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환의 과학세상] (640) 가습기살균제의 유해성

2018. 2. 20.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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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해성 감춘 기업에 법적책임 물어야
피해자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도 필요
이덕환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탄소문화원 원장

공정거래위원회가 MIT·CMIT를 살균성분으로 사용한 '가습기메이트'를 생산·판매했던 SK케미칼(구 유공)과 애경을 검찰에 고발했다. 인체 유해성을 '과학적'으로 입증할 수 없다던 2011년과 2016년의 입장을 바꾼 것이다. 지난 6년 동안 피해 사실조차 인정받지 못해 애태우던 피해자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이다. 그렇다고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다. 아직도 가야 할 길은 많이 남아있다.

공정위의 고발 내용이 너무 허술하다. 유해정보를 숨기고, 아로마테라피 효과를 강조하고, 정부로부터 안전성과 품질을 확인받은 것처럼 기만적이고 거짓된 표시·광고를 했다는 것이 고작이다. 이런 정도의 고발로 검찰이 입장을 바꾸고, 법원이 유죄 판결을 내릴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특히 동물실험에 집착하는 환경부가 가습기메이트 사용자들의 피해 사실을 적극적으로 인정해주지 않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가습기살균제 참사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절실하다. 1994년 기술표준원에 '가습기세정제'로 등록하고, 소비자에게는 '가습기살균제'로 판매한 제품은 엉터리였다. 세척성분(계면활성제)이 거의 들어있지 않아서 '세정제'라고 부를 수 없는 것이었고, 살균성분의 양이 효과를 기대하기에는 너무 적어서 '살균제'라고 부를 수도 없었던 제품이었다.

그런데도 끔찍한 피해가 발생한 직접적인 원인은 제조사가 소비자에게 제시한 '살인적인 사용법' 때문이었다. 아무리 독성이 약한 살균 성분이라도 밀폐된 실내에 지속적으로 살포해서 소비자가 장기간 흡입하게 되면 심각한 피해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누구나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하는 상식이고, 생활화학제품을 개발하는 전문가라면 절대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기초 지식이다. 최소한의 전문성조차 갖추지 못한 엉터리 전문가들에게 제품 개발을 맡겨서 엄청난 피해를 발생시킨 기업에게 무거운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살인적인 사용법을 지적하고, 규제하지 못한 정부의 책임도 결코 가볍지 않다.

제조사가 살인적인 사용법을 제시한 것도 모자라 분명한 과학적 근거도 없이 인체 무해성을 주장했던 사실도 간과할 수 없다. 엉터리 주장으로 많은 소비자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발생시켰다면 더욱 그렇다. 근거도 없이 섣부르게 인체 무해성을 주장한 것은 인체에 유해하다는 정보를 감춘 것과 법리적으로도 분명하게 구분해야만 한다. 인체 유해성을 인지하지 못했다고 우기는 기업에게는 그런 구분이 더욱 중요하다.

많은 소비자들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힌 기업에게 사법적 책임을 묻는 일은 절대 포기할 수 없다. 특히 가습기살균제를 처음 개발하고 나서 살인적인 사용법을 제시했고, 의도적으로 근거 없는 인체 무해성을 주장했고, 다른 기업들에게 살균제를 공급해서 막대한 이익을 챙긴 기업에게는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

피해자들에 대한 더욱 적극적인 관심도 필요하다. 환경부가 기업이 아니라 피해자의 입장에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사태를 확인하고 6년이 넘도록 보상은커녕 피해 사실조차 인정해주지 못한 것은 매우 심각한 일이다. 관료와 전문가들의 집단 이기주의도 극복해야 하고, 피해자들 사이의 갈등을 부추기는 비윤리적인 일도 절대 해서는 안 된다. 이제 동물실험을 통해 독성을 확인하겠다는 고집은 버려야 한다. 독성의 개연성에 대한 기초자료인 동물실험이 인체 유해성을 판단하는 근거가 될 수 없다.

환경부의 피해 판정기준도 합리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살균 물질의 독성은 살균제의 종류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특히 CMIT·MIT는 PHMG·PGH와 화학적·물리적으로 전혀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다. 초미세먼지 정도 크기의 고분자(高分子)인 PHMG·PGH 보다 1000배 이상 작은 단분자(單分子)인 CMIT·MIT는 폐포(肺胞)의 벽을 통해 혈관으로 직접 흡수되어 쉽게 전신으로 퍼지게 된다. 그런 CMIT·MIT에 대해서는 PHMG·PGH와는 확실하게 구분되는 별도의 피해 판정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이덕환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탄소문화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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