는 핀란드 프로팀(키에코 완타)의 지분을 확보했고, 올림픽 상비군 선수들을 핀란드에 파견했다. 신상훈과 안진휘는 당시 핀란드 프로젝트의 주축 멤버였다.

한국은 연달아 골을 먹고 당황한 핀란드를 더 강하게 몰아부쳤다. 핀란드 골리 미코 코스키넨(24)은 한국의 소나기 슛을 쳐내기 급급했다. 흥분한 핀란드 사미 레피스토(34)는 2피리어드 종료 부저가 울리자 한국의 마이클 스위프트를 강하게 밀치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올림픽] 포효하는 태극전사들 (강릉=연합뉴스) 김형우 기자 = 20일 오후 강릉시 강릉하키센터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남자 아이스하키 예선 대한민국 대 핀란드의 경기. 대표팀 라던스키가 핀란드를 상대로 첫골을 뽑아내자 동료들과 함께 기뻐하고 있다. 2018.2.20 vodcast@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하지만 한국은 바짝 오른 기세를 3피리어드까지 이어가지 못했다. 3피리어드 7분 20초 핀란드 유소 코스키란타(33)에게 네 번째 골을 내줬고, 더 이상 추격하지 못했다.

한국은 15~18일 열린 조별리그 A조 경기에서 체코(1-2), 스위스(0-8), 캐나다(0-4)에 잇달아 졌다. 4전 전패로 올림픽을 마무리했다. 사실 세계 21위 한국이 10위권 이내 팀들을 상대로 8강에 오르는 건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하지만 0-8로 대패한 스위스전을 제외하고는 상대 팀도 놀랄만큼 인상적인 경기를 펼쳤다. 경기 초반 실점을 하고도 포기하지 않고 경기가 끝날 때까지 상대를 괴롭혔다. 조별리그 1차전에서 한국에 고전한 체코의 요세프 얀다치 감독은 "한국이 정말 수준 높은 경기를 펼쳤다"며 놀라워했다. 마지막 핀란드전에서는 조별리그 3경기 때보다 훨씬 나은 경기력을 선보였다.

2014년 7월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 스타 플레이어 출신인 백지선 감독이 부임하기 전까지 한국은 철저한 '하키 변방'이었다. 국제아이스하키연맹(IIHF)은 당초 한국이 올림픽에서 망신을 당할 수 있다는 우려에 자동출전권을 주지 않으려 했다.

[올림픽] 와~추가골이다 (강릉=연합뉴스) 조정호 기자 = 20일 오후 강릉시 강릉하키센터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남자 아이스하키 8강 진출을 가리는 플레이오프 한국 대 핀란드 경기. 한국 안진휘(27번)이 두번째 추가골을 터뜨리고 동료들과 하이파이브 하고 있다. 뒤이어 알렉스 플란트(44번) 이영준(13번) 오현호(7번) 등도 하이파이브하고 있다. 2018.2.20 ccho@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하지만 백 감독이 팀을 맡으며 환골탈태했다. 골리 맷 달튼(32)을 비롯한 7명의 귀화 선수가 대표팀의 뼈대를 세웠다. 백지선 감독은 선수들에게 '꿈을 크게 가져라(Dream Big)'며 독려했다. 강한 상대를 만나도 '주눅들지 말고 오히려 당당하게 맞서라'고 소리쳤다. 매년 여름 두 달 가량 지옥 훈련으로 강한 체력을 키웠다. 선수들은 "감독님 말대로 하면 안되는 일이 없다"며 백 감독을 신뢰했다. 한국은 지난달 우크라이나 세계선수권대회 디비전1 그룹A(2부리그)에서 깜짝 준우승하며 탑디비전에 진출했다. 16팀만 참가하는 세계 최고의 무대에 이름을 올렸다.

한국 선수들은 부족한 기술을 투지로 채웠다. 주장 박우상(33)은 스위스전에서 스케이트 날에 오른 뺨을 베이는 부상을 당했다. 수비수 오현호(32)는 캐나다 선수가 휘두른 하키스틱에 맞아 앞니 3개가 부러져 피를 쏟았다. 경기가 끝난 뒤 가쁜 숨을 몰아쉬는 선수들의 얼굴은 상처투성이었다. 핀란드전에서도 선수들은 몸을 날려 날아오는 퍽을 막았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겠다"고 자신하던 백지선 감독은 비록 목표를 이루지 못했지만, 세계 아이스하키계에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패배가 익숙했던 선수들도 세계 강호들과 대등한 경기를 펼치며 경험과 자신감을 쌓았다.

강릉=김원 기자 kim.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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