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인건비 지원 신청 24%뿐..문제는 '비공식 고용'

2018. 2. 20.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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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인상, 연착륙시키자]
② 최저임금 1만원으로 가는길

만연한 비공식 고용 줄여야
최저임금 인상 정책 효과 커져
최저임금 준수하지 않는 업체
근로감독 강화·부가금 도입 제안
저임금 직원 사회보험 가입 꺼려
사업주에 사회보험료 지원해
직원들 보험가입 설득 유도해야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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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평택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김현석(가명·41)씨는 최저임금 인상에 따라 정부가 인건비를 지원해주는 ‘일자리안정자금’ 신청을 포기했다. 일자리안정자금 지원 요건인 ‘고용보험 가입’이 걸림돌이 됐다. 김씨는 “월 13만원을 받기 위해서 고용보험에 새로 가입하는 것보다는 근로시간에 휴게시간을 포함시켜 인건비를 맞추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런 선택을 하게 된 이유에 대해 김씨는 “직원들도 가입을 원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며 “대부분 사회보험 가입을 ‘푼돈 떼가는 것’으로 여기는데다 다른 사회보장 혜택을 못 받을까봐 그런지 소득이 노출되는 것을 꺼려서 월급을 100만원 밑으로 신고해달라는 분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당장은 정부가 사회보험료를 깎아준다고 하지만 언제까지 혜택을 줄지도 모르는 일 아니냐”고 덧붙였다. 최저임금은 법대로 안 주면 신고가 들어올 수 있지만 사회보험 가입은 그런 문제가 일어난 적이 없다는 점도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 김씨의 설명이다.

20일 기획재정부와 고용노동부 집계를 보면, 전날 기준 56만1919명(노동자 수 기준)이 일자리안정자금을 신청했다. 신청 대상 노동자의 24%에 그치는 수준이다. 이처럼 저조한 신청률의 배경에는 일자리안정자금 지원 조건인 최저임금 준수나 사회보험 가입을 외면하는 ‘비공식 고용’이 만연한 사정이 자리잡고 있다. 올해 최저임금이 예년보다 큰 폭으로 오르면서 정부가 전례 없이 인건비 직접 지원에 나서고 있지만, 이런 비공식 고용을 줄이기 위한 특단의 대책이 병행되지 않으면 최저임금 인상 정책도 효과를 제대로 내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 만연한 비공식 일자리가 걸림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비공식 고용을 ‘합법적인 생산에 종사하면서도 취업과 관련된 법적인 요건을 하나 이상 충족하지 않은 고용’으로 정의한다. 경제활동 측면에서 보면 ‘정상적인 노동’에 속하지만 사회제도 쪽에서 보면 ‘비공식적’인 일자리다. 국내에선 통상 최저임금 준수나 사회보험 가입 여부 등이 비공식 고용을 가르는 기준이 된다.

비공식 고용에 속한 노동자 규모를 집계하는 국가 공식통계는 별도로 없다. 다만 국책연구기관인 한국노동연구원이 최저임금 미준수, 국민연금 미가입, 퇴직금 미지급 등 세가지 요건 가운데 한가지 이상 해당되는 이들을 추려 비공식 고용 규모를 추정해본 결과를 보면, 2011년 기준 전체 임금노동자의 40.2%(704만4천명)에 이르렀다. 이 가운데 적용 예외 대상은 20.6%에 불과했고 나머지 79.4%는 지켜야 할 법을 준수하지 않은 경우였다.

우선 최저임금 미준수율이 높은 것은 영세 사업장에 노동조합이 없는 경우가 많은데다, 근로감독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현실과 관련이 깊다.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는 노동자 비중을 나타내는 최저임금 미만율은 2012년 9.6%(경제활동인구 부가조사 기준)에서 2016년 13.6%로 늘었다. 최근 몇년 새 최저임금이 계속 오를수록 최저임금을 지키지 않는 사업주도 그만큼 많아진 셈이다. 특히 60대 이상(42%), 여성(19.4%) 등 노동시장 취약계층과 숙박·음식점업(35.6%), 개인서비스업(24.9%) 등 자영업 밀집업종에서 최저임금 미만율이 높은 편이다. 김씨는 “주변 가게들에서 항의를 거의 안 하는 노인을 고용한 곳은 법정 최저임금과 무관하게 임금과 근로시간을 사업주 마음대로 정하는 경우도 많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고용보험을 비롯한 사회보험 가입을 회피하는 경우도 대표적 비공식 고용으로 꼽히는데, 노동자와 사업주 간 이해관계가 일치하면서 이뤄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고용노동부 조사 자료를 보면, 2016년 기준 최저임금 노동자가 몰려 있는 숙박·음식점업(49.5%), 개인서비스업(63.2%)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고용보험 가입률은 전체 산업(90.7%)에 견줘 한참 낮은 수준이었다. 노동비용을 줄이려는 사업주뿐 아니라 노동자 쪽에서도 실업급여를 받지 못하는 자발적 퇴직이 많은 만큼 굳이 고용보험에 가입할 필요성을 못 느끼는데다, 건강보험 피부양자로 이미 등록돼 혜택을 받고 있어 새로 직장가입자로 등록하는 것을 극도로 꺼린다는 것이다.

경기도 평택의 한 음식점 주방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모습. 이 음식점을 운영하는 김현석(가명·41)씨는 고용보험에 가입하길 꺼려하는 직원들 때문에 일자리 안정자금 신청을 포기했다고 밝혔다. 방준호 기자

■ 사회보험료 지원·근로감독 강화 필요 정부는 애초 일자리안정자금 신청과 관련해, “2월 중순이면 어느 정도 신청이 이뤄질 것”으로 전망했다가 다시 3월까지 지켜보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고용보험 보수총액 신고와 함께 일자리안정자금 신청이 이뤄질 수 있다는 이유를 들면서 3월 중순 이후를 일자리안정자금 정책의 성패를 가르는 시점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처음 시행하는 정책인 탓에 정확한 신청률을 사전에 파악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신청률이 당장 저조하다고 해서 예산 3조원을 조정하는 상황까지 가지는 않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예산 총액이 유지되는 상황에서 3월 이후에도 신청률이 절반 이하에 그칠 경우, 정부는 일자리안정자금 지원 요건을 더 완화하는 정책을 펼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근본적으로 비공식 고용에 자리잡고 있는 사업주와 노동자들을 공식 고용 부문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제안한다. 비공식 고용이 줄어들지 않으면, 결과적으로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 정책의 핵심 과제인 최저임금 인상의 효과도 제대로 나타나지 않을 수 있는 탓이다. 한마디로 정부 정책 및 지원 등에서 지속적으로 사각지대가 자리하게 되는 셈이다.

구체적인 방안으로 최저임금 미준수 문제의 경우, 근로감독 및 처벌 기준 강화 등이 대안으로 꼽힌다. 지난해 1월부터 8월까지 최저임금 단속으로 적발된 869곳 가운데 사법처리로 이어진 경우는 51건에 그쳤다. 나머지 대부분은 지도를 받거나 미지급한 임금만 내주면 해결되는 시정조처였다. 최근 최저임금위원회는 이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으로 ‘부가금 도입’을 권고했다. 부가금은 노동자에게 직접 최저임금 미지급분의 일정 배율을 보상하도록 하는 제도다.

사회보험 가입률을 높이기 위해선 보험료 지원의 지속성을 약속하는 등 사업주가 가입할 유인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지원책으로 건강보험 신규 가입자 50% 감면, 고용보험·국민연금 신규 가입자 80~90% 감면 등 사회보험료 지원을 추가했지만, 기한이 올해 1년으로 한시적이거나 이후 기존 가입자로 분류돼 혜택이 축소되는 탓에 큰 유인이 되지 못하고 있다. 이병희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사업주뿐만 아니라 노동자도 사회보험 가입을 원하지 않는 상황에서 정부가 강력한 단속에 나서기는 어려운 상황인 만큼, 사업주들이 노동자들을 독려해 스스로 사회보험에 가입할 수 있도록 유도하게 하려면 지속적인 사회보험료 지원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와 더불어 생산성이 낮은 한계 자영업에 대한 구조조정도 종전보다 더 촉진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저임금위원회의 ‘최저임금 제도 개선을 위한 기초연구’ 보고서를 보면 비공식 고용 규모가 큰 음식업 및 주점업(2200만원), 소매업(3600만원) 등의 2015년 기준 1인당 부가가치는 전체 산업 평균(6200만원)에 크게 못 미쳤다. 낮은 생산성과 비공식 고용이 중첩돼 있다는 의미다.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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