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GM 사태, 어디로](1)"카톡으로 '폐쇄' 통보 뒤 나가라..쌍용차 노동자 마음 이해"

군산 | 최미랑 기자 2018. 2. 20.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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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군산공장 직원들의 눈물

한국지엠이 군산공장 5월 말 폐쇄를 재확인한 20일 오전 한국지엠 군산공장 인근의 한 협력업체가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9일 오후 전북 군산시 소룡동의 한국지엠 군산공장. 정문 출입은 통제됐고 드나드는 사람도 차도 없었다. 직원용 주차장은 텅 비었고 인근의 플라스틱공장 돌아가는 소리만 윙윙 울려 퍼졌다. 1997년 세워진 군산공장은 설을 앞둔 지난 8일 가동을 멈췄다.

한국지엠은 5월 말까지 이 공장 문을 완전히 닫겠다고 지난 13일 발표했다. 시내 곳곳에는 ‘피눈물로 지켜온 군산공장 폐쇄 결정을 취소하라’ ‘군산공장 폐쇄가 웬 말이냐? 즉각 정상 가동하라’라고 적힌 현수막들이 내걸려 있었다.

■ ‘카톡’으로 통보받은 공장 폐쇄

ㄱ씨(39)가 마지막으로 공장에서 일한 것은 지난 6일이었다. 기자를 만난 그는 “집에서 아이들을 돌보다 나왔다”고 했다. 올해 학교에 들어가는 둘째는 요즘 그가 집을 나서면 “아빠, 회사엔 왜 가”라고 묻는다. 1년이 넘도록 아빠가 한 달에 대엿새만 회사에 나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장에 다시 돌아가지 못하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지난 13일 오전 잠에서 깼을 때 카카오톡 단체대화방에 장문의 메시지가 와 있었다. 사측이 보낸 것을 노조 대의원이 공유한 것이었다. ‘중요한 결정’ ‘중대한 조치’ 같은 글자들이 눈을 스쳐 갔다. 글줄을 읽어내려가다 입에서 ‘악’ 소리가 나왔다. ‘회사는 5월 말까지 군산공장의 차량 생산을 중단하고 공장을 폐쇄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설마 하며 포털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이미 메인화면에 뉴스가 떠 있었다. 일하는 이들에겐 언질 한번 없던 것이었다.

한국지엠 군산공장 노동자 ㄱ씨(39)가 지난 13일 오전 휴대전화 카카오톡 단체대화방을 통해 받은 사측의 공장 폐쇄 결정 통보 메시지. 최미랑 기자

다음주 곧바로 사측은 희망퇴직 신청 서류를 전 직원에게 보냈다. 2000년 이후 입사자에게는 2년치 연봉을 준다고 했다.

제너럴모터스(GM)는 2대주주인 산업은행을 통해 정부에 약 3조원이 드는 증자에 참여해달라고 요청하면서, 2월 말까지를 결정 시한으로 제시했다. 군산뿐 아니라 부평·창원 공장마저 철수할 수 있다는 시그널을 보낸 것이다.

희망퇴직 신청 마감일은 다음달 2일이다. 정부가 어떻게 대응할지, 회사가 어떤 방향으로 나올지 모든 것이 안갯속이다. 그런 상태에서 노동자들은 각자 외로운 결정을 해야 한다. 스스로 ‘스트레스를 안 받는 성격’이라고 여겨온 ㄱ씨지만 요즘엔 도통 잠이 오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2004년 한국지엠에 입사했다. 사내하청업체로 들어와 2년6개월을 일하다 2006년 정규직이 됐다. 고향 익산에서 고등학교를 나와 전주의 한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한 그는 자신이 차 만드는 일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졸업을 앞두고 작은 건축설계소에서 일을 해봤다. 월 150만원쯤 되는 월급은 나오다 말다 했다. ‘꿈보다 밥’이라는 말이 공감됐다. 군산에 와서 자동차 생산라인에 섰다. 일은 힘들었지만 월급이 또박또박 나왔다.

일이 많아 공장이 잘 돌아가던 시절이었다. 주야 2교대 근무가 돌고 토요일에도 꼬박 일했다. 바쁠 땐 눈치가 보여 잔업이든 특근이든 가리지 않고 했다. 그러다가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2008년 말부터 생산물량이 확 줄었다. 라인이 돌지 않는 날이 늘어갔다. 월급이 줄었지만 일이 워낙 고되었던 탓에, 쉬는 날이 많아지니 좋다는 생각까지 했다. 본사는 파산 위기를 잘 넘기는 듯했다. 내리막길로 치달은 것은 2013년 쉐보레 브랜드가 유럽에서 철수한 이후였다. 주로 유럽으로 수출하는 물량을 만들던 군산공장은 일감이 끊겼다.

GM은 유럽 판매망 철수 비용도 한국지엠에서 손실처리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 시절부터 몇 년 동안 정상적으로 근무한 기억이 없다. 본사는 생산물량을 군산에 배정하려 하지 않았다.

■ “쌍용차 사람들이 이해된다”

본사는 한국지엠이 ‘고비용 사업장’이라고 주장한다. 노동자들은 속이 탄다. 임단협 때 노조는 이미 몇 번이나 ‘임금이 중요한 게 아니니 일을 할 수 있도록 생산물량을 배정해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이런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귀족노조’라는 왜곡된 비난이 여론과 민심에서 노동자들을 멀어지게 만든다고 그는 생각한다.

“사내하청업체 직원들보다는 처우가 나았던 것이 사실이에요. 하지만 제가 쉽게 돈을 벌었던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지금은 일이 없지만, 전에는 정말 수명을 깎아 먹으면서 일을 했거든요.”

GM은 전 세계의 사업장을 경쟁시킨다. 국내에서도 똑같다. 돌이켜보면 부평과 군산, 창원의 공장을 놓고 교묘한 저울질이 계속됐다고 ㄱ씨는 말한다. 전국금속산업노조 지엠지부가 파업 찬반투표를 하면 투표율이 높은 곳에는 신차 물량이 배정되지 않는다는 소식이 돌곤 했다. 군산에서 일하다 부평으로 넘어간 이들은 “군산공장은 조만간 없어질 것”이라는 말을 전해왔다. 이쪽 물량이 줄면 저쪽은 일이 늘어나니 안심하는 것 같은 투였다. 어쩔 수 없이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걱정했던 일이 현실로 다가왔다. 이젠 군산뿐 아니라 부평 1·2공장도 통합하고 인원을 줄일 것이라는 소문이 돈다. ㄱ씨와 동료들은 그저 초조하다. 정확한 정보를 듣고 싶어도 들을 길이 없다. 희망퇴직을 신청할까 말까, 하루에도 수십 번 생각이 왔다 갔다 한다. 이 공장이 문을 닫고 다른 데에도 자리가 없으면 ‘낙동강 오리알’이 될까 두렵다.

“정부가 공적자금을 넣으면 저희는 좋죠. 그런데 사람들이 바보가 아니잖아요. 지금까지 행태로 보면 본사가 언제 또 철수하겠다고 나올지 모르고. 회사에서는 당장 이달 안에 남아있을지 떠날지를 결정하라는데,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요? 저희도 손해볼 것은 감수하고, 양보할 것은 양보해야겠지만….”

본사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부에 ‘압박용 카드’를 던졌다. 속절없이 나가떨어지는 건 라인에서 땀 흘리던 이들이다.

“쌍용차 사태 때, 회사가 그렇게 되니까 사람들이 이혼하고 자살하고 그랬잖아요. 그 사람들이 왜 그랬을까, 솔직히 전에는 잘 이해할 수 없었어요. 요즘 처음으로 그 마음이 이해가 가더라고요.”

■ ‘정규직’ 됐지만 돌아갈 곳은…

같은 날 ㄴ씨(50)는 군산공장 동문 옆 천막을 지키고 있었다. 그를 포함한 군산공장 사내하청 노동자 여덟 명이 정규직으로 인정하고 복직시켜 달라고 농성해온 지 그날로 967일째였다. ㄴ씨는 한 달에 네댓 번은 여기서 잠을 잔다.

김제 출신인 그는 익산에서 일하다 직종을 바꿔 2003년 지엠 공장에 처음 왔다. 처음에 레조 생산라인에서 일하다 나중에는 크루즈, 올란도를 만들었다. 사내하청업체와 계약했지만 사내하청, 비정규직이 뭔지도 잘 몰랐다.

똑같은 일을 하고도 받는 돈이나 처우는 정규직과 달랐다. 그래도 일이 많을 때는 특근수당, 잔업수당에 연말 성과급까지 받으니 먹고살 만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쉐보레가 유럽에서 철수하고 생산 물량이 줄자 가장 먼저 직격탄을 맞은 것은 ㄴ씨 같은 이들이었다. 2014년부터 2년간 비정규직 1100여명이 해고됐다. 2015년 회사는 그에게 1000만원 줄 테니 자진 퇴사를 하라고 했다. 노조의 ‘노’자도 모르던 ㄴ씨였지만 그것만은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30대 후반에 조립부에 들어와 노새처럼 일만 했다. 노조가 없던 비정규직 직원들은 화장실에 가고 싶어도 손이 달려 라인을 비우지 못했다. 임단협에는 낄 자리가 없었기 때문에 회사 돌아가는 상황도 잘 몰랐다. 사직서를 쓰는 대신 그해 출범한 비정규직 노조에 들어가 싸우기로 결정했다.

그와 동료들은 정규직으로 인정해 달라고 법원에 소송을 냈다.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은 외로운 싸움이 이어졌다. 마침내 지난 13일 1심 선고가 났다. 인천지법은 한국지엠 부평·군산 공장 사내하청업체 소속 비정규직 45명이 한국지엠을 상대로 낸 ‘근로자지위 확인소송’에서 노동자들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한국지엠에 “비정규직을 직접 고용하거나 고용 의사를 밝히라”고 명령했다. 공교롭게도 그날 한국지엠은 군산공장을 닫는다고 발표했다.

ㄴ씨의 둘째 딸은 올해 대학에 들어간다. 한 살 많은 아들은 동생이 입학하자 등록금 부담을 덜겠다며 올 초 군에 입대했다. 자녀들도 뉴스를 들어 회사 소식을 알고 있을 터이지만 아버지에겐 아무 말도 꺼내지 않는다. “즐거운 것도 기쁜 것도 모르겠더라고요. 이 공장으로 다시 돌아가긴 힘들겠죠.”

GM의 배리 엥글 해외사업부문 사장은 20일 한국 공장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누구와도 대화할 것이며 한국에 남아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해고되는 사람이 없도록 노력하겠다”면서도 군산공장을 살리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저는 정말 일을 하고 싶어요, 일을”이라는 ㄴ씨의 말이 본사에 가 닿을까.

<군산 | 최미랑 기자 ra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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